개혁신학과 관상기도 김남준 열린교회출판부
기도는 우리에 대하여 하나님이 모르고 계시는 그 무엇을 일깨우기 위한 수단이 아닙니다. 오히려 기도는 하나님게서 이미 알고 계시지만, 우리가 그것을 언어화하여 하나님께 아뢰는 과정을 통해 그 기도의 내용이 우리의 마음에 먼저 열매 맺게 하기 위한 것입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신자는 자신이 하나님 앞에 무엇을 필요로 하고 있는지 알게되고, 그것을 간구하는 과정을 통해 하나님을 심령으로 의지하는 것이 무엇인지 터득하게 됩니다. 그리고 이로써 어린아이처럼 하나님을 더 많이 의지하게 됩니다. 107
우리의 간절한 기도의 끝은 결코 신비의 즐거움이 아닙니다. 오히려 우리는 복음적 기도의 실천을 통하여 하나님의 영광으로 가득차게 되는 것이 무엇인지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임재의 영광은 우리가 마땅히 사모해야 할 것이지만, 그것은 결코 하나님 자신의 오심이 아닙니다.
존 오웬은 성도들이 이 세상에서 누릴 수 있는 최고의 복은 하나님과의 동행이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과 동행하는 신자가 가진 신앙의 두 가지 특징은 하나님과의 평화와 하나님의 영광에 대한 갈망이라고 했습니다. 143
그리스도인의 가장 중요한 사명은 행복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세상의 재물이나 명예, 편안한 환경때문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살아가기 때문에 행복한 사람입니다. 추호의 양심의 가책이나 마음의 꾸밈이 없이 순수한 경건으로 자신이 확신하고 있는 바가 성경의 진라는 믿음을 가지고 누구에게도 굴하지 않고 살아가는 그것이 그의 행복의 정체입니다. 149
쉬운 기도는 자신을 바꿀 필요가 없기 때문에 쉬운 기도입니다. 복음적 경건은 언제나 핏빛 경건입니다. 거기에는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있고 그 정신을 따라 자신을 영적으로 십자가에 못박는 그리스도인의 자기희생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 앞에 자기의 뜻을 기꺼이 버리는 자기포기와 죄에 대해서 자신을 처벌하고 죽음에 내어주는 형벌과 같은 자기죽음이 있는 것입니다. 기도의 실천 자체는 조금도 어려운 것이 아니지마, 기도의 실천을 통해 깊은 기도로 나아가 복음적 경건의 신비에 도달하는 것은 결코 쉬운 것이 아닙니다. 159
하나님의 나라는 말에 있지 않고 능력에 있습니다. 참된 기도의 은혜와 능력이 무엇인지를 경험한 사람들은 관상기도의 매력에 심취하지 않습니다. 복음과 화해한 사람들의 기도는 하나님의 이름의 영광과 그의 나라의 도래를 위한 처절한 열망으로 불타오릅니다. 그에게 하나님께 대한 관상은 사치이고 자아에 대한 집중은 허탄한 것일 뿐입니다. 1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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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상(觀相)기도란,
신비주의 철학과 종교에서 행하는 직관, 혹은 체관 행위를 기독교적 기도 행위와 접목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기독교의 기도에 대한 전통적인 이해가 지성을 사용하여 인간의 언어로써 마음 안에서 하나님께 아뢰는 간구의 행위라면, 관상기도는 지성이 아닌 가슴으로써 하나님을 침묵 속에서 체관함으로써 친교의 상태에 이르려는 행위를 의미합니다. 오늘날 우리나라에서 행해지는 관상기도는 교회와 단체에 따라 천차만별의 양태를 가지고 있지만, 기본적으로 관상을 중심에 둔 명상 형태의 기도라는 점에서는 맥을 같이 합니다.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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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사도 운동에 관해서 알아고 있을 즈음에 새롭게 알게 된 단어, "관상기도"
경험한 것 중에서 잊혀지지 않는 것은,
"주여!"를 부르고 시작하여 방언으로 계속 부르짖으라는 것과,
음성을 듣기 위해(혹은 예언을 위해서 음성을 들으려고) 잔잔한 음악 속에서 아무 생각도 하지말고 하나님이 주시는 음성에 귀를 기울이고 (그것이 음성이든, 어떤 이미지이든, 생각이든, 무엇이든간에) "받으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안수할 때에도 기도를 멈추고 조용히 그저 "받으라"고 가르쳤던 것이다.
흔히 해왔던, 음악을 틀어놓고 단체로 수십분간 기도할 때를 생각해보면, 처음에는 큰 소리로 방언이라는 것으로 부르짖다가 나중에는 뭐라고 중얼중얼(방언이라고 생각하며 하는 행동) 하다가 다시 가끔 큰소리로 부르짖곤 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런 형태로 기도했고, 특히나 음성을 듣는 시간에는 누구나 할것없이 두 손을 앞으로 내밀고 쉽게 말하면 "명상"의 상태로 기도했다.
이 두 가지 중에서 두번째의 형태는 "관상기도"였다.
사실, 큰 소리로 기도하지 않은 경우, 기도하려고 눈을 감으면 뭔가를 잠시 간구하는 듯하다가 그냥 딱 맞는 표현으로 "명상"으로 들어간다. 들어갔다. 그리고 뭔가를 들으려고 마음을 비우거나 혹은 집중하거나 말이다. 관상기도였다. 용어를 몰랐을 뿐, 그게 그것이었다.
기도, 복음적인 기도도 다시 배워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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