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섯째날  창 35:6~15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라.


I. 본문해설


리브가의 유모 드보라는 처음부터 야곱이 떠날때, 함께 보내졌다는 주석과, 세겜에 왔을 때, 야곱을 맞으려고 보냈다는 주석이 있지만, 어찌되었든지 드보라는 야곱을 사랑하고 정신적으로 큰 역할을 한 사람임은 분명합니다. 그녀의 죽음으로 야곱의 마음은 더 가난해졌을 것입니다.


9절에서는 10년이상 머무른 세겜에서의 시간을 밧단아람에서 돌아와 가나안으로 오는 과정에 지나지 않게 보시는 것을 말씀하십니다. 


II. 다시 나타나신 하나님.


A. 이름을 기억하게 하심. (사랑을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야곱은 욕망으로 말미암는 사기꾼의 대명사였지만, 하나님이 주신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은 호세아 12:3,4 에서 야곱이 자기 힘으로 하나님을 이긴 것이 아니라 그의 눈물의 회개와 돌이킴을 하나님이 받아주시고 야곱을 격려하는 차원에서 그에게 이기었다고 표현하신 것을 알 수있습니다. 

이것은 실제로 하나님과 싸워 이긴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총의 승리"인 것입니다. 

야곱의 회개로 하나님의 마음이 감동되고 그 은총으로 야곱을 받아주신 것입니다.


야곱의 이름은 이스라엘이고,

여러분의 이름은 성도요,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여러분은 하나님 믿은 것을 후회했을지 몰라도, 하나님은 은총으로 우리의 결점을 "이기신" 것을 후회하신 적이 없으십니다.


B. 전능하신 하나님("나 하나님 앞에 온전하라, 그리하면 내가 이루리라")


"전능하신 하나님"은 "엘 샤다이"인데, 그 의미는 세가지로 모든것을 가지신 분, 세상을 심판하신 힘을 가지신 분, 지존하셔서 세상을 다스리시는 분인데, 이 모든 의미를 다 통합하여 생각하면 될 것 같습니다. 


이전에 아브라함에게도 전능하신 하나님이라고 말씀하신 것은 그의 믿음에 금이 간 것을 아시고 그렇게 말씀하신 것입니다.

야곱에 세겜에서 불순종하며 있었던 이유도 자신의 인생을 책임지실 하나님의 전능하심에 불신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야곱에게도 "전능하신 하나님"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세상의 불행은 이 세상의 자원으로는 막을 수가 없습니다. 이 세상의 자원에는 한계가 있기때문입니다.


신앙의 핵심은 주님을 사랑하고 의존하는 것입니다.


고전10장에 보면 하나님은 감당할 시험만 주셔서 힘을 주시든지, 피할 길을 주시든지 하십니다.

우리의 불순종과 잘못은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지 않은 것입니다.


문제는 적의크기와 수가 아니라 내가 하나님을 의지하느냐입니다. 하나님이 나를 기뻐하시느냐, 그들은 나에게 붙이셨는가 인것입니다.


어려움을 당할 때, 하나님께서 그 어려운 일을 바꾸길 바라지 말고 나를 바꾸시려는 하나님을 발견하고 왜 그런 일이 생기는 것인지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찾고 물어야 합니다.


어린아이와 같은 마음으로 의심하지 않고 믿음, 신뢰를 가져야 합니다.


"아빠, 하나님이 도와주셔도 안되요?"(가족예배 후, 온 가족이 집안의 문제로 깊이 고민하는 얘기를 들은 아이가 아빠에게...)



III.다시 복주시는 하나님


A. 큰 민족을 이루리라.


배신, 사기, 불순종한 야곱의 "자격"을 따지지 않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B. 약속의 땅을 주리라.


세겜에서 돈벌고, 그곳 사람들과 사이가 좋아지고, 잘 지내게되었지만 야곱의 "나그네"라는 신분에는 변함이 없었습니다. 야곱이 생각한 그런 방법으로 "땅"을 소유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과의 관계로 말미암아 "땅"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교회"는 나그네가 와서 쉼을 얻고, 하나님이 나를 이스라엘로 부르신 것을 알게 되는 곳이며, 하나님의 은총으로 나의 죄와 결함에서 승리한 사람이 있는 곳입니다. 


언제까지 야곱처럼 하나님을 불신하고 나의 수단과 방법으로 살려고 하시겠습니까?

Posted by 지윤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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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째날  창 35:4~5   영적 부흥을 위한 조짐


I. 본문배경


영적각성 후, 비로서 객관적인 말씀의 빛으로 자신의 삶을 볼 수 있습니다. 어디서 미끄러지고 어디서 떨어졌는지를 말입니다. 


"올바른 길을 가고자 하나 그 길을 모르는 사람, 그 길을 알지만 갈 힘이 없는 사람은 열린교회로 오세요" - 초창기 열린교회 전도지 문구. 이것을 보고 눈물흘리면 온 사람이 있었다.

하나님의 은혜와 나의 의지가 결합해야 합니다.


여러분을 먼저 예수믿게 하신 것은 여러분에게 딸린 사람이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올바르게 신앙생활하지 못하면 그들도 고통을 당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쓰시려고 먼저 찾아가신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너무 믿음이 좋고, 이삭은 너무 온유하면, 요셉은 너무 순결합니다. 우리와는 너무 다른 모습의 사람입니다. 그러나 야곱은 피할 수 있을데까지 피해보고 도망갈 수 있는 만큼 도망가고, 속이고 약속을 지키지 않는 사람, 바로 우리와 너무 닮은 모습입니다.


II. 영적 부흥과 변화의 조짐


A. 이방신상들을 제거함.


하나님을 의지하며 살겠다는 결단에 따르는 것입니다. 가족들은 야곱의 '권위'때문에 따랐습니다. 


'권위'는 자기가 내세우지 않아도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나타는 분명한 근거가 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따르게 됩니다.

'권위주의'는 이러한 근거와 기반이 없이 사람을 지배할 목적으로 강요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에 대한 올바른 앎이 중요한 것입니다.

'권위'에 불복종, 불순종하는 것도 죄이며,

'권위주의'에 맹종하는 것도 또한 죄입니다.


죄의 주관화는 그 죄가 드러나고 자기가 알게되고 알고 있더라도 그 죄를 직면하기 싫어하는 것입니다. 의지적으로 외면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으로 인해 행복한 것이 없으면 하나님 아닌 다른 곳에서 행복을 찾게되기 때문에 영혼에 빨간불이 들어오게 됩니다.


B. 단장품들을 버림.(출33 에도 동일한 모습이 나타납니다)


이것은 말씀의 놀라운 적용력입니다. 야곱은 단장품을 버리라고 말하지 않았지만, 가족들과 함께 한 자들은 그것을 행하였습니다. 이 행동은 하나님만 앙망하는 신앙으로 되돌아감을 말합니다.


"하나님때문에 기쁘십니까?"

"은혜에 대한 감격이 있으십니까?"


같은 기도를 오래하는데 응답이 없다면, 그 기도에 합당한 삶을 내가 살고있는지 나를 돌아보아야 합니다. 이미 우리가 기도하기 전에 모든 것을 아시는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를 듣고 싶으신게 아니라 우리의 마음이 바뀌어 삶이 바뀌길 원하시는 것이고, 그 삶에서 우리의 기도를 응답하십니다. 바로 이것을 원하시는 것입니다.


세겜에서의 성공과 번영에는 비교도 되지 않는, 요셉에 이어져 큰 민족을 이루는 연결고리로 야곱을 부르시며 소명을 주신 것입니다. 


여러분의 요즘의 자랑과 보람은 무엇입니까?

여러분의 마음의 수많은 "단장품"은 무엇입니까?

십자가가 일상적인 것으로 여겨질 때, 신자는 부패하는 것입니다.  


C. 상수리나무 아래 묻음.


이것은 우상과 단장품들을 하나님 앞에서 "장사지낸"것, 잊어버린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 앞에 최고의 선물은 내가 사랑하는 세상을 죽여서 하나님 앞에 묻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사랑하는 세상은 세상에 있는 것이 아니라 여러분 안에 있는 것입니다.


정말 두려운 것은 실패가 아니라 실패에 익숙해져 체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을 만나게 하시려고 시련을 주시는데, 하나님의 방법으로 않고 자기의 방법으로 잔머리를 굴린다면 그 시련으로 얻을 것이 없는 것입니다.



Posted by 지윤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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셋째날 벧엘로 올라가는 신앙  창 35:2,3



I. 본문배경.


하나님은 벧엘로 올라가 제단을 쌓으라고만 하셨지만, 야곱은 더 많은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은 말씀으로 우리를 변화시키시지만, 그 말씀도 받을 만한 마음에서 열매를 맺는 것입니다. 무위도식하면 기도의 제목이 사라집니다. 죽은 자와 다름없고 마귀도 신경쓰지 않는 자가 되는 것입니다.


한 해의 목표를 세우라고 했더니, 도리어 하나님께 목표를 세워드리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도와주시지 않으면 안되는 목표를 세우십시오. 그리고 그에 대해서 최선을 다해서 살아갈 때, 그 기도가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II. 벧엘로 올라가는 자의 결단.


A. 이방 신상을 버림.


조나단 탈굼에서는 세겜의 우상의 집에서 가져온 이방신상을 버리라고 되어있습니다.

우상은 하나님에 대한 사랑의 문제입니다. 

의존이 반복되면 사랑이 됩니다. 

먼저 내 안에 하나님 아닌 것들에 대한 사랑을 버려야합니다.

그것을 떼어내는 것은 고통스러운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방신상에 대해서 말씀하지 않았지만 하나님을 만난 야곱은 그것을 알았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사랑을 받고 싶으신게 아니라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할 때의 우리가 가장 행복한 것을 아시기 때문에 그렇게 하신것입니다.


B. 자신을 정결케 함. 


정결은 도덕적, 의식적 불결에서 깨끗해짐을 말합니다. 이 불결로 인해서 하나님을 만날 수가 없습니다. 우리는 과거에는 없었던 예수님의 십자가의 보혈로 정결케 될 수 있습니다. 


여러분의 죄로 인해 남은 것이 여러분에게 십자가가 되어도 하나님은 그것때문에 여러분을  미워하시거나 복수하려고하지 않으십니다.


C. 의복을 바꿔 입음.


본문에서의 "의복"은 세겜을 떠나기위해 여행하기 좋은 옷을 말하지만, 성도의 마땅한 행실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고 불신앙하는 행실은 그것으로 나타나고, 경외하고 순종하면 그 행실이 나타나게 됩니다.


삶에 대한 개혁이 없이는 영혼에의 변화는 없습니다.

무엇인가 하나님께 옳은 길로 가고자 할 때는 우리의 삶을 흔들어야 합니다. 

삶을 개혁하는 결단과 용기가 필요합니다. 

Posted by 지윤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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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날 하나님께 제단을 쌓으리라.  창 35:2,3



각성은 이제껏 보지 못하던것을 보게 만들어 새로운느낌, 생각을 갖게 하는 것입니다. 영적으로 하나님이 깨우쳐 주시는 것입니다.


영적으로 깨어있다는 뜻은,

첫째, 자기 자시을 객관적으로 실필 수 있는 것입니다. 

진리의 말씀에 나를 비춰보는 것입니다.

둘째, 삶에 일어난 사태, 상황들을 하나님과의 관계에 연관지어 생각할 수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 자녀의 특권이며 이것이 신앙입니다. 


좋은 일에는 헤헤거리고 나쁜 일들에는 미움과 원망을하는 것은 깨어있지 못한 것이고 이런것이 짐승과 같은 삶인 것입니다.


원래부터 하나님의 사람은 없습니다. 하나님이 붙잡고 계실 그때에만, 위대하고 훌륭한 그리스도인인 것입니다.


망가지고 미끄러지는 것도 나쁘지만, 그것에 익숙한 것이 인간입니다. 

익숙해져서 그것이 불편하고 불행인 것도 모르고 그렇게 그냥 사는 것은 더 나쁜 것입니다.

하나님없이 견딜 수 있는 만큼 참고 견기는 끈기는 죄의 영향이며, 무모함과 나쁜 담대함입니다.


나에게 발생한 사태들이 하나님과 어떤 연관이 있는가? 무엇을 나에게 말씀하시는가?


자살하는 사람들은 지금과 너무너무 다른 삶을 살고 싶은데, 내 힘으로 그렇게 못할때 선택한 것이 자살입니다. 


하나님께 돌아가는 것에 최대의 방해물은 죄가 아니라 "부요한 마음"입니다.

회개는 무엇을 지불하고서라도 하나님께 돌아가고 싶은 가난하고 목마른 마음입니다.


세겜의 번영에 눈이 멀어 동물적인 삶을 산 야곱은 족장의 권위마저 잃어버리고 영적 권위까지 잃었지만 하나님은 야곱을 각성시키셨습니다.


야곱 한 사람으로 인해 집안 사람, 함께 한 자들까지 깨우셨습니다.


야곱은 벧엘로 올라가기로 결심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모든 상황들이 그 순간에 좋아진 것은 아니었습니다. 기적은 그렇게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한 사람을 깨워서 가정과 또 함께 한 사람들은 변화시키는 것이 기적입니다. 


하나님이 살아계신 최고의 증거는 설교이기도하지만 그 설교로 변화된 삶을 사는 여러분입니다. 

환란날에 도우시는 하나님을 기억하고 소망한 야곱을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Posted by 지윤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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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날 창 28:10-22, 35:1


I. 족장 시대의 배경


아브라함, 이삭, 야곱, 그의 아들들. 족장시대.


야곱은 사기꾼같은 세속적인 사람이었지만, 하나님은 그를 족장으로 세우셨습니다.

본문의 "사닥다리"는 원문으로 보면 "왕의 대로"같은 큰 길을 말합니다.



II. 벧엘에서 만난 하나님


"최상의 축복"을 받은 야곱은 헌신, 결단, 작정같은 것이 없었지만, 하나님은 그런 야곱을 그냥 사랑하셨습니다.


A. 세가지 조건과 헌신의 약속.


지켜주시고, 

양식을 주시고, 

무사히 집으로 돌아가게 하시면

- 나의 하나님이 되시고 

  하나님의 집이 되고

  십의 일을 드리겠습니다.

야곱은 하나님 앞에서도 장사꾼같은 계산으로 조건과 헌신을 약속합니다.


B. 귀환할 때 성숙해진 신앙.


천사와의 씨름은 '믿음'으로 해석하기도 하지만 그것이 아니라 호세아의 기록을 보면 자신의 혈기로 하나님을 이기려는 사기꾼의 본성입니다. 씨름에 졌다는 것은 야곱의 자기 깨어짐이며, 야곱이 회개하는 모습을 보시고 하나님은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을 주셨습니다. 


에서와 화해 후에 가나안으로 돌아가는 듯 했지만 중간에 세겜에서 들르며 그곳에서 오랜기간 거주하게 되고 처음에는 "나의 하나님"이라고 성숙한 신앙을 고백하기도 했지만, 거주 기간이 늘어나면서 신앙도 멀어지게 되었습니다. 


여러분도 혹시 이 야곱처럼 세겜에서 주저앉은 사람이 아닐까요?


III. 다시 벧엘로 부르심.


A. 디나의 강간 사건.


딸의 강간사건은 야곱의 큰 괴로움의 순간이었을 것입니다. 

더구나 아들들 마저 아버지인 야곱을 따르지 않으며 멋대로 세겜 사람들을 살육하여 집안 전체를 위기에 처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이때도 야곱이 하나님을 먼저 찾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야곱에게 먼저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없는 형통함은 폭풍우 전의 고요함인 것입니다. 


B. 다시 벧엘로 부르심.


하나님은 세겜에서의 야곱의 죄를 따지시지 않으시고, "에서"사건을 상기시키십니다.

하나님은 야곱의 세가지 조건을 그 이상으로 풍족하게 채워주셨지만 야곱은 그 약속을 지키지 않았습니다. "배신"인 것입니다. 


하나님은 늘 베푸시고 건지시도 우리는 늘 변함이 없고 늘 잊어버리기만 합니다.


여러분의 벧엘은 어디입니까? 감격적으로 하나님을 만난 곳은 어디입니까?


"단"을 쌓으라는 말은, 하나님 앞에 서라, 하나님을 향해 살아라, 하나님을 등지지 말라는 뜻입니다. 


하나님 없는 번영보다 하나님과 함께하는 위기가 더 소망이 있는 것입니다. 

아들은 내어주신 분이 무엇이 아까와서 다른 것을 내어주시지 않으시겠습니까?

Posted by 지윤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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