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탕한 선지자> 켈러   2020. 1

 

요나가 자신의 죄를 이식하고 온전히 하나님의 자비에 의지하여 사는 존재임을 깨닫지 않는 , 그는 하나님이 어떻게 악한 사람들에게 자비를 베푸시면서 여전히 정의롭고 신실하실 있는지 결코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32.8

 

요나는 하나님께로부터 달아나고 달아난다. 그러나 그가 아물 ㅣ다양한 전략을 구사해도, 주님이 언제나 걸음 앞서신다. 33.2

 

무슨 일이든 우리가 설계와 목적으 위반하면, 우리 , 인간관계, 사회에 대해 죄를 지으면, 그것들이 우리에게 반격을 가한다. 그로 인한 결과가 따라오게 되어 있다.  39.5

 

예수님이 나의 죄를 위해 죽으셨다고 진심으로 믿으면서도 그리스도를 통한 하나님의 사랑이 아니라 경력과 재정 상태에 근거하여 자신의 중요성과 안정감을 확보할 있다.  73.3

 

회개는 언제나 하나님의 역사다(딤후 2:25)   119. 5

 

성경을 읽는데 자신이 의롭게 느껴진다면 성경을 잘못 읽고 있는 것이다.  141.7

 

주님, 그것을 주신다면 주께 순종하겠습니다.”라고 말하는 사람에게는그것 절대적인 것이고 하나님은 목적을 이루기 위한 수단에 불과하다.  145.8

 

하나님이 폭력적이고 많은 이교도들을좌우를 분변하지 못하는”( 4:11) 이들이라고 말씀하시는 것이 흥미롭다.  157.5

 

그분은 너무나 거룩하시고 너무나 사랑이 많으시기에 요나를 죽이거나 지금 모습 그대로 남아 있게 두실 없다. 그리고 같은 이유로 하나님은 우리를 지금 모습 이대로 두실 없다.  172. 4

 

죄의 본질은 인간이 하나님의 자리를 대신 하는 것인 반면, 구원의 본질은 하나님이 친히 인간을 대신하시는 것이기 때문이다. 인간은 하나님에게 맞서 자기를 주장하고 하나님만 계실 자격이 있는 곳에 자신을 놓는다. 하나님은 인간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시고 인간만 있어야 마땅한 자리에 자신을 두신다. 인간은 하나님께만 속한 특권을 주장하고 하나님은 인간에게만 해당하는 형벌을 받으신다.( 스토트)  202.  5

 

그러니 정치적이 되지 않으려는 선택이야말로 정치적인 것이다.  213.5

 

내가 가치있는 존재였으면 좋겠다 생각이 든다면, 아직도 상황 파악을 못한 것이다. 주님이 우리의 가치시다. “하나님이 삶에 계시면 좋겠지만 그분이 일하심이 보이지 않는다 말한다면, 그분의 은혜가 얼마나 근본적인 것인지 아직 이해하지 못한 것이다.   268. 8

 

무엇이건 우리가 사는 목적이 실제로 우리를 소유한다. 우리는 자신을 지배하지 못한다. 우리가 사는 목적과 가장 사랑하는 바로 그것이 우리를 지배한다.  275. 9

Posted by 지윤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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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깊은 사랑을 경험하라>  김남준

 

우리가 하나님을 향한 사랑이 너무 깊은 나머지 사랑 때문에 하나님게 대하여 상사병에 걸릴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들에게 성경의 진리가 얼마나 깨달아지겠는가?  ( 오웬) 15. 8

 

우리가 주님의 마음에 전부였던 것처럼 당신도 우리 마음의 모두이기를 원하십니다.  46. 5

 

나의 사랑하는 아퀴나스야, 내가 네게 무엇을 주랴. 네가 무엇을 원하기에 그토록 밤낮으로 부르짖느냐?” 그때 그는 대답하였습니다. “하나님, 제게는 아무 것도 필요없습니다. 주님, 무엇을 주시려거든 차라리 주님 자신을 제게 주옵소서. 주님은 저의 것이고 저는 주님의 것이옵나이다.”  109.  7

 

하나님이여, 몸에 흐르고 있는 방울이라도 주를 위해 흘리기를 싫어하는 피가 있다면 출혈시켜 주시고 찢기기 싫어하는 살이 있다면 도려내어 주시옵소서.  (찰스 스펄전)   114. 5

 

십일조 돈을 한번 떼어먹은 것은 커다란 죄로 생각하고 십분의 구에 해당하는 재물을 자기 정욕대로 사용한 것은 정당하게 생각합니다.  128.  3

 

그는 세상에서 당장이라도 하늘로 올라갈 것처럼 마치 발꿈치를 들고 있는 사람처럼 살았다.” (토마스 켐피스)  171. 3

 

*** "사랑"

Posted by 지윤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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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4. 3 원수는 자신을 작게 복제해 놓은 이 혐오스러은 인간들로 우주를 우글우글 채울 생각을 정말로 하고 있다구.

 

75. 8 “이제 보니 나는 해야 일도 하나 하고 좋아하는 일도 하나 인생의 대부분을 보내 버렸구나.”

 

76. 8 사실 가장 안전한 지옥행 길은 한 걸음 한 걸음 가게 되어 있다. 그것은 경사도 완만하고 걷기도 쉬운데다가, 갈랫길도, 이정표도, 표지판도 없는 길이지.

 

90. 1 한 마디로, 미래만큼 영원과 닮지 않은 건 없어. 미래는 시간 가운데서도 가장 완벽하게 찰나적인 부분이지. 과거는 꽁꽁 얼어붙어 더 이상 흐를 수 없고, 현재는 영원의 빛으로 찬란하게 빛나고 있으니까. 

 

137. 3 기독교가 진리이기 때문이 아니라 무언가 다른 이유 때문에 믿으라는 것, 이게 바로 우리 수법이야.

 

166. 8 원수한테 인간의 출생이란 죽을 수 있는 자격을 주는 것이기에 중요하고, 죽음이란 오직 다른 삶으로 들어가는 입구이기에 중요한 것이 분명하다. 

 

 

***

그저 생각만 넣어 줄 수 있는,

오직 그 방법만으로도 충분히 인간을 유혹하고 스스로 망하게 할 수 있는 존재.

아무것도 본래부터 가진 것이 없다는 사실까지 인정하고 있는 존재.

그러나 인류의 역사 처음부터 지금까지 실제적인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존재.

하나님의 주권 앞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것까지 알고 있는 존재.

 

 

Posted by 지윤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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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을 모르는 시대의 하나님(강영안. ivp)

 

165.    ‘강교수의 철학이야기’

 

167. 5  하나님은 쾌락 속에서 우리에게 속삭이시고, 양심 속에서 말씀하시며, 고통 속에서 소리치십니다.

 

174. 8  “하나님이 우리를 만드신 주된 목적은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을 사랑하게 하려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물론 이 목적도 있지만),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심으로써 우리를 그의 사랑이 ‘아주 기쁘게’ 머물 수 있는 대상으로 만드시려는 데 있다.”

 

178. 9 “하나님은 우리 믿음이나 사랑의 자질을 알아보시려고 시험하시는 게 아니다. 그분은 이미 알고 계시니까. 모르는 쪽은 오히려 나였다.”(C.S 루이스 헤아려본 슬픔)

 

228. 9  안식하라는 것은 우리 삶의 모든 원천, 힘과 능력의 원천이 우리 자신이나 이 세상에 있지 않고 오직 하나님께 있다는 것을 알게 합니다. 

 

232. 8 말씀하시고 창조하시고 생각하시고 일하시고 복주시는 하나님의 모습이 드러납니다 .이 점에서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받았다는 것은 말할 수 있고 일할 수 있고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낼 수 있고 타인과 관계를 맺을 수 있고 그들에게 복을 줄 수 있게 만들어졌다는 것을 뜻합니다. 모든 존재는 이 하나님의 명령, 하나님의 부르심에 대한 응답, 반응으로 존재하게 되었습니다. 인간은 하나님께 반응하고 책임지는 존재로 지음받았습니다.

 

237. 5  인간이 땅으로부터 왔다는 것, 다시 말해 하늘의 존재가 아니라 땅의 존재라는 것, 그리고 인간의 생명이 하나님께 달려있다느는 이 두 가지 사실입니다. 

 

241. 5 그런데 그 밑에는 역시 하나님에 대한 불신이 깔려 있었습니다. 하나님께 삶을 완전히 맡기지 못하는 것이지요. 하나님에 대한 절대 신뢰가 깨어진 것, 그로 인해 관계가 훼손된 것, 이것이 죄의 본질입니다. 

 

253. 4  이 계명은 우리를 속박하는 계명이 아니라 우리에게 자유를 주는 계명이라 할 수 있습니다. … 한 분 하나님만 섬긴다면 그 외의 모든 것들을 상대화시키게 됩니다. 가치가 있지만 상대적 가치만 있음을 알고 그 고유한 가치를 발휘하도록 한다면 이 모든 수단이 정말 귀하게 사용될 수 있습니다.

 

273. 1 ‘루터박사의 소요리 문답’ “하나님이 나와 존재하는 모든 것을 창조하셨다는 것과, 몸과 영혼, 눈, 귀, 나의 모든 지체와 나의 이성과 나의 모든 감각, 옷과 신발, 먹을 거리와 마실 것, 집과 가정, 아내와 아이, 땅과 가축과 나의 모든 재산을 나에게 주시고 지금도 붙들어주신다는 것과, 살아가는 데 필요한 모든 것을 날마다 충족하게 공급하시며 모든 위험에서 나를 보호하시며 모든 악에서 나를 지켜주신다는 것과, 하나님은 이 모든 것을 그분의 순전한 부성적이며 신적인 선함과 자비로부터 행하셔서 어떤 공적이나 자격을 나에게 요구하지 않는다는 것을 나는 믿습니다. 이 모든 것에 대해 나는 감사하고 찬양하고 구분께 순종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것은 확실히 참된 것입니다.

 

*** 무신론, 신정론, 고통의 문제, 창조와 진화, 하나님의 창조주 되심.

*** 이렇게 이야기하는 책이 나를 더 잘 설득시킨다.

*** 다양한 생각들을 소개해서 알려주고 자연스럽게 이해가 되도록 만들어준다.

Posted by 지윤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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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녹처럼, 오늘 하나님과 동행하라"

64 일상에서의 세렌디피티

109 산둥수용소

139 식사

        영화 "어둠속의 댄서", "홀랜드 오퍼스", "8월의 크리스마스", "지붕위의 바이올린"

147 "네게 속한 자가 있느냐"

 

"직장인이라면 다니엘처럼"

25 스톡홀름 신드롬

33 이름

       영화 "사랑의 블랙홀" , "딥 임팩트"

274 모인 교회, 흩어진 교회

 

Identity

Intercession

Image

Influence

Intefrity

Intimacy

Impact.

 

Posted by 지윤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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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곤란하기도 하고 재미(?)있기도 하고

너무나 진지한 책.

 

"진짜 예수에 갈증을 가진"(야고보를 찾아서 의 맺음말 부분) 그런 분.

"진짜 하나님과 진짜 나" 에 대해서 너무 알고 싶으신 분.

 

- 뭐라 반박하고 싶은 생각들은 많이 있지만

그것이 다른 시선으로 보기에는 일종의 "도그마"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작은 지식으로 내가 배워왔고 보고 겪은 하나님은, 구약의 하나님이나 신약의 하나님이 다르지 않으시다.

하나님은 구약과 신약 모두를 통해서,

당신에 대해서 "알라"고 꾸준히 말씀하시고,

당신을 "의지하라"고 늘 말씀하신다. 

당신을 "사랑하라"고 말씀하신다.

 

내가 생각하는, 기독교가 다른 종교와 확연히 다른 점은,

절대자(신)의 요구가 "나를 사랑하라"라는 것.

그것을 구약에서는 그 당시의 문화와 환경에 맞게 그들에게 말씀하셔고

신약에서는 또 그 시대의 문화와 환경에 맞게 말씀하셨고,

지금도 그것은 변함이 없으시다.

 

이어서, "성경의 무오성"에 대한 책들을 더 보게 되었고,

이 일들을 통해서 조금이나마 내가 믿는 하나님에 대해서 더 알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Posted by 지윤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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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질문하는 믿음

- 삭개오의 물음(질문), "예수는 누구인가?" 

- 예수가 누구인지 알고자 하는 열망이 내게는 있는가?

 

2. 응답하는 믿음

- "내가 믿습니다."라는 고백의 의미, 하나님과 나 그리고 우리의 언약 관계를 감사함으로 고백하고 찬양하는 행위.

- 여기에서 나, 믿는 이들의 공동체인 교회의 정체성이 드러나고 시작됨.

 

3. 실천하는 믿음

-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의 두 단계, 회심의 단계 그리고 그 믿음을 가지고 사는 것.

- 한 순간에 시작이 되어서 그것이 죽을 때까지 쉬지 않고 삶의 실천을 통해 지탱되고 유지되는 믿음.

 

4. 앎을 추구하는 믿음

- 지성과 이성, 상식을 통해서 타인과 소통하고 배려하며 인간답게 삶을 살아가기 위해 애 쓰는 것.

 

 

하나님이여,

사슴이 시냇물을 찾기에 갈급함 같이

내 영혼이 주를 찾기에 갈급하나이다. 

(시 42:1)

Posted by 지윤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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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리해부" 옥성호

2019. 6. 11. 16:37


차갑고 날카로울 것 같아서 겁이 났지만
오히려 뜨거운 책.

Posted by 지윤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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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원하는 믿음의 증거"(생명의 말씀사, 존 오웬 지음, 조계광 옮김) 2018. 2월


1. 첫 번째 증거

구원하는 믿음은 오직 그리스도의 사역을 통해 죄인들을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방법만을 선택하고, 수용하고, 인정한다.


- 구원하는 믿음의 본질에 대한 부연

첫째, 죄인들이 구원을 받는 방법은 종교를 구분 짓는 가장 근본적인 문제다.

둘째, 하나님이 죄인들을 구원하기 위해 마련하신 방법은 무한한 지혜에서 비롯했다.

셋째, 성경을 비롯해 모든 신성한 제도는 처음부터 죄인을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방법이 교환, 대리, 속죄, 만족, 전가에 근거한다고 증언한다.

넷째, 하나니의 영광을 밝히 보고, 그분의 구원계획을 옳게 깨달으려면 몇 가지가 선행되어야 한다.

다섯째, 복음은 그리스도의 인격과 중재와 보혈과 의와 중보를 통한 구원의 길을 선포한다.


- 구원하는 믿음은 하나님이 제시하신 구원의 길을 인정함으로써 그분께 가장 큰 영광을 돌린다.

(붙잡아야할 원리들)

하나,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은 하나님의 지혜와 권능과 선하심과 사랑과 은혜에서 비롯한 결과다.

둘, 복음의 목적은 이 사실을 나타내고, 선포하고, 증언해 그 안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것이다.셋, 구원하는 믿음은 일너 일에 관한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임으로써 그분을 영화롭게 하는 영혼의 행위이자 의무요 기능을 의미한다.

넷, 구원받은 영혼은 다른 구원의 길들이 하나님의 구원의 기로가 상반되든 아니면 그것을 보충하든 상관없이, 다른 무엇을 통해 하나님의 인정을 받아 생명과 구원을 얻기를 바라지 않고, 그분의 길과 다른 모든 길을 거부한다.


  • 구원하는 믿음은 하나님이 제시하신 구원의 길을 인정함으로써 우리의 영혼을 가장 크게 만족시킨다.
  • 구원하는 믿음의 유익

첫째, 구원하는 믿음은 어떤 시련이 닥쳐도 영혼이 절망하지 않도록 지켜 준다.

둘째, 구원하는 믿음은 가혹한 절망감으로부터 영혼을 보호한다.

셋째, 구원하는 믿음은 하나님을 사모하게 한다. 

넷째, 하나님의 구원이 길을 끝까지 굳세게 견지하면 마음속에서 믿음의 역사가 일어나고, 믿음의 본질이 밝히 드러나기 시작한다.


-구원하는 믿음이 요구하는 세 가지

첫째, 복음이 선포하는 그리스도 안에 나타난 하나님의 지혜와 사랑과 은혜와 긍휼의 계시를 영적으로 깨달아야 한다.

둘째, 죄인들을 구원하는 이 방법 안에 나타난 하나님과 그분의 영광을 영적으로 지각한 믿음은 그 안에 있는 모든 것이 구원과 칭의에 매우 적합하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셋째, 본질적으로 참된 믿음은 다른 모든 구원의 길과 수단들을 배격한다.


- 구원하는 믿음은 하나님이 제시하신 구원의 길을 인정함으로써 그분의 율법을 가장 존귀하게 여긴다.



2. 두 번째 증거

구원하는 믿음은 성경에 계시된 대로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거룩함과 복종을 습관적으로 추구한다.


-구원하는 믿음은 어떤 시련을 겪든지, 어떤 암울함에 처하든지 결코 포기하지 않는다. 모든 상황 속에서 거룩함을 추구한다.

첫째, 모든 인간의 본성에는 특히 중요한 문제들과 관련해 도덕적인 선과 악을 구별할 수 있는 빛이 존재한다. 

둘째, 구원하는 믿음은 양심을 통해 선과 악을 분별하게 할 뿐 아니라, 율법을 통해 선과 악을 아는 지식과 어떤 행위가 무죄이고 유죄인지 판단하는 능력을 갖추도록 인도한다.


  • 그러나 믿음을 통해 거룩함과 복종을 추구하는 것은 양심이나 율법의 차원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그 이유는, 

하나, 선을 인정하고 악을 단죄하는 율법의 기능은 개별적이다.

둘, 선을 인정하고 죄를 단죄하는 것은, 선한 것 자체를 사랑하고 악한 것 자체를 미워하는 마음이 없어도 얼마든지 가능하다.


  • 그 누구도 구원하는 믿음의 빛이 없으면 거룩함과 복종에 대한 하나님의 계시된 뜻을 항상, 보편적으로 인정할 수 없음에 대해, 

>인정의 대상 : 

첫째, 거룩함과 복종의 근본 또는 원인은, 우리의 본성이 온전히 혁신되어 하나님의 형상으로 변화되는 데 있다. 

둘째, 이 거룩함은 생각과 감정 속에서 항구적인 원리로 작용한다.

셋째, 죄의 첫 번째 기능이 우리 안에 역사하는 “죄의 정욕”으로 읽컬어지듯, 이 거룩함도 성향이나 경향 또는 욕구로 일컬어질 수 있다.

넷째, 이 거룩함은 내적이거나 외적인 모든 행위와 의무와 사역을 통해 드러나야 한다.

>인정의 본질 :

첫째, 구원하는 믿음이 있는 사람의 마음은 어떤 상황이나 유혹에 직면하든 거룩함이나 그와 관련된 것을 조금도 싫어하지 않는다.

둘째, 구원하는 믿음이 있는 사람의 영혼은 거룩함을 조금도 싫어하지 않기 때문에 거룩함이 완화되거나 다르게 바뀌는 것도 원하지 않는다.

>인정의 근거 : 


하나님에 관한 근거, 첫째, 믿음은 주로 거룩함의 내적 형태 안에서 하나님의 형상을 발견한다. 

둘째, 믿음은 새로운 피조물의 냊거 행위와 효과, 곡 새로운 복종의 원리와 관련해서도 동일한 기능을 발휘한다.

셋째, 믿음은 내외적인 특별한 의무와 관련해서도 동일한 기능을 발휘한다.

우리에 관한 근거, 

첫째, 복음적인 거룩함의 원천과 원리는 영적인 구원의 빛이다.

둘째, 영적 생명의 원리를 갖추어 거룩함으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 이것이 그분이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것이다. 

셋째, 영혼의 감정 및 거기서 비롯하는 모든 복종의 의무에 대한 이 원리의 본질과 기능도 위와 똑같이 말할 수 있다.


  • 믿음이 거룩함을 인정하는 방법과 수단과 기능

첫째, 생각이 이 거룩함에 미치지 못하면 즉시 불만과 수치심을 느끼게 한다.

둘째, 믿음은 또한 영적 만족을 통해 거룩함을 인정한다. 



3. 세 번째 증거

구원하는 믿음은 거룩한 예배를 드릴 때 모든 은혜를 활용하려고 항상 노력한다.


-이와 관련되어 사람들이 저지르는 큰 두 가지 잘못

첫째, 의무를 늘리거나 의무만을 열심히 이행하는 잘못이다.

둘째, 은사만을 의지하여 의무를 이행하는 잘못이다.


-구원하는 믿음을 옳게 활용하지 않은 결과

첫째, 이 의무를 소홀히 하는 거슨 모든 그릇된 예배의 원인이다.

둘째, 많은 사람이 올바른 예배를 무시하고 거룩한 예배의 엄숙한 의식을 외면한 채 헛된 상상으로 위로를 찾고, 흥분에 들뜬 찬양을 부르고, 거짓 기쁨을 내보인다.

셋째, 이와 동일한 이유에서 어떤 사람들은 제도화된 예배를 전혀 인정하지 않고, 오직 자연 종교만을 추구하는 불경을 저지른다.


  • 은혜를 활용하기 위한 방법

첫째, 하나님 앞에 나아갈 때마다 마음속으로 무한히 완전하신 그분의 본성을 의식하려고 항상 노력하라.

둘째, 믿음으로 올바른 예배를 드리려면, 우리가 가장 잘한 의무조차도 위대하고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서는 참으로 보잘것없음을 마음을 의식하고, 하나님이 그것을 받아주시려면 무한히 자기를 낮추셔야 한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셋째, 부주의한 태도를 가지고 예배의 의미를 이행하며 믿음을 온당하게 활용하지 않는 것은 하나님ㅇ르 가장 크게 모욕하는 일이다. 

넷째, 예배의 의무를 통해 하나님과 관계를 맫을 때 무엇에 관심을 기울여야 하는지 항상 기억해야 한다. (하나님의 영광과 관련된 일, 우리 자신이 영혼과 관련된 일.)

다섯째, 의무를 이행하려는 열심을 방해하는 경험들과 요인들을 경계하라.

여섯째, 마지막으로 가장 중요한 규칙은 그런 모든 의무를 이행할 때 항상 주의 깊게 그리스도를 생각하고, 구분의 직임을 기억하는 것이다. 


-기도하기 위해 모인 사람들이 기도에 재능이 없어서 은혜로운 시간을 함께 하기 어렵다고 불평하는 사람들에 대한 반론

하나, 사람들마다 기도의 은사가 크게 차이가 나는 것은 사실이다.

둘, 그러나 우리는 섭리 안에서 이 사람들과 기도하기로 부르심을 받았다. 이것은 의무이다.

셋, 기도의 은사가 아무리 부족하더라도 기도를 통해 그들의 마음속에서 은혜가 역사한다면, 우리의 마음속에서도 은혜가 역사하기 마련이다.

넷, 기도의 실질적인 내용에 무엇인지를 인지하고, 믿음을 활용하기 위해 기도의 주제에만 관심을 집중하라. 그러면 믿음이 그 고유한 기능을 발휘할 것이다.



4. 네 번째 증거

구원하는 믿음은 영혼을 특별한 회개의 상태로 이끈다.


  • 특별한 회개의상태란 무엇을 말하는가?

믿음이 때로 그것을 통해 그 능력과 진정성을 드러내는 회개의 상태를 가리킨다.


  • 어떤 사람들이 이 특별한 회개의 상태를 필요로 할까?

첫째, 자신의 부패함과 유혹 때문에 불시의 공격을 받고 큰 죄를 지은 사람들이다

둘째, 추문과 비방을 야기하는 죄를 저지른 사람들이다.

셋째, 혼란과 어려움을 야기하는 정욕과 부패에 사로잡힌 사람들이다.

넷째, 자신이 살고 있는 지역과 시대의 죄를 탄식하는 사람들이다.

다섯째, 솔로몬이 전도서에서 증언한 대로 인생의 대부분을 살고 나서 세상의 것을 좇는 것이 헛되다는 사실을 깨달은 사람들이다.

여섯째, 마음에 상처를 입고 그리스도의 사랑에 깊은 감명을 받은 사람들이다.


  • 이 특별한 회개의 상태는 어떤 의무들을 요구하는가?

첫째, 이룬 것이 미미할지라도 믿음은 진지하게 목표를 추구함으로써 자신의 존재를 나타낸다. 

둘째, 앞으로 살펴보겠지만 이 회개의 상태는 몇 가지 의무를 요구한다. 

셋째, 이 회개이 상태는 마음에서 느끼는 불만족과 다르다. 


  • 첫 번째 요구 : 세상을 멀리하라

첫째, 그들은 반드시 지켜야 할 자연적이고 도덕적인 의무를 무시했다.

둘째, 그들은 성경이 요구하지 않는 의무를 이행했다.

셋째, 그들은 맹세를 통해 그들의 지도자들이 부여한 가식적인 종교 생활의 규칙에 스스로를 옭아맸다.


  • 세상을 멀리하는 다섯 가지

첫째, 세상의 바람직한 것들을 원하는 감정을 죽여야 한다.(세상을 사모하는 감정부터 제거, 하나, 세상의 것들이 우리에게 만족이나 안식을 주기에는 매우 불확실하고 공허하고 무능력하다는 것을 항상 분명하게 의식해야 한다. 둘, 항상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리스도께 복종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셋, 항상 영적이고 영원한 것을 생각해야 한다.)

둘째, 세상의 것들을 원하는 감정을 죽이면, 두려움과 분노와 슬픔과 같은 격정이 완화되고, 사랑과 소망과 기쁨이 생겨난다. 

셋째, 세상을 멀리하려면 현재의 상황과 미래의 일을 불안해하는 마음을 버려야 한다. 

넷째, 세상을 멀리하려면 항상 일상의 일과 의무보다 신앙의 의무를 우선시해야 한다. 

다섯째, 세상을 멀리하려면 그리스도와 복음을 위해 기꺼이 모든 것을 포기해야 한다.


  • 두 번째 요구 : 지난날의 죄를 기억하고, 스스로를 미워하라.

지난 날의 죄를 기억하는 방법 세 가지

첫째, 어떤 사람들은 지난날의 죄를 기억하면서 만족과 기쁨을 느낀다.

둘째, 어떤 사람들은 죄를 기억함으로써 불안과 공포와 절망에 시달린다.

셋째, 어떤 사람들은 죄를 기억하고 회개한다. (삼중거울의 역할, 하나, 영혼은 자신의 죄를 통해 부패한 본성, 곧 그런 열매를 맺은 뿌리의 악한 속성을 깨닫는다. 둘, 영혼은 자신의 죄를 통해 하나님의 은혜와 인내와 용서와 긍휼을 깨닫는다. 셋, 영혼은 자신의 죄를 통해 그리스도의 보혈과 중보의 효력을 깨닫는다.)


  • 세 번째 요구 : 죄에 대해 경건한 슬픔을 느끼라

경건한 슬픔은 무엇으로 이루어지는가?

첫째, 경건한 슬픔은 두 가지 곧 과거의 죄와 현재의 결함에 관심을 기울인다.

둘째, 경건한 슬픔은 자기반성, 수치심, 불한, 탄식, 동기 부여로 이루어져 있다. 


  • 네 번째 요구 : 죄를 물리치기 위한 행동을 취하라


  • 다섯 번째 요구 : 홀로 있는 시간에 각별히 주의하라

첫째, 밤이든 낮이든 다른 시간보다 혼자 있는 시간에는 더욱 조심해서 경계해야 한다.

둘째, 겸손한 심령 상태를 잃게 하는 것은 유혹이다. 


  • 여섯 번째 요구 : 구원을 간절히 바라라

첫째, 영혼은 남아 잇는 죄의 권세로부터 구원받기를간절히 갈망한다.

둘째, 영혼은 죄로부터의 구원을 갈망할 뿐 아니라 영광을 온전히 누릴 수 있기를 갈망한다. 

셋째, 그러나 죽어 없어지기를 바라는 갈망은 살고 싶어하는 자연스러운 욕망에 의해 억제된다. 


  • 일곱 번째 요구 : 영적인 것들을 생각하라


<부록 >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14장 구원하는 믿음

Posted by 지윤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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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불어도 좋아(김병년  Ivp)


이 불안정한 시대 속에서 그리스도인들은 믿음이 있으면 위기를 극복하고 평탄한 삶을 유지할 수 있을 것이라 착각하기 쉽다. 하지만 믿음은 그런 안정을 보장하는 손쉬운 도구가 결코 아니다.  25


하지만 내가 알게 된 것은, 우리가 추구하는 행복보다 그리고 불가피하게 겪는 고통보다 더 중요한 분이 계시다는 사실이다. 그분은 바로 하나님이시다. 이 하나님은 거룩한 분이시고, 거룩이야말로 우리 존재의 의미이다. 우리가 이 땅에 살아가는 것은 행복하기 위함이 아니라, 거룩한 존재가 되기 위함이다. 그리고 고통보다 그 사사실을 분명하게 가르쳐주는 도구는 없다.  41


사람의 몸은 “바사르”다. 소멸하는 존재다.   50


세상은 약한 것을 싫어한다. 약해서 흔들리고 넘어지는 것보다 강한 발로 당당히 서는 것을 더 좋아한다. 그리고 약해 보이는 것들을 짓밟고 조롱하고 무시한다.   51


살아있다. 아무것도 변화되지 않는 상화 속에서도 그저 살아가는 우리들이 기적 그 자체다. 새 창조로 연약함을 강건하게 바꾸는 것이 아니라, 연약한 것을 계속 연약함 속에서 보호하신다. 그것이 기적이다.   54


“여기 내가 보살피도록 요청을 받았지만 너무도 믿을 수 없는 방법으로 나를 자기 삶과 마음으로 데려간 사람이 있습니다. 내가 아는 가장 연약한 사람인 동시에 가장 강한 사람이 여기에 있습니다.”(헨리 나우웬)  55


흔들리기에 깨끗하다. 너무나 약해서 이리저리 흔들리더라도,역설적이게도 그 흔들림이 나를 온전하게 하고 세상으로부터때 묻지 않게 한다.  55


임마누엘 하나님이 나같이 누추한 인가에게 오신 것처럼, 나 역시 냄새나는 아내 곁에 머무르는 고통을 감내하고 다가가는 사랑을 배워야 한다.   69


그리고 그는 아내를 너무도 사랑했기에 지치지 않는다고 말했다. 놀라웠다. 나도 지치지 않는 사랑을 하고 싶다. 사랑에 신실한 사람이 되는 것, 그것이 거룩이다. 거룩은 하나님을 향할 때는 경외라는 옷을 입지만, 사람을 향할 때는 사랑의 옷을 입는다.   85


혼란, 당혹, 당황. 이런 단어가 훨씬 익숙한 내게, 감사에 앞서 울고 싶은 내게, 감사부터 하라는 강한 압박은 인간의 본성을 철저히 거스르는 것이었다.  114


물론 천국은 모든 그리스도인이 사모하는 이상적인 세상, 우리가 꼭 가야 할 세상이다. 그런데 이해할 수 없고 설명할 수 없는 당황스러운 고통을 만났을 때, 사람들은 천국으로 모든 것을 밀쳐 버린다.  117


비교로는 결코 참된 감사를할 수 없다. 자기보다 좋은 형편의 사람가 비교하든, 나쁜 상황에 있는 사람과 비교하든 감사는 비교에서 얻는 것이 아니다.  119


잠언은 자녀에게 감사하는 법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지혜로운 삶을 가르친다. 악인을 따르지 않는 법, 선을 행하는 법, 의인으로 사는 법 등을 말이다. 잠언은 ‘가식을 강요하는 문화’와 아무런 관계가 없다.  121


“거듭난 사람은 지성을 통해서 느끼고 감성을 통해서 다스린다”(제임스 패커)  123


위선적인 감사는 인간성을 파괴하고 인간의 감정을 왜곡한다. 감사하기 전에 삶이 아픔을 치유할 시간이 필요하다.  126


우리는 환란을 당하면 삶의 자세나 태도를 바꾸기보다는 감사헌금이나 예물로 하나님을 한 순간에 만족시키려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감사의 제사는 이전에 드리지 못한 것을일시불로 드리는 것이 아니라, 회복해야 할 삶의 태도와 방식을 우선적으로 바꾸는 것이다. ‘감사의 제사’는 말의 반복이 아니라 옳은 행위로 돌이키는 것이다.  129


감사의 제사는 사랑이다. 사랑이 제물이다.   130


“그리스도인은 자기 안에 살지 않고 그리스도와 이웃 가운데서 산다. 그렇지 않으면 그리스도인이 아니다.”(마르틴 루터)  140


중환자인 아내를 두고도, 조금만 재정이 생기면 ‘나중에 필요할 때 또 채워 주시겠지’ 하는 생각으로 여기저기 헌금을 드렸다. 어찌 보면, 한 방의 은혜로 모든게 역전되기를 꿈꾸는 ‘영적 대박 심리’였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자족을 배우면서, 돈을 저축해 나가기 시작했다.  144


소유하면서도 소유욕에 사로잡히지 않으려면 대단한 분별력이 필요하다. 내게 있는 것을 드리는 일은 엄청난 돈을 필요로 하는 것이 아니다. 리처드 포스터의 말처럼 하나님은 “막대한 재산이 아니라, 막힘 없는 통로가 되려는 겸손한 의지”를 가진 평범한 사람들을 그분의 위대한 일을 이루는 종으로 쓰신다.  148


우리는 고통당할 때 더욱 이기적으로 돌변하지만 예수 그리스도는 고통당할 때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셨다. 고통 속에서 ‘부재하신 하나님’은 우리가 찾는 전능한 능력을 숨기시고 우리와 함께 고통당하기로 결심하셨다.  160


“병년아, 뭘 더 달라는 거냐. 난 내 아들가지 다 너에게 줬다. 근데 또 달라고. 아들까지 주었는데 뭘 더 주겠니?”  할 말이 사라졌다.  164


사람이 누리는 자유는 질병에서 해방되기 때문이 아니라 죄책감과 죄로부터 자유로워질 때 오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둠에 갖힌 사람은 아무리 건강해도 이 자유를 누리지 못한다.  165


고통중에 거하시는 하나님이 우리의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은 고통을 참는 데 전능하시다. 하나님은 죄인을 사랑하는 데 전능하시다. 죄인들과 함께 사는 데 전능하시다. 아멘.   166


그분의 능력으로 창조하신 세상을 누리는 것만 해도 차고 넘친다. 언약을 지키는 그분의 신실한 능력만으로도 내 삶은 이미 충만하다.  1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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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좋은 책.

Posted by 지윤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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