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04.06 주일 팔복시리즈 20.고난받는 팔복의 사람(2)
마태복음 5:11,12
나로 말미암아 너희를 욕하고 박해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슬러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도 이같이 박해하였느니라
너희는 세상의 빛이요 소금이다 라는 것은 신자가 이 세상과는 다른 사람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이것은 예수 닮음의 사람됨을 말합니다.
예수를 믿는 다는 것은 그리스도예수의 사람이 된다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신자가 예수를 많이 닮은 팔복의 사람이 될수록 박해를 받게 됩니다.
"욕하고",
"박해하고",
- 힘으로 팔복의 사람을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하여 박해하는 것입니다.
"거짓으로",
- 사실, 진실, 진리가 아닌 옳지 않은 방식, 사실이 아닌 것들로 구실 삼아서 팔복의 사람을 박해하는 것
입니다.
"모든 악한 말"
- 말뿐아니라 행동까지, 그리스도인들에게 불행이 일어나길 바라는 말을 의미합니다.
이런 모든 박해는 세상 사람들이 하나님의 나라를 거절하여 하는 박해인 것입니다.
예수가 싫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통치가 싫었던 것입니다.
마4:17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왔느니라.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나라가 오면 영토가 넓어지고 다른 나라들을 정복하며, 모든 물질과 부를 누리며 사는 강대국이 되는 것인줄 알았지만, 예수님은 "회개하라"고 외치셨습니다. 복음을 받아들이는 사람에게는 천국이 복이지만, 그것을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심판이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이 예수님을 미워한 것은 예수님이 행한 기적때문이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이 자신들과 달랐기 때문이었습니다. 순전한 팔복의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심령이 부요한 자는 예수님의 가난한 심령을 보고 잘못됨을 깨닫고,
완악하고 악을 행하는 사람들은 온유하신 예수님을 보고 잘못을 깨닫고,
포악한 사람들은 자신을 십자가에 못박아 죽이는 사람들조차 긍휼히 여기는 그리스도를 보고 깨달으며,
방탕한 욕심으로 사는 사람들은 마음이 청결한 예수님을 보고 정죄를 받음을 깨닫고,
불의한 사람들은 의를 위해 박해를 받는 그리스도를 보며 자신의 잘못을 절실하게 자각했기 때문입니다.
자기의 이익을 위해 미워하며 시기하며 분쟁하는 사람들은 자신을 내어준 그리스도를 보며 깨닫기 때문에 그리스도를 미워하지 않을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기원전 6세기경, 그리스에는 도편추방제라는 민주정치제도가 있었습니다.
매년 한번씩 사람들이 모여서 조개껍질이나 도자기 조각에 도시에 사는 사람들 중에서 위험인물이라고 여겨지는 사람의 이름을 써서 내고, 6000표 이상이 나오면 그 사람을 10년간 도시에서 추방하는 제도였습니다.
당시 아리스티데스라는 훌륭한 정치가이며 사상가가 있었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아니었지만 "의로운 사람" 아리스티데스라고 불리웠습니다. 어느날 도편추방의 투표를 하는데 많은 사람이 그의 이름을 적었고, 글자를 모르는 어떤 사람이 그인줄 모르고 그 이름 적는 방법을 묻자, 아리스티데스는 그에게 그 사람이 무엇을 잘못했는지를 물었습니다. 그의 대답은, "몰라요, 나는 그사람이 뭘 잘못했는지 모릅니다. 그렇지만 나는 그 인간이 도처에서 "의로운 사람"이라고 수없이 얘기하는 그 소리를 듣는게 지긋지긋해서 쫓아내려고 하는 겁니다."
요 3:20 악을 행하는 자마다 빛을 미워하여 빛으로 오지 아니하나니 이는 그 행위가 드러날까 염려함이라.
시시때때로 자기의 이익을 위해 변절하는 사람에게는 박해가 없습니다.
세상은 그런 무가치한 사람을 박해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진리는 참되고 맛스럽고 달콤한 것이지만, 그것을 느끼고 아는 사람에게만 그런 것입니다.
선은 아름답고 좋은 것이지만 그 선을 아는 사람에게만 그것이 그런 것일 수 있는 것입니다.
너절하고 부도덕하게 살다가 세상 법정에서 정죄받고 투옥되는 사람을 박해받는다고 하지 않습니다.
자신이 행한 일로 인한 벌을 받을 뿐입니다.
예수님이 무슨 나쁜일을 했습니까?
제자들이 무슨 나쁜일을 그렇게 많이 했습니까?
스데반 집사는 예수그리스도의 모본을 정확히 따랐습니다.
그런데도 세상은 그들은 미워하고 지독하게 박해했습니다.
무엇때문인지 아십니까? 그들이 세상과 달랐기 때문입니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세상은 불결했고 그들은 거룩했기 때문이며,
세상은 세상을 사랑했고 그들은 하나님을 사랑했기 때문입니다.
"초대교회의 박해"라는 책에서 기술된 것을 보면,
끝까지 기독교 신앙을 고집하는 여자들을 잡아다가 옷을 벗기고 황소들을 들이받게 해서 배에 구멍을 내었고, 여섯마리의 말들에 사지, 오지를 묶어서 능지처참을 시키기도 하였고, 굶주린 야수들에게 먹이로 내어주기도 하였으며, 뜨거운 불덩어리로 성기를 지지기도 하였고, 불에 녹인 납을 몸에 붓기도 하였고, 아랫도리를 화형시키며 머리에는 찬물을 부어 자신의 신체가 타는 것을 끝까지 보도록 하기도 하였습니다. 이런 핍박속에서 죽어간 그들은 이것을 조금도 이상하게 여기지 않았고, 그리스도와 함께 그 고난을 당하며 거룩하다는 이유로 박해받는 것을 영광으로 알았습니다.
그리스도인이 박해받는 것은 세상이 그리스도를 경외한다는 또다른 표현인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은 무시할 수 없는 존재라는 것을 세상이 스스로 입증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너희가 팔복의 사람이 되면 세상으로부터 박해를 받을 것이라고 솔직하게 말씀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팔복의 사람이 되면 박해를 받고 심지어는 목숨을 잃게되기도 하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희에게는 복이 있는데, 내가 너희를 사랑하고 복을 주기 때문이다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아니면 전할 수 없는 그리스도의 그 빛, 우리가 아니면 맛을 내게 할 수없는 그리스도의 그 소금이 되도록 이 모든 것을 주신 것입니다. 우리가 온 맘으로 기도하고 이 진리를 전할 때, 우리는 그것을 받아들인 회개한 세상과 함께 기뻐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들도 우리와 함께 빛의 사람, 소금의 사람이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 일이 언제나 일어나지는 못할 지라도, 박해가 더 많이 있을 지라도 그때마다 우리가 부당한 대접을 받는다고 생각하건 복수의 칼을 가는 옹졸한 사람이 되지 않습니다. 그 이유는 주님도 때로는 이 세상에서 그런 대접을 받으시면서 하나님 안에 있는 그 의로운 통치를 이 세상에 알리셨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며 그리스도와 함께 죽어가며 그리스도와 연합하여
신자가 이 세상에서 받을 수 있는 최고의 복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는 것입니다. 거기에 그리스도와 함께하는 연합의 신비가 있고, 그리스도와 함께 죽어가며 사는 부활의 능력이 무엇인지 아는 기쁨이 있기 때문입니다.
주와 함께 짓밟혀 본 사람만이 주님의 이름이 얼마나 거룩하고 하나님의 영광이 얼마나 위대한 것인지 아는 인식이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실때까지는 반드시 박해가 있다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