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게 하시는 하나님.

A. 살리심 : 생명 (길을 알고 그 길을 갈 수 있는 힘도 있어야한다)

 - 길을 찾는 종교, 진리를 찾는 철학은 모두 생명을 얻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지만

    생명은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얻을 수 있다. 

    그리스도외의 길과 진리는 "생명"이라는 것을 주지 못한다.


B. 일으키심 : 소명을 따르는 삶

    죽은 우리를 살리시고 그뿐아니라 일으켜세워 다시 그 길을 가게 하심


C. 하나님 앞에 살게 함

    - 내가 지금 하나님을 기뻐하고 있지 않다면 하나님 앞에서 살고 있는 것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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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50:20


요셉이 하나님을 믿는 것은, 


하나님의 선하님과 섭리를 믿은 것.

(섭리는 감추어진 하나님의 뜻, 성경은 드러난 하나님의 뜻.)


요셉 자신의 꿈과는 전혀 다른 삶이 전개되었지만 하나님은 바꾸시는 하나님.


믿음은 말굽자석, 쇳가루는 감사의 조건들,

나쁜 일들을 통해서 하나님을 의지하게 되는 것, 그 일들을 감사하라.


>> 당장 코앞의 일을 알 수도 없고, 먼 미래는 더더욱 알 수가 없다.

좋게, 모든 것이 좋게 되기를 바라지 않는 사람은 없겠지만

모든 것은 지나고나서 돌아봐야 그것이 참으로 좋은 것이었는지를 알게 된다.


"고통의 유무만으로는 우리에게 유익인지 아닌지를 가늠하지 못한다." (하나님 앞에서 고통을 묻다 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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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9.25 산상세미나  <부활, 그 세 번째 지평> 김남준 목사님


  1. 들어가는 말


십자가는 죄 사함을 주고, 부활은 영생을 도입시킨다.

부활은 단순히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보이고, 

신자에게 미래에 일어날 부활에 대한 소망을 갖게하기 위함만이 아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부활에 “현재적”으로 참여함으로 현실에 맞서 싸우며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소명을 따라 살 수 있는 힘을 얻는다.



II. 부활의 지평들


A. 첫 번째 지평 : 역사적 부활

- 과거. 구원의 근거를 마련.


B. 두 번째 지평 : 종말적 부활

- 미래. 구원의 완성.

- 신자는 “생명의 부활”로, 불신자는 “심판의 부활”로. 우주적 부활.



C. 세 번째 지평 : 현재적 부활

- 현재. 구원의 효과

- 각 사람 안에서 일어나는 일. 오늘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사는, “부활”을 경험함.

- 옛사람은 죽고 새사람(생명 덩어리)이 일어난다.

- “사랑”은 “생명”을 가진 주제.



III. 청교도 영성의 핵심 : 예수와 함께 죽고 다시 삶


A. 그리스도와의 연합

- 존 오웬 : 원리적 연합과 실제적 연합.

- 피터 마티? : 성육신적 연합, 신비적 연합, 영적 연합  ———— 여기까지 하고 다음에 이어서 계속.


B. 예수 죽음에 참여함




C. 예수 부활에 참여함





IV. 결론


< 관련 시리즈 > 

은혜와 부패,  성화와 헌신,  자기 깨어짐,  죄죽임과 은혜살림,  죄와 은혜의 지배


### 

“환경적 결핍” 때문에 불행한 것이 아니라 “예수를 닮아가는 기쁨”이 없어서 불행한 것이다.


깊은 기도는 깊은 말씀의 사로 잡힘에서 나온다. 


은혜에의 감각이 있을 때는 옛 사람과 대면하지만 그렇지 못할 때는 옛 사람이 느껴지지 못한다.


옛 사람에 대한 불신이 미움으로, 증오로, 투쟁으로 발전하고 

이 투쟁에서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생각한다. 이때 “실재화”가 이루어진다.


“공부하지 않음으로 인해서 받는 피해는 엄청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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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1.4. 주일. 사랑으로 고치심. 김남준 목사님

 

시편 107편 20,21절

그가 그의 말씀을 보내어 그들을 고치시고 위험한 지경에서 건지시는도다

여호와의 인자하심과 인생에게 행하신 기적으로 말미암아 그를 찬송할지로다

 

 

I. 본문해설

 

이스라엘이 바벨론에서 예루살렘으로 귀환하고 쓰여진 시입니다.

하나님의 인자(헤세드)는 언약백성에게 베푸시는 끊임없는 사랑입니다.

이 시편에서는 이 하나님의 헤세드와 하나님의 구원을 연결시켜 말씀하십니다. 

 

 

II. 인자하심과 행하심

 

본문에서 찬송의 제목은 하나님의 인자하심과 행하심입니다.

인자는 하나님의 성품이고,행하심은 그 성품에서 나온 하나님의 하신 일입니다.

 

인간의 불행은 하나님이 어떤 분임을 모르는 것이 원인입니다.

그래서 '구원' 다음의 은사는 '지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구원'은 '지식'을 통해서 오는 것이이므로 '지식'은 중요한 은사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지식은 하나님은 어떤 분이시고(속성),

하나님께서 어떤 일을 하시는지(속성의 시행 방식)에 대한 지식입니다.

 

인간이 짐승과 다른 것은,행복할 때 좋아하고,

불행할 때 그 의미를 찾아내려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바벨론 포로 귀환은 출애굽과 함께 이스라엘에게 '기적'으로 기억되는 일이며,'헤세드'라는 단어는 이스라엘에게 특별한 의미를 가집니다.

헤세드를 받은 백성을 '하시드'라고 하는데, 이것은 그 '헤세드'를 받은 백성다운 삶을 사는 것이 포함된 것입니다. 

 

 

III. 인자를 보이시는 방법

 

A. 말씀을 보내심(말씀을 파견, 심부름보냄, 발사하심)

하나님은 창조하신 온 땅의 만물을 통해서 영광을 받으시기보다 하나님이 이해되는 우리의 지성 속에서 영광받으시길 원하십니다. 

교회는 이 일을 해야합니다.

 

더 크게, 더 많게, 더 능력있게는 바벨론의 가치이지 예루살렘의 가치가 아닙니다. 

이 진리를 전하는 것이 교회의 일입니다. 

 

성경에는 들으라, 잊지말라, 기억하라, 마음에 새기라는 말씀이 많이 나오는데 그 목적어는 주로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B. 백성을 고치심(라파 - 의사가 환자를 치료하는 동작)

이것은 영혼의 질병의 상태를 치료하시는 것을 말합니다.

불행의 궁극적인 원인도 자원이나 환경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망가진 관계, 사람과의 망가진 관계를 말씀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말씀을 보내시어 이것을 치료하십니다. 의사의 치료에 아픔이 동반되는 것은 환자를 고통스럽게 하려는게 아니라 잠시 아프더라도 온전하게 고치기 위해서라는 것을 알아야합니다. 

 

'행복한 거지보다 불행한 철학자가 되겠다'고 말하지만 하나님의 말씀으로 '행복한 지혜자'가 되어야합니다. 

 

C. 위경에서 건지심(위험한 지경, 웅덩이, 구덩이, 파괴, 절망적 위기,                        

                             자신의 힘으로 안되고 바깥의 도움이 절실한 상황)

한 해 동안 무슨 일을 만날른지 우리는 알 수 없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하나님은 인자하시고, 당신을 믿는 우리를 배반하지 않으시고 말씀을 보내어 고치시고 위경에서 건지신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여러분은 올 한 해를 늪에서 헤매이며 가시겠습니까, 

말씀으로 고치시고 위험에서 고치시는 하나님과 가시겠습니까?

Posted by 지윤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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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12.28. 주일. 우리가 의지할 주님(2)   김남준 목사님

시편 52:8-9

그러나 나는 하나님의 집에 있는 푸른 감람나무 같음이여 하나님의 인자하심을 영원히 의지하리로다

주께서 이를 행하셨으므로 내가 영원히 주께 감사하고 주의 이름이 선하시므로 주의 성도 앞에서 내가 주의 이름을 사모하리이다


I. 본문해설



II. 주 뜻 행하시는 하나님

하나님은 무슨 일을 하신다는 말씀입니까?

하나님은 악한 자를 반드시 징벌하시고 하나님을 의지하는 백성들을 보호하십니다.


막 베어놓은 풀은 지금은 멀쩡해 보이지만 쉽게 말라 사그라집니다.

악인들이 이와 같습니다. 시인은 지금 악인을 이렇게 보고 있는 것입니다.


풀과 꽃들의 향기는 외부로부터 자신을 보호하려는 목적으로 내뿜는 것입니다.

우리의 시련, 고통, 아픔의 사태를 통해서 마치 활이 악기를 연주하듯이, 우리를 아름답게 연주하십니다. 우리는 괴로울지 모르지만 그 연주는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줍니다.


시인은 하나님의 거룩한 주권을 신뢰하였기때문에 

복수를 꿈꾸지 않고 고통속에서도 선으로 이끄실 것을 믿고 감사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그리스도의 집에 심겨진 하나님의 자녀들의 삶입니다. 

"은혜의 비밀"을 가진 하나님의 자녀들의 삶입니다. 




III. 고통받을 때 구할 바


A.  주께 감사함

시인은 감사할 상황은 아니지만 심판하실 하나님을 믿으며,

악인은 알 수 없는 '은혜의 생명'을 부음받아서 살아갑니다.

이 '은혜의 생명'은 사람들 앞에서 공개적으로 주시는 것이 아니라 

비밀스럽게 주시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은혜의 증거를 '외적 환경'에서 찾으려고 합니다.

그래서 무엇인가를 주시면 그것으로 인해서 교만해져서 미끄러지고

또 무언가를 가져가시면 그것으로 인해서 낙심하여 단절되고 맙니다.

그들에게는 좋은 것이 좋은 것이 아니며, 나쁜 것은 또 나쁜 것이 되고 맙니다.


그러나 이 시인 같은 사람에게는 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 모두 그에게 좋은 것이 됩니다.

이것이 그의 감사의 이유인 것입니다.


은혜는 환경이 아니고, 환경을 통해서 오는 것도 아닙니다.

은혜는 주님을 찾는 자에게 은밀히 주시는 것입니다.


B. 주를 사모함("바 꾸베" 사랑한다는 의미보다는 '소망을 두다'는 의미입니다)

주님은 우리를 사랑하셔도 우리를 "의지"하시지 않지만,

우리는 주님을 사랑하면 주님을 "의지"하게 됩니다. 

주의 이름에 소망을 두는 것은 '하나님을 사랑함'입니다.


평탄한 길이라면 가르쳐 줄 수 없는 하나님의 성품을 환경을 통해서 가르쳐주십니다.

환경이 십자가를 통해서 내어주신 하나님의 사랑을 없이 할 수 없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에게 악한 일을 행한 사람들의 악을 잊어버리시고 그들을 축복하고

복수하지 마시고 그 악의 피해가 나에게서 끝나도록 살아야합니다.

내가 그 악의 최종적 피해자가 되게 하시고 

많은 성도들 앞에서 하나님의 선하심을 이 시인처럼 노래하십시오.


악인들이 보기에는 외로운 사람같고,

부유한 자들이 보기에는 없는 자 같지만

여러분은 모든 것을 가진 사람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그런 자들과 함께 하시기 때문입니다.


"생사가 갈릴때 어린아이처럼 주님을 의지하게 하소서

가장 어려운 순간에 주님을 향한 찬송이 울려퍼지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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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12.21. 주일. 우리가 의지할 주님(1)   김남준 목사님


시편 52:6-8

의인이 보고 두려워하며 또 그를 비웃어 말하기를

이 사람은 하나님을 자기 힘으로 삼지 아니하고 오직 자기 재물의 풍부함을 의지하며 자기의 악으로 스스로 든든하게 하던 자라 하리로다

그러나 나는 하나님의 집에 있는 푸른 감람나무 같음이여 하나님의 인자하심을 영원히 의지하리로다

주께서 이를 행하셨으므로 내가 영원히 주께 감사하고 주의 이름이 선하시므로 주의 성도 앞에서 내가 주의 이름을 사모하리이다


I. 본문해설


다윗이 사울에게서 도망다니다가 아히멜렉에게로 숨은 것을 도엑이 사울에게 고합니다.

이렇게 어렵고 힘든 상황에서 다윗은 이 시편으로 노래를 한 것입니다.



II. 감람나무와 같은 성도


감람나무는 수성이 강하여서 어디서나 잘 자라고 번성하며 볕이 충분한 곳에서 더 번성합니다.

끈질긴 생명력을 가지고 있으며 격년마다 결실하고 늘 잎이 푸른 상록수 입니다.

식용, 미용, 저장용, 치료용, 그리고 여러가지 자원으로 쓰입니다.


A. 생명력과 열매맺음

'푸르다'는 것은 노쇠하지 않고 청년기와 같이 생명의 기운이 가장 충만한 상태를 말합니다.

'생명'은 하늘에서 공급되는 생명의 힘으로 하는 신앙생활입니다. 

이 땅의 자원을 의지하지 않고 하나님을 향해서 살아갈 비밀스런 힘을 공급받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생명과 사랑입니다.


B. 하나님의 집에 있음

신약적으로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람들이라고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와의 연합으로 주어지는 비밀스럽고 충만한 생명력입니다.


여러분의 존재를 한 시라도 잊지 마십시오.

여러분은 세상이 아닌 하나님의 집에 심겨진 사람들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교회에 '생산적인 존재'가 되어야 합니다.


여러분이 그리스도의 생명과 사랑을 누린 덕과 유익을 

교회와 세상이 누리게 하여야 합니다. 이것을 하나님은 기대하십니다.

이것이 영적인 번영입니다.



III. 인자하심을 의지함(실패하지 않는, 하나님의 인자하심)


"헤세드"(히)는 하나님의 속성으로서의 사랑입니다.

삶은 요동쳐도 변하지 않는 신실한 하나님의 인자입니다.

우리는 주님의 실패하지 않는 헤세드의 사랑으로 이제까지 살아왔습니다.


주님께 감사하십시오.

이해할 때 뿐만아니라 이해하지 못할 때에도 감사하십시오.

더 깊은 신앙을 가지십시오.

주님을 의지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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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12.14. 주일. 그의 피로 화목케 하심은   김남준 목사님


골 1:21-23

전에 악한 행실로 멀리 떠나 마음으로 원수가 되었던 너희를

이제는 그의 육체의 죽음으로 말미암아 화목하게 하사 너희를 거룩하고 흠 없고 책망할 것이 없는 자로 그 앞에 세우고자 하셨으니

만일 너희가 믿음에 거하고 터 위에 굳게 서서 너희 들은 바 복음의 소망에서 흔들리지 아니하면 그리하리라 이 복음은 천하 만민에게 전파된 바요 나 바울은 이 복음의 일꾼이 되었노라


I. 본문해설

아마도 사도 바울의 노년에 쓴 편지일 것입니다. 

골로새서는 위대한 기독교 신학을 보여주는 서신입니다. 



II. 우리의 정체


A. 구원 받기 이전

"악한 행실로 멀리 떠나 마음으로 원수가 되었던" 

구체적인 행실로 하나님을 대적하며, 주님을 훼방하고 지으신 목적과는 관계없는 삶을 살았던 우리였습니다. 다시 하나님과 사랑의 관계로 돌아갈 가능성은 전혀 없는 우리였습니다.


B. 구원 받은 이후

"그의 육체의 죽음으로 말미암아 화목하게 하사"

우리에게는 이것이 은혜이지만 그리스도께는 십자가에 못박히신 희생이었습니다. 

이것이 위대한 사랑의 표현입니다.

절망적인 인간이, 소망을 가진 인간이 된 것입니다.



III. 성도와 구원 계획

"너희를 거룩하고 흠 없고 책망할 것이 없는 자로 그 앞에 세우고자 하셨으니"

이것이 성도를 구원하신 계획입니다.


A. 거룩하게 하심

'너희'는 이미 구원받은 골로새 성도들입니다. 이미 신자들은 거룩해진 사람들일 것입니다.

그러나 그의 모든 것이 하나님에 거룩한 것은 아닙니다. 

이미 거룩하게 되었지만 완전하게 거룩하지 않으므로 거룩하게 되려고 몸부림치는 사람들입니다.


'거룩하라'는 말을 들을 때, 우리는 가끔 '학대받는' 느낌을 받습니다. 

우리를 위함이 아니라 하나님을 위해서 그렇게 명령하신다는 생각때문입니다.

그러나 모든 것에 있어서 완전하신 하나님께는 우리의 거룩함이 하나님께 어떤 보탬이 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고, 거룩하지 않아도 하나님은 아무런 부족함이나 고통을 받지 않으시는 분입니다. 이 명령은 우리가 '거룩함'안에서 행복해질 수 있기 때문에 '거룩하라'고 명령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신자의 가장 큰 의무는 '거룩해지는 것'입니다.

이 표본은 예수님께서 보여주셨고, 신자는 이 예수님을 닮는 것이 소원인 것입니다.


B. 흠이 없게 하심

"결점('모모스' 자연적-예쁜 사과의 흠, 도덕적-준수한 외모와 능력의 남자가 가진 성품적 결함)이 없는"


우리를 구원하시고 바로 데려가지 않으시고 이 땅에 두시는 것은 이 '흠이 없게' 하시기 위해서 입니다. 때로는 우리를 집요할 정도로 고치셔서, 그가 변화되는 만큼 그를 행복하게 하십니다.

인간의 불행의 원인은 하나님과의 관계에 있지만 그것이 실제로 나타나는 것은 그의 성품(사람됨)으로 인해 사람관계에서 오는 것입니다.



C. 책망할 것 없게 하심

"책망할 것이 없는"

하나님 앞에서뿐만 아니라 이웃 앞에서 끊임없이 온전함을 추구해서 그리스도의 구속의 은혜에 부끄럽지 않은 삶을 사는 것입니다. 



IV. 구원 계획에 부합하는 길

"만일 너희가 믿음에 거하고 터 위에 굳게 서서 너희 들은 바 복음의 소망에서 흔들리지 아니하면 그리하리라"


A. 믿음 안에 거함

"너희가 믿음 안에 머물기를 지속한다면"

믿음은 '단회적인 작용'이 아니라 '지속적인 은혜의 작용'입니다.

한 순간 울컥하는 믿음이 아니라 계속 타오르는 믿음입니다. 이것은 우리가 원한다고 되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원리를 따라야합니다. 이 원리는 사랑의 원리와 같아서 아름다운 사람을 만나면 사랑이 생기는 것처럼 믿음도 믿음의 대상이 제시될 때 믿음의 작용이 활발해집니다. 믿음의 대상에 대한 정확한 지식이 없다면 참된 믿음이 될 수가 없습니다.

언제나 성경을 공부하고 신학을 공부해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B. 터 위에 굳게 섬

"터"(복음진리, 교리의 터 '너희가 만일 터 잡혀 굳게 서서 지금까지 오고 있다면')

무엇을 믿는가에 대한 확고한 관점이 있고 그 위에 서 있는 것을 말합니다.

예전에 잡은 터, 그것이 지금까지 계속 이어져 오고 있는 것입니다. 

이 터는 '지식과 사랑의 강함'을 뜻합니다. 

여기에서 의무, 헌신, 사명에 대한 인식도 생겨납니다.


"내가 하나님의 자식으로서 하나님께 한 짓이, 내 자식이 나에게 한 짓보다 잔인하다."


C. 흔들리지 않음

"복음의 소망에서 흔들리지 아니하면 그리하리라"

교회를 통해 하나님의 경륜을 이루실 것이며, 내가 교회의 지체임을 굳게 붙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필요한 힘을 주시고 위로를 주시는 소망을 갖는 것입니다.



V. 적용

지금은 비록 하나님의 자녀이고 소중한 지체이지만 원래는 죄인이었던 정체를 잊지 마십시오. 그리고 그리스도의 구속의 사랑이 무엇을 위한 사랑인지 기억하십시오. 여러분이 어떤 터 위에 서 있는지 기억하며 충성하십시오. 하나님께서 은혜도 예비하셨고, 헤쳐나갈 사랑도 주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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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10.26 주일. 말씀을 보내시는 하나님. 김남준 목사님


시편 107:19~20


I. 본문해설


고통에서 건지신 하니님을 찬양하는 시편입니다. 

신자는 이 세상의 불완전함, 또는 자신의 죄 때문에 고통을 받게 됩니다.


히브리서에서는 신자를 '외국인', '나그네'라고 하였는데

돌아갈 곳, 바라볼 곳이 있다는 것입니다.


고통을 당할 때, 욥처럼 애매한 고난이라고 쉽게 말하지 말아야 합니다.

본문에서는 그들의 불순종으로 인해서 고통을 당하는 것이라고 못박아 말합니다.


우리의 관심은 행복이지만 하나님의 관심은 거룩입니다.

거룩함의 펼침이 행복이고 행복의 접음은 거룩함입니다.



II. 신자들이 고통받을 때


A. 신자들이 받는 고통

고통을 받을 때 그 사람이 무엇이고, 그의 속에 무엇이 있는지를 알게 됩니다.

객관적으로 자신을 보게 되고 하나님의 뜻이 있음을 알게 됩니다.


인생은 항해와 같아서 잔잔한 바다일 때도 있지만, 

풍랑치는 날도 있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의 고통은 하나님께 물으며 하나님 앞에서 사는 삶입니다.


"나의 순결함때문에 당하는 고난은 없었다."

나의 불완전함과 순수하지 못함 때문에 고통을 당하는 것은 확실합니다.

그런 고통에서 하나님의 은혜로 건져주셨습니다.



B. 신자들의 부르짖음

계시와 섭리를 통해서 하나님의 뜻을 보여주십니다.

계시 - 공표된 하나님의 의지

섭리 - 감춰진 하나님의 의지(요셉을 생각해 보십시오)


하나님의 섭리를 믿으십시오.

고통은 절망의 원인이 아니라 기도할 이유가 되는 것입니다.


'부르짖음'(쟈하크) - 구원을 바라는 간절할 외침.



III. 말씀으로 구원하심


A. 말씀을 보내심

우리는 고통이 빨리 끝나길 기도하지만 

하나님은 말씀하셔서 우리를 고치시길 바라십니다.


고통을 당할 때, 기도보다 먼저 할 일은 말씀을 찾는 것입니다.

고통 중에 열렬히 기도한다고 해도 그것이 하나님의 마음을 담은 열렬함이 

아닐 수 있기 때문에, 기도보다 보내시는 말씀을 맞이하고 

말씀에 비추어 깨달아야 합니다.


B. 고통에서 건지심

"위험한 지경"은 원문에 의하면 "고통들"입니다.


내 안의 망가진 부분 때문에 고통당하는 것을 하나님은 손 대실 수 밖에 없고

그것이 하나님의 선하심입니다.


나같은 사람이 교회의 일부분으로 있는 것이 교회와 다른 사람들에게 누가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모인 곳, 그곳이 바로 교회입니다.


하나님은 죄에 대해서 진노하시지만 죄 때문에 복수하는 분은 아니십니다.


신자의 성숙함은 고통 당할 때 하나님과의 관계, 이웃과의 관계 생각하는데에 있습니다.


하나님은 선하셔서 내가 멀리 떠나 있을 때에도 가까이 계셔서 붙드시고,

말씀하시고 돌아오도록 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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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과 씨름하다'(토마스 G. 롱, 장혜영 옮김, 새물결 플러스)

'신정론'에 대한 책을 읽는 중이라서 더 관심있게 듣게 된 주일 말씀.


아무리 이유를 알 수 없는 고통, 고난을 당한다고 해도 

하나님은 완전히 '선'하시다는 것.

그리고 그것을 믿고, 나의 의로움이나 '큰 잘못없음'을 내세우기보다는 

오히려 하나님의 뜻하신 것이 무엇인지, '말씀'하시는 것이 무엇이지를 

더 깊이 생각하고 하나님을 바라보라는 것.

Posted by 지윤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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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10.12. 주일. 김성진 목사님. 하나님께서 쓰시는 사람


사사기 6:11~28


다윗은 하나님의 마음을 따르는, 날마다 좇아다니는 자였으며,

아브라함은 살던 곳을 떠나라고 할 때 모든 것을 버려두고 떠났고,

노아는 산에 배를 지으라고 했을 때 그대로 순종하였고,

야곱은 끝까지 하나님께 매달렸으며,

요시야는 하나님의 말씀에 민감하게 반응한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은 결단하는 사람을 사용하십니다.


본문 사사시대는 이스라엘의 가장 어두운 시기였습니다. 

이스라엘이 죄를 짓고, 이방민족을 통해서 괴로움을 당하여 울부짖으면,

하나님이 들으시고 사사를 통하여 구원하시고, 

이스라엘은 다시 범죄하는 역사의 반복이 사사기 입니다.


이 반복이 여섯번 반복되고, 

오늘 본문은 네번째의 이야기입니다.


기드온은,

1) 영적인 분별력을 상실한 상태였습니다.

   기드온의 아버지는 우상을 세우고 이방신의 제사장의 일을 하는 사람이었고, 

   기드온은 이스라엘의 고통을 백성의 죄가 아니라 하나님의 탓으로 (13절) 돌렸습니다.


2) 과거의 하나님에 대한 개념을 가진 자였습니다.(14,15절)

   모세를 부르신 하나님께서 동일하게 기드온을 부르시지만   

   기드온은 과거 하나님의 역사를 알면서도 지금은 그런 하나님이신 줄을 모르고

   부르심에 뒤로 물러나는 반응을 보입니다.


3) 하나님의 임재에 대해서 무지했습니다.

   기드온은 하나님의 사자를 그저 '주'(아도나이-어르신, 

   상전을 통칭하여 부르는 의미)라고 부릅니다. 

   (하나님은 여호와,엘로힘으로 부르게됩니다)

   17절에서는 하나님이 맞다면, 그런 능력, 권한이 있다면 

   그런 징표를 보여달라고까지 합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데도 깨닫지를 못합니다.


   구약은 하나님이 '밖'에서 말씀하시지만,

   신약은 하나님이 '안'에서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와 더 가까이 계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결단을 요구하십니다(25,26절)

우상을 찍어버리고 제단을 만들라고 하십니다.(바알과 아세라)

기드온에게는 생계의 위협이며 집안의 가업을 버리는 위험한 일이었습니다.


기드온은 '감히' 이 일을 낮에 행하지 못하고 밤에 합니다.

이것도 결단입니다. 

비록 우유부단하고 연약하지만 하나님은 그의 결단을 보시고 사용하신 것입니다.

기드온이 세상과의 타협으로 결단하지 못했다면, 다시 포도주틀로 들어갔을 것입니다.


결단을 못하는 사람은 "날"(하루하루 그냥 살아가는..)을 살지만

결단을 하는 사람은 "때"(하나님의 때)를 삽니다.


큰 것을 결단하는 사명이 아니라,

작은 것이라도 하나님께 거치는 것을 버리는, 이 작은 결단을 하십시오.


** 방지일 목사님

http://blog.daum.net/jndong/16592686

Posted by 지윤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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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7.27. 주일. 주 계신 곳에 이르게 하소서.  김남준 목사님


시편 43:2~3

주는 나의 힘이 되신 하나님이시거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내가 어찌하여 원수의 억압으로 말미암아 슬프게 다니나이까

주의 빛과 주의 진리를 보내시어 나를 인도하시고 주의 거룩한 산과 주께서 계시는 곳에 이르게 하소서



시편 43편과 42편은 쌍둥이 시편으로 불리워집니다.

저자가 같을 것이라고 추측합니다.


고라의 자손의 마스길

'마스길' 지혜롭게 하다, 교훈, 지혜를 주는 내용


고라. '고라당'

모세가 이끌던 광야시절, 모세에게 반역했던 집단의 우두머리였고, 땅이 그들을 삼키는 심판을 받았었지만, 다윗의 건국 때에 고라의 자손들이 다윗을 돕습니다. 다윗을 그들을 특별히 대우하여 성전에서 수종드는 자들로 삼았습니다.

그래서,

이 두 시를 고라의 자손 중 한 사람이 썼다고 보는 견해와, 

다윗이 지은 시를 고라의 자손이 보관하였다고 보는 견해입니다.


이 두 시는 하나님을 향한 간절한 영혼의 목마름으로 시작됩니다.


하나님은 어떤 사람이든지 만나주시지만, 일반적으로 당신을 만나고자하는 영혼의 목마름이 있는 사람들에게 나타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1. 하나님께 버림받은 영혼의 고독.


"주는 나의 힘이 되신 하나님이시거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이것은, '당신은 나의 성채가 되신 분이신데, 어찌하여 나를 거절하셨나이까'라고 번역해야 합니다. '성채'는 큰 성은 아니어도 탄탄하여 왠만한 공격에는 끄떡없는 피난처와 같은 곳을 의미합니다. 이 성채에서 쫓겨나서 닫혀진 문 앞에서 울부짖으며 문을 두드리는 사람을 생각해보십시오.


피난처가 되시는 하나님은 깊이 인식하는 사람이 행복한 사람입니다.

시련과 환란 속에서 하나님께 피하는 것입니다. 

이 시련과 환란은 사람들을 통해서 옵니다.

위로와 은총도 사람으로부터 옵니다. 


다윗은 시련과 환란의 때에 하나님의 주권을 믿었습니다.


은혜 안에 있을 때는 고독감은 경건에 도움을 주지만,

은혜 밖에 있을 때의 고독감은 경건에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이 고독을 이겨보려고 쾌락을 추구하게 됩니다.


하나님으로부터의 거절감을 느끼는 것도 하나님이 살아계시다는 증거입니다.

그런 거절감이 없다면 하나님을 찾지도 않고 외로움을 느끼지도 못할 것입니다.

하나님을 시련이나 환란을 통해서, 거절감을 통해서 우리가 하나님을 찾도록 그렇게 하십니다.


2. 원수에 억합당하는 현실, 슬픔.


"내가 어찌하여 원수의 억압으로 말미암아 슬프게 다니나이까"


일상적으로 일어나는 일이 아니라, 특별한 상황임을 보여줍니다.(어찌하여... 어찌하여...)


시편이 우리에게 주는 유익은, 우리와 똑같은 사람이지만 구름같이 허다한 믿음의 사람들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성경의 다른 부분은 하나님과 예수님을 보여주지만 이 시편은 우리와 똑같은 성도들이 어떻게 살았는지를 보여줍니다.


나는, 한 사람의 신앙의 깊이는 시편을 읽는 목소리에 다 드러난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나쁜 일들이 일어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 나쁜 일들 때문에 하나님을 더 사랑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3. 시인의 간구.


"주께서 계시는 곳에 이르게 하소서"

'거룩한 산'이 '주께서 계시는 곳'과 동격입니다. 이 곳이 '시온'입니다.

하나님의 거룩한 통치의 왕권이 시행된 곳을 말합니다. 그 땅 자체는 대단한 땅이 아니지만 그곳에 하나님이 계시고 통치하시기 때문에 율법과 생명이 나오는 것입니다.


지친 영혼이 돌아오는 곳, 피난처, 그곳이 바로 '시온'입니다.


인생의 수많은 문제들의 해결은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것에 있습니다.

그래서 주님을 찾겠다는 간절한 마음이 우리에게 필요한 것입니다.


일주일에 한 시간씩만 주일 예배를 위해서 간절히 기도하고 나온다면 여러분의 인생이 바뀔 것입니다.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당신의 자녀들이 나아올때 받아주십니다. 그러나 마음에 간절한 목마름을 가진 사람들을 찾으십니다. 


4. 어떻게 하나님이 우리를 만나주시는가?


"주의 빛과 주의 진리를 보내시어 나를 인도하시고"

'빛'과 '진리'는 동격입니다. 즉, '빛 곧 진리를 보내셔서 나를 인도하시고'입니다.


환란과 침체 속에 있는 영적 특징은 '어두움'입니다.

객관적인 어두움은 안배워서 모르는 것입니다. 이것은 배워야 해결됩니다.

주관적인 어두움은 잘못된 것을 사랑하거나 마음이 하나님께로부터 이탈되어서 찾아온 어두움입니다. (충청도 쪽의 구원파 성도 몇이 김남준 목사님의 테잎을 듣고 회심한 이야기.

 "저 목사는 구원받은 사람이 확실하다...")


이 어두움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세 가지가 필요합니다.

첫째, 진리를 깨닫는 일입니다. 하나님의 말씀 앞으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세월이 흐른다고 저절로 개선되는 것은 없습니다. 깨닫기 위해서 말씀 앞으로 나아가야합니다.

둘째, 간절한 기도입니다. 무념무상의 마음이 아니라 하나님을 향한 진실한 사랑의 마음입니다.

셋째, 성령의 도우심입니다. 

이 세 가지가 영혼의 침체에서 우리를 일으켜세우는 것입니다.


넘어지는 곳은 사람마다 달라도 일어나는 곳은 똑같습니다. 

말씀의 지팡이를 짚고 일어나는 것입니다.


"무릇 지킬만한 무엇보다 네 마음을 지키라, 이는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

















Posted by 지윤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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