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04.18. 금요.   십자가로 돌아온 사람.   요 19:34   김남준 목사님



요한복음에는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사건을 상세하게 확대해서 보여주십니다.

"여자여 보소서, 아들이니이다. 보라 네 어머니라" 

십자가에서의 세번째 말씀, 이 말씀은 요한을 가리킨 말씀입니다.


제자들은 모두 예수님을 버리고 도망갔고, 베드로는 멀찌기 뒤따라가며 보는 기록들이 나오고, 대제사장 가야바의 뜰에서 예수님께서 심문을 받으실 때 베드로는 거기서 세 번 부인합니다.

모든 제자들이 도망갔고, 십자가에 매달리시는 때에는 요한이 홀로 다시 돌아왔다고 볼 수 있습니다.


우리가 은혜를 받고 한번도 뒤돌아보지 않고 그리스도의 길로 갈수만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러나 우리는 연약한 존재로서 충성스러울때도 있지만 미끄러지기도 합니다.

예수님과 함께한 제자들 조차도 이렇게 미끄러질 수 있었다면 우리가 미끄러지는 것은 얼마나 자연스러운 것이겠습니까?


요한도 다른 제자들과 함께 두려워서 도망갔지만,이 때는 다시 돌아온 것입니다. 

누군가 요한을 알아보고 예수의 제자라고 신고하면 그도 잡혔을지도 모르지만

요한은 그런 두려움이 없었던것 같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요한은 예수님의 사랑에 이끌려 십자가로 돌아간 것입니다.


요한은 영광중에 계신 예수님께 돌아온 것이 아니라 

죄인의 괴수라고 인정되어 십자가에 달린 예수님께 돌아왔습니다.

당시에 요한은 왜 예수님께서 죽으셔야했는지, 지금의 여러분들 보다도 알지 못했습니다.

그리스도의 고난의 의미도 알지 못했습니다.

그런 상황에 요한이 부활의 소망을 갖는 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그런데도 요한이 그 십자가 아래로 돌아갈 수 있었던 것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사랑"이었습니다.

부활의 영광도 모르고, 의미도 몰랐지만 사랑이 있었습니다.

그 사랑이 십자가의 죽음에 주님을 홀로 둘 수 없었던 것입니다.


신앙에서 중요한 것은 그리스도께로 돌아오는 것입니다.

우리 중 아무도 하나님의 은혜없이, 그리스도의 용서 없이 견고할 수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미끄러진 그곳에서 하나님의 말씀의 지팡이를 짚고 일어섭니다.

그리고 다시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돌아갑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이 자신을 버릴 것을 예고하시면서도 그 일 때문에 상처받으시거나 원망하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예수님께서는 당신께 나아온 요한을 기쁘게 받으셨고 돌이킨 후에는 형제들을 굳세게 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지금도 서 있습니다.

보이지 않는 십자가에는 오늘도 그리스도께서 매달려 계십니다.

그 십자가에서 당하신 모든 고난 때문에 당신이 구원하기로 작정하신 사람들을 오늘도 부르십니다.


나는 오늘 여러분들에게 말씀드립니다.

지금 여러분들이 있는 곳은 어디입니까?

요한처럼 그리스도의 십자가 아래서 그 위에서 떨어지는 피를 맞으며 있습니까? 아니면 잠시 주님보다는 목숨을 더 사랑하여, 혹은 두려움 속에서 예수님을 버리고 주님의 품을 멀리 떠났습니까? 만약에 여러분이 주님의 품을 멀리 떠났다면 속히 주님의 품으로 돌아오시기를 바랍니다. 

주님은 언제나 거기 계셔서 여러분을 기다리고 계십니다.

여러분이 잠시 주님을 버리기 전에 이미 주님은 그것을 아시고 여러분이 돌아올때 여러분을 긍휼히 여기시는 것을 알게 하셨습니다. 

여러분 모두 이 십자가앞에 돌아와 주님의 사랑으로 사는 사람들이 되시길 예수님의 이름으로 빕니다.





'성 금요은 Good Friday 인데, 이것이 예수님께 good 이 아니라 우리에게 good 인 것입니다.'



Posted by 지윤이네
,

2014.05.02 금요일 김의현목사님. 막 1:1 시작되는 복음.


정말 예수님을 만난 사람, 정말 십자가의 피가 뚝뚝 흐르는 주님 앞에 나아가서 그 십자가를 붙들고 사는 사람에게서는 절대로 볼 수 없는 이상한 분위기, 세상사람들이 날마다 부르짖는 성공이나 비전보다 우리 주님께서 보여주신 헌신이나 희생이 비교할 수 없는 소중한 가치이기 때문에 "나 예수님따라 살리라", 날마다 예수 닮은 삶을 살아보겠다는 사람에게서는 절대로 찾아볼 수 없는 태도, 내 인생 전체가 예수님께 달렸다는 절박한 심정으로 내 부끄러운 과거를 주님앞에 내어놓고 더러운 피가 흐르는 유출병걸린 성경의 여인처럼 "주님, 나를 붙들어 주시옵소서, 나를 만져주시옵소서, 하나님 내 몸에 더러운 피가 흐릅니다, 주님의 옷자락만 만져도 낫겠습니다, 주님의 옷자락을 붙들길 원합니다"하는 가난한 심령을 가진 사람에서는 절대로 찾아볼 수 없는 영적 무지와 교만한 것들이, 오늘날 신앙생활을 오래하면 할수록 자기의를 붙드는 사람들을 오늘날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어쩌면 우리는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점점 무서운 사람들이 되어갑니다.
절대로 물러서지 않는 사람,절대로 포기하지 않는 사람,
절대로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 절대로 가슴을 치며 회개하지 않는 사람들이 오늘날 교회 안에 있습니까? 교회 바깥에 있습니까?


그럼 우리가 잘못 살기로 작정한 사람들입니까? 아니잖아요,
정말 잘 살려고, 예수님 처럼 살려고, 자기를 부인하며 살고 포기하며 살고 주님께서 나를 구원해주셨으니까 나도 썩어지는 밀알이 되어야겠다고 결심을 하는데도 어느순간 언뜻언뜻 돌아보면 십자가가 없고 자기 죽음이 없고 자기 부인이 없는 그래서 복음에서부터 출발하지 않는 우리의 모습들을 보고얼마나 마음 아플때가 많습니까?


조나단 에드워즈는 "죄를 열심히 죽이다보면 죄를 죽이는게 쉽다"고 말했습니다. 굉장히 짜증나는 말입니다. 조나단 에드워즈는 되는지 몰라도 나는 잘 안되요. 너무 어려워요.아내한테 자존심 꺾는게 어렵구요, 자녀를 위해서 시간을 쓰고, 아버지답게 살아가는게 어렵구요, 교회에서 성도들에게 본이되게 살아가는게 어렵구요, 내안에 문득문득 일어나는 내 욕망을 죽이는게 너무나도 어려울때가 많아요.
그럴때마다 어디로 돌아가야됩니까? 어디서 출발해야 됩니까? 복음으로 돌아가고 십자가로 돌아가서 거기에서 예수님이 행하셨던 기도와 눈물과 희생과 고난가운데로 돌아가서 예수님이 우리의 구원을 위해서 주신 것이 무엇인가 확인하는 그 자리로 다시 돌아가야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날마다 이 복음과 주님의 십자가에서부터 다시 시작해야합니다.



- 설교 뒷부분만 그대로 받아쓴 것..

Posted by 지윤이네
,

2014.05.04  주일 오후  신앙가정의 모범.  김찬제 목사님



욥기 1:1~5

  1. 우스 땅에 욥이라 불리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 사람은 온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자더라
  2. 그에게 아들 일곱과 딸 셋이 태어나니라
  3. 그의 소유물은 이 칠천 마리요 낙타가 삼천 마리요 소가 오백 겨리요 암나귀가 오백 마리이며 종도 많이 있었으니 이 사람은 동방 사람 중에 가장 훌륭한 자라
  4. 그의 아들들이 자기 생일에 각각 자기의 집에서 잔치를 베풀고 그의 누이 세 명도 청하여 함께 먹고 마시더라
  5. 그들이 차례대로 잔치를 끝내면 욥이 그들을 불러다가 성결하게 하되 아침에 일어나서 그들의 명수대로 번제를 드렸으니 이는 욥이 말하기를 혹시 내 아들들이 를 범하여 마음으로 하나님을 욕되게 하였을까 함이라 욥의 행위가 항상 이러하였더라



욥기의 특별한 의의라면,

하나님께서 길게 직접 말씀하시는 부분이 있는 성경이라는 것과,

그와 더불어 사탄이 가장 말을 말을 많이 하는 모습이 나타난 성경이라는 것입니다.

또한

"가정"으로 시작해서 "가정"으로 마쳐지는 성경이라는 것입니다.



1. 신앙의 가정은 무엇인가?


첫째, 1절의 신앙이 있는 가장, 예수믿는 가장, 즉 성도가 있는 것입니다. 그의 성도됨은 온전하고 정직하고 하나님을 경외하고 악에서 떠난 사람입니다.

둘째, 2절의 많은 자녀를 둔 사람입니다. 자녀가 많으면 복입니다. 많은 자녀때문에 힘들다고 생각하면 안됩니다.

셋째, 3절의 재산이 많은, 그것으로 선한 일을 많이 한 동방에서 가장 훌륭한 사람입니다.

넷째, 4절의 좋은 관계를 자녀들과 형제들 사이에 가진 사람입니다.

다섯째, 5절의 좋은 신앙의 전수를 하는 사람입니다. 매일의 가정 예배를 드리십시오.


지금 내가 누리는 모든 것은 노동의 댓가가 아닙니다. 하나님이 거져 주신 것입니다.



2. 다가올 고난과 시련을 대비하십시오.


"생명"의 의미, 우리가 살아있을 뿐아니라 때로는 불평할 수도 있는 그 모든 것이 하나님이 주신 복입니다. 세월호의 희생자들을 생각해보십시오.

고난 중에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그저 인내하고 견디는 것 뿐입니다.

예수님은 홀로 그것을 견디시며 그 길을 가셨지만 우리에게는 교회를 주셔서 교회와 함께 그 길을 가게 하십니다.



3. 고난의 참된 의미는 "영혼 구원"입니다.


내가 고난 속에 들어가는 것이 그 영혼구원입니다. 

욥은 고난을 당하고 이긴 후에, 마지막에 욥의 형제, 자매(가족과 친인척) 뿐만아니라 이전에 알고 있던 모든 사람들까지도 욥을 통해서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42:11)

"하나님, 도우소서, 용기를 주소서"



- 설교를 시작하시며..

설교자가 누리는 기쁨은 개인적으로 성경을 연구할때와 설교를 준비하며 연구할때 깨닫고 열어주시는 은혜가 다르다는 것입니다. 또한 설교자의 영광은 설교를 전해들은 사람들의 삶 속에 그 말씀이 이뤄지고 나타나는 것을 보는 것입니다.

또한 설교를 듣는 자의 영광은, 그 들은 말씀이 자신에게서 이뤄지고 나타나서 그것을 통해서 다른 사람들이 하나님의 영광을 보는 것입니다. 이것이 처음된 자가 나중된다는 의미로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욥의 고난을 통해서 하나님의 영광이 더 많은 사람에게 나타난 것을 기억하십시오.

고난 중에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그저 인내하고 견디는 것 뿐입니다.

예수님은 홀로 그것을 견디시며 그 길을 가셨지만 우리에게는 교회를 주셔서 교회와 함께 그 길을 가게 하십니다.


33:29,30

실로 하나님이 사람에게 이 모든 일을 재삼 행하심은

그들의 영혼을 구덩이에서 이끌어 생명의 빛을 그들에게 비추려 하심이니라(엘리후의 말)


신자의 고난의 의미, 이런 일들이 생긴 이유...

Posted by 지윤이네
,

2014.04.13. 주일 오후  요한복음 21:1~15  안순우 목사님


성경에서는 절기를 통해서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백성들이 하나님을 기억하고 돌아가도록 하셨습니다.

본문에서는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처음 만난 갈릴리에서 다시 제자들을 만나시는 장면이 나타납니다. 이 만남은 예수님께서 베드로와 제자들을 회복시키시기 위해서 계획하신 만남이었습니다.(마 28:7~10)


과연 오늘 우리에게 이 제자들처럼 돌아가서 주님을 만나야할 "갈릴리" 어디입니까? 무엇입니까? 내일 새벽부터 한 주간 열리는 "십자가 사경회"는 그 "갈릴리" 될 것입니다.

Posted by 지윤이네
,

바울이 투옥되자 빌립보 교인들은 염려하고 걱정하게 되고 그들을 위해 이 편지를 썼습니다.


빌립보 교인들은 절망과 낙심, 실망, 두려움을 가지고 있었지만 바울은 오히려 기뻐하며 그들은 위로하고 권면하였습니다. 이것이 시각의 차이입니다. 


문제는 우리의 처한 환경과 상황이 아니라 그것을 복음의 눈으로 바라보지 못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시각과 태도가 문제인 것입니다. 

이 시각과 태도는 우리가 그리스도인인지 아닌지를 알 수 있게하는 시금석이기도 합니다.


일반적으로 고난을 당하게 되면 다음 두가지 중 하나의 태도를 갖게됩니다.

첫째, 염려, 원망, 불평, 두려움, 자기연민의 태도입니다.

둘째, 염려와 원망,불평해봐야 도움이 안되고, 이 어려운 시기가 지나가면 좋은 일이 올것이라는 근거없는 낙관적이고 긍정적인 태도입니다.


그러나 바울은 이 두가지에 속하지 않았습니다.

바울은,

1. 하나님의 사랑을 의심하지 않고 하나님의 섭리에 대한 인정을 했습니다.

2. 그리스도 한분만 존귀히 되는 것이 최고의 관심사였기 때문에 그리스도가 전파되는 일로 기뻐했습니다.

3. 하나님의 주권으로 하나님이 모든 것을 주관하신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바울은 감옥에 갇히면서도 그 일로 그리스도가 전파되리라고는 생각지 못했는데, 그 일이 생기자 하나님의 주권으로 자신이 그런 처지가 된 것을 알았습니다.


여러분은 기뻐하십니까?  지금 기뻐하고 계십니까?

장래에 되어질 일을 바라보면서 기뻐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 현재 바울처럼 이 세가지 이유로 인해서 기뻐하십니까?


- 인터넷으로 시청하거나 다시 듣기로만 듣다가 지윤이 수련회 때문에 참석하게 된 금요예배.

지난 월요일의 교회 화재로 인해서 교육관에서 세 군데의 장소에 성도들을 나누어 드려진 예배.

바울처럼 그런 상황에서 기뻐할 수 있는 세가지의 태도 아니라 일반적인 두 가지의 태도.

" 오직 그리스도만 존귀히 되기를.."


찬양, 말씀, 기도시간까지 모두 두 시간동안의 예배.

제목을 나누며 합심기도 한 것만 30~40여분. 그리고 나서 개인기도 시간.


지우는 긴 말씀 시간에는 조금 집중을 못하더니 기도시간에는 시키지도 않았는데 무릎꿇고 기도시간 내내 머리를 바닥에 대고 두손 모아 기도.

예배를 마치고 나니 기도시간에 눈물 많이 흘렸다고... 무슨 생각하며 기도하다가 눈물이 났냐니까 형아하고 싸우지 않고 하나님께 예배하고 경배하게 해달라고 기도하는데 울었다고..


한시간 먼저 시작한 지윤이의 수련회 마지막날.

세 시간의 집회를 마치고 만난 지윤이는 묻지도 않았는데 전도사님의 설교 내용을 줄줄이 쏟아낸다.


이런 아이들에게 "예언의 은사"를 가르친다면서 눈감고 뭐 보이는거 얘기하라고 하고, 처음에는 잘 못할 수도 있지만 계속 하다보면 잘하게 된다고.. 대체 성경 어디에 예언이라는 은사가 처음에는 잘 안되고 틀리기도 하지만 자꾸 하다보면 "실력"이 늘어난다고 써 있는지..

말도 안되는 소리를 갖다 붙이기도 잘한다.



Posted by 지윤이네
,

2014.2.14 금요일 김희찬 목사님 
믿음의 경주

히브리서 12:1,2
이러므로 우리에게 구름 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이 있으니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 버리고 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하며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그는 그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모든 무거운 것 - 죄가 아니어도 이 믿음의 경주를 방해하는 것들, 취미로하는 많은 일들, sns 등등... 

얽매이기 쉬운 죄 - 크든 작든 늘 나를 넘어지게 하는 죄들..

인내로써 - 힘든 일을 견딘다기보다 마라톤에서 오래도록 페이스를 유지하듯이 인내하는 것.

구름같이 허다한 증인들 - 이미 이 믿음의 경주를 마친 사람들, 다니엘, 바울, 사도들 등등.. 이 사람들이 지금 경주하는 나를 응원하고 있다.

믿음의 주 - '주님'의 주가 아니라 저작권자, 선구자, 먼저 그 일을 행하신 분 즉, 예수님은 이 믿음의 경주의 챔피언이신 분. 그 분을 바라보라.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원래 뜻은 멸시하다, 우습게 여기다. 예수님은 십자가를 부끄러워하신게 아니라 "우습게 깔"보셨다 경주의 우승의 영광이 어떠한지를 아셨기 때문에..

- 임성민 형제의 추천으로 듣게 된 지난주 금요기도회 말씀. 
주일날 만나면 들은 말씀, 읽은 책에 대해서 많이 나눠주신다. "은혜받은"남자가 많아서 좋다.

Posted by 지윤이네
,

2014년 01월 12일 생수를 찾아서 요 4:7~18 김남준 목사님


사경회를 앞두고... 진정한 쉼과 안식의 원천이 무엇인지, 이 여인의 이야기로 알아보고자 합니다.


당시 갈릴리, 사마리아, 남유다. 세 부분을 나뉘어진 이스라엘.

사민정책으로 이방인들이 사마리아땅에 들어와 살게 되었고, 혈통이 혼합된 사마리아를 지나지 않으려는 당시 유대의 습관을 따르지 않고, 사마리아에 들어가 차별없이 복음을 전파하신 예수님께서 여인을 만나십니다.


제 육시. 로마의 시간은 오후 6시, 유대인의 시간은 낮 12시인데, 본문에서는 유대의 시간으로 낮 12시를 가리킵니다. 뜨거운 한낮에는 아무도 물을 길으러 오지 않습니다.

이 여인은 사람들과 만나기를 기피해서 이 낮 시간에 물을 길으러 왔고, 예수님은 이 여인에게 물을 구하는 얘기를 통해서 예수님이 주시려는 참된 것과 여인이 평생을 구해온 헛된 것을 비교할 수 있습니다.


전설적인 '야곱의 우물'에서 예수님은 그보다 더 큰 우물(영원히 목마르지 않는 생수)를 주시겠다고 하셨습니다.


"생수"는 구약에서는 하나님과의 만남으로 해갈되는 수단을 말합니다.

"목마름"은 높은 지위나 다른 행복들로 대신 할 수 없습니다.

신약에서는 성령으로 나타나는 것이 생수입니다.

영적인 갈증을 채우기 위해 헛된 것을 구하며 찾은 여인에게 참된 것을 보여주시기 위해서 대화를 시작하셨습니다.


하나님을 향한 영혼의 갈망은 필수적인 요소입니다.


생수를 주시겠다던 예수님은 갑자기 남편을 데려오라고 하십니다. 

예수님은 여인의 모든 지난날을 다 꿰뚫어 보신 것입니다.(매튜 헨리의 주석에는 이 여인이 창기였다고 합니다)

여인은 영혼의 갈망을 방탕한 삶으로 대신해보려고 했지만 그것으로 만족할 수 없었습니다. 물질로, 방탕으로 영혼의 갈망을 채워보려고 하지만 잠시후 그것들이 떨어지고 나면 하나님에 대한 갈망이 다시 솟아나오는 것을 느낍니다.


여인의 방탕함을 비꼬기 위해 남편을 데려오라고 하신게 아니라 인생의 문제를 직면하도록, 죄를 회개케 하시려고 하심이었습니다.


1907년 평양 부흥의 이야기.

1500여명의 사람들이 선교사들과 며칠을 부흥회를 했으나 무겁고 답답한 분위기가 계속 되었지만, 마지막 집회에 길선주씨가 당신의 지나간 죄(죽은 친구가 맡긴 재산을 그 친구의 가족을 위해 사용하지 않고 편취한 죄)를 고백하면서 하늘이 열리고 큰 성령의 은혜가 임하였습니다. 집회가 마치고 900여명은 돌아가고 600여명은 새벽3시까지 남아서 회개하며 기도하였고 평양부흥이 시작되었습니다. 쌀집을 부당하게 하던 주인은 고백하며 회개하였고 자신의 가게에서 손해본 사람들에게 돌려주겠다고 하였습니다. 이 일로 선교사들이 일어나고 100만인 구령운동으로까지 이어지게 되었습니다.


세월이 아무리 많이 지나가도 하나님은 사람들로 하여금 자신의 죄를 회개하게 하셔서 은혜를 받게 하십니다.


이 세상의 헛된 것들을 더 많이 얻으면 행복할 수 있다고 믿으며 그 길을 걸어왔지만 오히려 하나님을 잃고 비록 세상의 것을 많이 얻었을지라도 결코 안식을 얻을 수 없었습니다.


한 해가 바뀌었다고 해서 저절로 좋은 해가 시작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바뀌지 않고 해가 바뀌었다면 아무것도 좋은 것이 아닙니다.

인간의 모든 불행은 하나님 바깥에서 행복해지려고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을 사랑하기 때문에 회개하라고 말합니다.


-- 내일부터 시작되는 사경회를 앞두고...

우물가의 여인의 갈망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 나아가길...

Posted by 지윤이네
,

2014. 1. 5 주일  새해엔 어떻게 살까   엡 5:15~17   김남준 목사님  


15 그런즉 너희가 어떻게 행할지를 자세히 주의하여 지혜 없는 자 같이 하지 말고 오직 지혜 있는 자 같이 하여

16 세월을 아끼라 때가 악하니라

17 그러므로 어리석은 자가 되지 말고 오직 주의 뜻이 무엇인가 이해하라



1. 본문 배경


2. 우주적 경륜과 신자의 생활

하나님의 구원은 우리를 단순히 죄에서 구원하심만이 아니라 하나님의 창조의 계획대로, 하나님의 형상대로 살아가도록 구원하신 것입니다. 인간의 범죄로 인간은 하나님과 자연과 인간 모두와 단절된 관계가 되었고 그로인해 고통받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그 근원인 인간을 먼저 고치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그 원대한 계획을 이해하고 어떻게 살아야할지 아는 사람이 그리스도인입니다.


3. 세월을 아끼며 살라

  A. 지혜와 깨달음으로 살아감

      '지혜'는 선악을 분별하는 판단력입니다. '지식'은 사물의 인과관계를 잘 파악함으로 인간의 일반적인 삶에 증진을 주기도 합니다. 그러나 지식이 쌓인다고 해서 지혜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지혜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데에서 오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과의 관계가 바르지 못하면 지혜는 생기지 못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한다는 것은 하나님이 계시고, 나는 하나님의 밑에 있으며 하나님의 계획안에서 생활함을 말합니다.


  B. 세월을 아끼며 살아감

     '세월을 아끼라'는 말은 원문의 해석대로 말하자면 "의미있는 시간을 댓가를 주고 사오는 것"을 말합니다. 

남한산성 등산길의 한 허름한 옛집앞의 개 두마리를 보며 여러분을 생각했습니다. 

개 두마리는 하루 세끼 밥먹는 일 외에는 아무런 의미가 없이 하루종일 그 마당에 앉아 있고 졸고 시간을 흘려보내는 것이 전부입니다. 개들에게 기다려지고 기대되는 일은 매 끼니 밥을 먹는 일 뿐입니다. 그 개에게 가끔 족발집에서 먹다남은 뼈를 얻어와서 준다면 개의 입장에서는 복터지는 날이겠지만, 그 복이 얼마나 가겠습니까? 

어떤 자그마한 수퍼에서 일하는 청년이 하루종일 손님이 물건 사가는 돈을 받는 일 외에 거기 앉아서 TV 보는 일만 하고 있었습니다. 아침에가도, 늦은 밤에 가도, 낮에 가도 그 청년은 거기 앉아서 TV만 보고 있고 퇴근해도 집에가서 TV만 본다면 도대체 그 개와 이 청년의 다른 점이 무엇이겠습니까?

     세상의 부귀와 소유, 물질, 명예, 권력이 인생의 의미를 부여하지 않습니다. 진정한 의미는 하나님과의 관계속에서 파악되어지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시간을 돈벌어 먹고 사는데에 쓴다면 그것은 물리적인 시간인 크로노스의 시간이되겠지만, 하나님에 관한 목표에 쓴다면 "의미있는 시간"인 카이로스의 시간이 되는 것입니다. 

외적인 크기와 양이 아닌 어떤 방향인지를 생각하십시오.

죽기 얼마전에 예수님을 믿고 남은 짧은 생애를 주변사람들의 구원을 위해 기도하며 헌신하다가 죽은 소녀의 이야기를 기억하면서, 무엇을 위해 살고 무엇을 가치있게 여기는지 생각해야합니다. 물질과 권력과 명예와 같은 것들로 사람들의 그늘을 펴는 여러분이 되시기 바랍니다.


http://www.yullin.org/sermon/sermonViewPart.aspx?index=2&TYPE=M&IDX=7277

Posted by 지윤이네
,

새 일을 행하리라

사 43: 18-19.. 보라 내가 새 일을 행하리니 이제 나타낼 것이라..

1 바벨론 포로로부터 해방될 것을 예언.

A 기대할 수 없는 포로 생활
- 실패 자체보다 무서운 것은 체념입니다
(실패에 익숙한 삶에서 무슨 희망이 솟겠습니까)
* 온전한 사람이 아니기에 넘어질 수 있으나 그 자리가 자신의 자리가 아님으로 털고 일어나야 합니다.

B 포로의 귀환을 보게함
- 단지 포로에서의 귀환의 문제만이 아닌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고자 하셨습니다. 비록 자기들의 죄로 하나님과 멀어졌지만 하나님은 다시 그들을 찾아 가신것입니다.
- 새 일을 행하실 약속을 믿고 희망을 품어야합니다!

C 광야의 길, 사막에 강을..
- 지난 해 고난과 한파를 격어왔으나 은혜로 헤쳐오지 않았습니까
- 황무한 땅이라 할 지라도 주의 은혜로 말미암아 광야에 길을, 사막에 강물을 내리라는 약속의 말씀을 믿으십시오!(주의 사랑의 강물이 메마른 마음에 충만히 흐르기를...)

2 이전의 일을 기억하지 말라.
- 이전의 일들은 버리고 믿음을 따라 도전하십시오! 
-* 말씀 하나로 온 세상을 창조하셨다면 우리에게 복을 주시는 것은 얼마나 쉬울까요?!
- 새해에는 주님을 의지하여 믿음을 굳건히 하되 어떤 상황이 올 지라도 믿음을 새롭게하십시오!
말씀에 은혜를 받으며, 얼렬히 기도하며, 주님께 순종하십시오.

-- 많을 줄 알고 30분 일찍 도착.
그래도 많은 사람들.. 
중등부가 된 지윤이와 같이 말씀을 기쁨.
익히 알고 많이 노래로도 불렀던 본문이지만 "새 일"을 이렇게 말씀하셔서 이해한 것은 처음..
헌금에 소원을 쓰지도 않고 
말씀뽑기도 없지만 
말씀가운데 마음을 찢는게 어떤 것인지,
목사님과 성도들을 보며 깨닫게 하심..

마치고, 
여전히 새신자 모임 광고에..@@..
이 예배에 처음 온 사람도 많았지만, 
주일예배와 똑같이 새신자들을 위해 늦은 새벽시간에도 새신자 모임을 연, 참으로 빡센 우리교회.

지우는 따로 주일학교만 송구영신예배드리고 나오며 뭔진 몰라도 눈물이 쪼금 났다고 은혜 받았다고..ㅎㅎ

두 주후, 신년 사경회가 5일간.

Posted by 지윤이네
,




나는 왜 성경을 믿는가  (존 맥아더 지음, 유자화 옮김, 도서출판NCD) 2014.9.25.



성령 없이는 성경은 그저 한 권의책일 뿐이다. 우리 가슴에 성령이 살아 숨쉴 때 성경은 유일한 책이 된다.    26


하나님의 지혜는 그리스도를 구원자요 주님으로 믿는 사람의 마음에만 열려있다. 그러고 나서 바울은 진정한 지혜에 관해 두 가지를 지적했다 . 그것을 어떻게 발견하느냐와 그것이 어떻게 밝혀지느냐다.   36


영감, 계시, 조명(성령이 참된 지혜를 밝히시면서 구별된 세 가지)  40


자연적인 인간은 하나님의 영감을 받은 계시를 읽을 수 있지만, 성령의 조명 없이는 그것이 무슨 의미인지 이해하지 못한다. 앞을 보지 못하는 사람이 태양을 보지 못하는 것처럼 자연적인 인간은 '정의의 아들'을 보지 못한다.   42


계시는 하나님이 그분 자신이나 그분의 뜻을 드러내시는 것이고, 영감은 하나님이 그분을 드러내 보이시는 방식이다.   46


우리가 물어야 할 것은 "그리스도가 당신 삶의 주인입니까?"하는 질문이 아니라 "내가 그리스도의 통치권(Lordship)에 복종하는가?"여야한다.   103


우리 의문에 답을 주시기를 간구하면서도 순결하지 못한 생활을 하거나 하나님이 이미 밝혀 놓으신 하나님의 뜻에 따르지 않는다면 하나님께서 무슨 소용이 있다고 답을 주시겠는가?  124


하나님이 그리스도인을 가지치기 해내시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역경과 고통, 곤란한 문제를 주시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아프거나 고통을 겪고 있는 모든 그리스도인이 가지치기를 당하고 있다고는 할 수 없지만, 여러 경우에서 하나님은 우리 삶의 일정 부분을 정화하도록 우리에게 시련과 역경을 주신다.   157


그러면 왜 하나님은 다른 그리스도인은 가볍게 쳐내는 정도면서 내게는 이렇게 고통스럽게 가지를 치시는가?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하나님을 믿는 것뿐이다.   157


찰스 스펄전은 이렇게 말했다. "그리스도인을 가지치기 하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이다. 우리를 깨끗하게 하는 것은 진리이다."   159


성공은 열매가 아니다. 성경 그 어디서도 열매가 성공과 동의어르 쓰이지 않았다. 우리는 무엇이 되었건 크고 사람이 많이 모이면 큰 열매를 맺었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반드시 그렇지는 않다.   160

인기는 열매가 아니다.

자극은 열매가 아니다.   161


에베소서 6장에 나타는 '성령의 검'은 '롬파이아(자유자재로 휘두르기 어려운 1m 가량의 육중한 양날 검)'가 아니라 '마카라이(작고 간편한 15cm의 단도부터 50cm정도의 검을 포괄) '이다.  172


하나님의 말씀을 접하는 그리스도인의 세 유형.

나비     - 이 설교, 저 설교 야단법석만 떨고 다니거나, 

           여기저기서 성경공부를 하지만 아무것도 가져오지 못한다.

식물학자 - 듣고 살피지만 학문적인 것만 얻을 뿐이다.

벌       - 성경의 모든 책, 모든 페이지에 다가가 지혜와 진리를 그리고 

           그들 주변에 축복이 되는 생명을 뽑아낸다. 


규칙적이고 체계적으로 성경읽기   200

구약은 이야기 읽기 방식으로 건너뛰지 말고 읽어 나가라.

신약은 흐름을 이해하고 진리에 완전히 익숙해지기 위해 30일 동안 매일 같은 책을 반복해서 읽어라. 2년 반이 지나면 전과 다르게 하나님 말씀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차 례


Part 1. 성경이 진리인 5가지 근거


1장 성경은 나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가?

2장 성경이 진리임을 누가 증명하는가?

3장 하나님은 어떻게 성경에 영감을 불어넣으셨는가?

4장 예수님은 성경을 어떻게 생각하셨을까?

5장 성경을 우리가 수정할 수 있을까?


Part 2. 


6장 성경은진리와 자유를 가져다 준다.

7장 성경은 하나님의 뜻을 알려준다.

8장 성경은 영적 성장으로 인도한다.

9장 성경은 가지를 쳐내는 전지가위다.

10장 성경은 시험을 이기는 최고 무기다.


Part 3. 


11장 하나님 말씀을 어떻게 듣는가?

12장 말씀의 의미를 어떻게 깨닫는가?

Posted by 지윤이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