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의 기쁨을 맛보라 (존 파이퍼, 좋은씨앗)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탐내지'말라고 명하십니다. '탐심'의 반대편에는 '만족'이라는 감정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원망'하지 말라고 명하십니다. 원망을 품은 마음 그 반대편에 자리한 긍정적인 감정은 '마음으로부터'나오는 용서입니다. 성경이 말하는 바는, 단순히 불만을 품지 않기로 결단하라느 게 아닙니다. 성경은 거기에서 더 나아가 그보다 강렬한 것을 명령합니다. "마음으로 '뜨겁게' 서로 사랑하라"고 명합니다. 

감정이야말로 성경 전체에 걸쳐 우리에게 의무적으로 요구되는 바인 것입니다.  48,49


인간의 교만에 담긴 본성과 그 깊이는 '자랑'과 '자기 연민'을 비교해 보면 알 수 있습니다. 두 가지 다 교만이 밖으로 드러난 것입니다. 자랑은 '성공했다'는 교만에 대한 반응입니다. 자기 연민은 '고난을 겪었다'는 교만에 대한 반응입니다. 자랑은 "나는 많은 성공을 이루었으니 칭찬 받아 마땅해"라고 말합니다. 자기 연민은 "나는 많은 고난을 겪었으니 칭찬 받아 마땅해"라고 말합니다. 자랑은 강자의 마음에서 울리는 교만의 음성입니다. 자기 연민은 약자의 마음에서 울리는 교만의 음성입니다. 자랑은 자기에게 부족함이 없다고 말합니다. 자기 연민은 자기를 희생시켰다고 말합니다.  56


오늘날 이 세상에서 사랑을 가로막는 것은 무엇입니까? 우리 모두가 우리 자신을 기쁘게 하기 위해 살고 있다는 점입니까? 아닙니다. 오히려 우리 모두가 '너무 쉽게'기뻐한다는 게 장애물이 되고 있습니다.   82


예배의 핵심이 하나님 안에서 만족하는 것이라면, 예배는 결코 다른 것을 위한 수단이 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께 이렇게 말해서는 안 됩니다. "저는 주님 안에서 만족을 찾기 원합니다. 그러면 다른 것들을 얻을 수 있겠죠." 이런 말은 결국 우리가 하나님이 아닌 다른 것에서 진정한 만족을 얻으려 한다는 의미가 되니까요. 정말 그렇다면 그것은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하나님을 모욕하는 일이 될 것입니다. 

우리는 돈을 모금하기 위해 '예배'를 드립니다. 사람들의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 '예배'를 드립니다. 일꾼들을 모으기 위해 '예배'를 드립니다. 재능있는 음악가들에게 그들의 소명을 이루는 기회를 제공하고자 '예배'를 드립니다. 자녀들에게 의의 길을 가르치기 위해 '예배'를 드립니다. 건강한 결혼 생활을 돕기 위해 '예배'를 드립니다. 잃은 양을 찾기 위해서도 '예배'를 드립니다. 교회에서 가족 같은 분위기를 느끼게 하기 위해 '예배'를 드립니다. 그것뿐이겠습니까?

이 모든 것들이 하나님을 무시하고 예배를 멍들게 하는 이유가 됩니다.   92,93


여러분의 배우자가 거룩한 기쁨을 누리게 하기 위해 마음을 다해 수고한다면, 그것은 여러분이 자신의 기쁨을 위해 살아가는 것이기도 하거니와 그리스도와 교회의  참된 모습을 닮아가는 결혼 생활을 만들어가는 것이 됩니다.   100


하나님은 우리가 자동차를 중형에서 더 고급형으로 바꾸도록 하기 위해 우리의 사업을 번창시키지 않으십니다. 오히려 하나님은 그리스도를 알지 못하는 수많은 사람들이 복음을 접하도록 하기 위해 우리의 사업을 번창시키십니다. 또 세계 인구의 20퍼센트가 굶주림에서 한 걸음 벗어나도록 하기 위해 우리의 사업을 번창시키십니다.

'우리 삶에 반드시 필요한 것'이란 검소하고 단출하게 살아가는 데 꼭 필요한 것이라는 의미가 아니라 전시(wartime)를 살아가는 데 정말 유효한 것이어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111,112


삶은 전쟁입니다. 전시 상황이 분명하다면, 그리스도인인 우리가 '왕의 자녀로서' 화려하게 살 권리가 있다고 말하는 것은 무의미하게 들립니다. 특히 왕도 전투를 위해 의복을 벗는 상황에서는 말입니다.   114


부하게 되려 하지 말고 전시를 살아가는 필수품으로 만족하십시오. 우리의 소망을 오직 하나님께만 두십시오. 교만을 멀리하십시오. 그리고 하나님 안에서 발견한 기쁨이 이 잃어버린 궁핍한 세상으로 부요하게 흘러넘치게 합시다.   115


"사람들은 제가 삶의 대부분을 아프리케에서 보내면서 치른 희생에 대해 얘기합니다.  ... 그러나 이런 관점이나 생각으로 희생이라는 단어를 쓰지 마십시오. 그것은 결코 희생이 아닙니다. 오히려 특권이라고 말하십시오. 이 세상에서 머무는 동안 일반적인 안락함이나 도움을 받지 못하는 상태에서 때때로 맞게 되는 불안, 질병, 고통, 위험 같은 것이 우리를 머뭇거리게 하고, 영혼을 흔들리게 하고, 심령을 낙담케 할 수 있겠지만, 이런 것은 잠시일 뿐입니다. 이 모든 것은 장차 우리 안에 그리고 우리를 위해 나타날 영광과 비교하면 아무것도 아닙니다.(롬 8:18) 저는 결코 아무것도 희생하지 않았습니다."  (1857년 12월 4일 데이비드 리빙스턴의 케임브리지 대학 간증설교 중)  121


이슬람의 사도로 유명한 새뮤얼 츠베머 선교사는, 1904년 여름에는 네 살과 일곱 살이던 두 딸이 8일 간격으로 연이어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50년이 흘러 이 시기를 회고하며 이렇게 썼습니다. "그때의 순전한 기쁨이 되살아납니다. 다시 돌아가더라도 그 모든 일을 기쁘게 감당하겠습니다."   123


"영원한 것을 얻고자 영원할 수 없는 것을 버리는 자는 바보가 아니다" (에콰도르 선교사 짐 엘리엇)   125


우리가 고난을 선택한다면 그렇게 하는 것이 옳기 때문이 아닙니다. 우리에게 그 말씀을 하시는 분이 그것을 영원한 기쁨에 이르는 길로 정해 놓으셨기 때문입니다.    128

Posted by 지윤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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