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04.18. 금요.   십자가로 돌아온 사람.   요 19:34   김남준 목사님



요한복음에는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사건을 상세하게 확대해서 보여주십니다.

"여자여 보소서, 아들이니이다. 보라 네 어머니라" 

십자가에서의 세번째 말씀, 이 말씀은 요한을 가리킨 말씀입니다.


제자들은 모두 예수님을 버리고 도망갔고, 베드로는 멀찌기 뒤따라가며 보는 기록들이 나오고, 대제사장 가야바의 뜰에서 예수님께서 심문을 받으실 때 베드로는 거기서 세 번 부인합니다.

모든 제자들이 도망갔고, 십자가에 매달리시는 때에는 요한이 홀로 다시 돌아왔다고 볼 수 있습니다.


우리가 은혜를 받고 한번도 뒤돌아보지 않고 그리스도의 길로 갈수만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러나 우리는 연약한 존재로서 충성스러울때도 있지만 미끄러지기도 합니다.

예수님과 함께한 제자들 조차도 이렇게 미끄러질 수 있었다면 우리가 미끄러지는 것은 얼마나 자연스러운 것이겠습니까?


요한도 다른 제자들과 함께 두려워서 도망갔지만,이 때는 다시 돌아온 것입니다. 

누군가 요한을 알아보고 예수의 제자라고 신고하면 그도 잡혔을지도 모르지만

요한은 그런 두려움이 없었던것 같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요한은 예수님의 사랑에 이끌려 십자가로 돌아간 것입니다.


요한은 영광중에 계신 예수님께 돌아온 것이 아니라 

죄인의 괴수라고 인정되어 십자가에 달린 예수님께 돌아왔습니다.

당시에 요한은 왜 예수님께서 죽으셔야했는지, 지금의 여러분들 보다도 알지 못했습니다.

그리스도의 고난의 의미도 알지 못했습니다.

그런 상황에 요한이 부활의 소망을 갖는 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그런데도 요한이 그 십자가 아래로 돌아갈 수 있었던 것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사랑"이었습니다.

부활의 영광도 모르고, 의미도 몰랐지만 사랑이 있었습니다.

그 사랑이 십자가의 죽음에 주님을 홀로 둘 수 없었던 것입니다.


신앙에서 중요한 것은 그리스도께로 돌아오는 것입니다.

우리 중 아무도 하나님의 은혜없이, 그리스도의 용서 없이 견고할 수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미끄러진 그곳에서 하나님의 말씀의 지팡이를 짚고 일어섭니다.

그리고 다시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돌아갑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이 자신을 버릴 것을 예고하시면서도 그 일 때문에 상처받으시거나 원망하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예수님께서는 당신께 나아온 요한을 기쁘게 받으셨고 돌이킨 후에는 형제들을 굳세게 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지금도 서 있습니다.

보이지 않는 십자가에는 오늘도 그리스도께서 매달려 계십니다.

그 십자가에서 당하신 모든 고난 때문에 당신이 구원하기로 작정하신 사람들을 오늘도 부르십니다.


나는 오늘 여러분들에게 말씀드립니다.

지금 여러분들이 있는 곳은 어디입니까?

요한처럼 그리스도의 십자가 아래서 그 위에서 떨어지는 피를 맞으며 있습니까? 아니면 잠시 주님보다는 목숨을 더 사랑하여, 혹은 두려움 속에서 예수님을 버리고 주님의 품을 멀리 떠났습니까? 만약에 여러분이 주님의 품을 멀리 떠났다면 속히 주님의 품으로 돌아오시기를 바랍니다. 

주님은 언제나 거기 계셔서 여러분을 기다리고 계십니다.

여러분이 잠시 주님을 버리기 전에 이미 주님은 그것을 아시고 여러분이 돌아올때 여러분을 긍휼히 여기시는 것을 알게 하셨습니다. 

여러분 모두 이 십자가앞에 돌아와 주님의 사랑으로 사는 사람들이 되시길 예수님의 이름으로 빕니다.





'성 금요은 Good Friday 인데, 이것이 예수님께 good 이 아니라 우리에게 good 인 것입니다.'



Posted by 지윤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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