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므로 하나님이 알려 주시지 않는 미래를 미리 훔쳐보게 하여 하나님이 뜻하신 모든 유익을 앗아가며, 자유를 박탈하고 믿음과 소망의 삶을 파괴하는 것은 분명한 마귀의 짓이다. 성경에 기록된 미래에 대한 예언은 모두 하나님의 구원 역사를 이루는 특별한 목적을 띠고 있다. 이 구속사와 직접 관련이 없는 개인의 사적인 일을 점치듯 예언하는 예를 성경에서는 전혀 찾아볼 수 없다. 31


"하나님이 우리 형제님의 삶 속에 함께하시는데요, 지금 앞에 일곱가지 빛이보입니다." 혹은 "사랑하는 아들아, 딸아, 네가 하나님 여호와가 너를 축복하고 축복하노라. 네 사업이 번창할 것이다" 혹은 "네 눈물과 기도를 들었노라"혹은 "지금 예수님의 모습이 보이는데요, 우리 형제님과 부둥켜안고 누물을 흘리시는 모습이 보입니다. 우리 형제님에게 지금 답답한 문제가 있는데요, 하나님은 결코 외면하지 않으시고 우리 형제님의 삶을 인도하실 것입니다 .계속 꾸준하게 인내하며 기도를 쉬지 말라고 말씀하시는데요, 우리 형제님이 인내하면 그 열매들이 열릴 것입니다. ...."라는 등 이런 저런 예언을 많이 받았는데, 순간적으로 감동을 받았지만 실제로 현실에서는 전혀 이루어지지 않았고 오히려 건강한 몸만 별이 들었습니다.(어떤 교인)
   이런 식으로 사이비 예언이 범람하게 되면 한국의 기독교는 머지않아 무당 종교로 변할 것이다. 이러한 혼란을 막기 위해 주님이 말씀하셨다는 말을 함부로 사용하는 것을 금해야 한다.   35

그러므로 진정한 영적 부흥은 말씀의 부흥이다. 예언자의 말이 판을 치고 성경 말씀이 뒷전으로 밀려난 최근의 성령 운동은 부흥이 아니라 심각한 영적 탈선이며 쇠퇴다.   39

많은 경우 우리는 죄의 삶에 신물이 나야, 죄가 주는 일락의 마지막 한방울까지 남김없이 들이키고 난 후에야, 죄의 쓴 열매로 인해 삶이 더 이상 비참할 수 없을 정도로 비참하고 곤고해져야 죄의 길에서 돌이키기 원한다.   50

거룩한 수줍음은 십자가가 내면화된 증거다. 헛된 영광을 추구하는 옛 자아와 그 욕망이 십자가에 못박힌 사람의 얼굴에 나타나는 특성이다. 그러므로 성령의 얼굴이 나타나는 진정한 성령 집회는 예수 그리스도와 그 분의 십자가가 바르게 전파되며 인간의 옛 자아를 죽이는 십자가의 능력이 강하게 역사하는 곳이다.   58

성령은 성령 운동이 아니라 '예수 운동', 즉 예수님을 알리고 높이는 운동을 하신다.   59

성령 운동의 문제는 기적이나 은사를 강조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그에 대한 과도한 집착이 십자가에 대한 초점을 흐리게 한다는 데 있다.   64

일명 '토론토 블레싱'이라고도 불리는 이 쓰러지는 현상은 미국과 캐나다의 빈야드 운동에서 시작된 것인데 한국 교회가 이것을 성경적인 검증없이 무분별하게 도입하여 큰 혼란을 자초하고 있다.    68

교회는 사람들을 안수하여 쓰러뜨리는 행위를 금해야 한다. 어떤 교회에서는 교인이 잘 쓰러지지 않는다고 목을 찌르거나 밀어서 억지로 넘어뜨리는 작태가 벌어지기도 했다.    69

그러므로 진정한 성령의 사람은 자신이 드러나지 않도록 철저히 자기를 부인하며 불필요하게 자신의 능력이 과시되지 않도록 사려깊이 행하는 '거룩한 수줍음'을 가진 사람이다.  72

그러므로 성령을 사역의 성공이나 자기실현을 위한 동력으로 이용하려는 것은 반기독교적 일 뿐아니라 이단적인 행위다. 일부 성령운동이나 성령의 사역자들에게서 성령의 인격성을 손상시킴으로 기독교의 근간을 흔드는 이단자의 얼굴이 자주 나타난다.   74  (- 임파테이션의 오류, 성령은 사람이 맘대로 부릴수 있는 그런 존재가 아니다)

기도에 있어서 성령의 독특한 역할은 우리 기도의 대상이 아니라 기도의 원천이며 조력자가 되시는 것이다. 성령은 우리 심령에 기도의 갈망과 부르짖음을 불러일으키심으로 우리가 끈질기게 기도하며 인내하도록 도우시는 분이다.   78

우리에게 주어진 임무는 사도들이 세운 터 위에 교회를 세워가는 것이지, 그들처럼 터를 다시 닦는 일이 아니다. 그들이 계시로 받은 성경 말씀을 따르는 것이지, 그들처럼 계시를 받을 수는 없다. 이런 점들을 무시하고 어떤 이들을 사도라고 칭하며 그들과 같은 사역을 해야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엄청난 혼란을 야기할 수 있다.    111

과거 한국의 유명한 부흥사였던 박재봉 목사는 자신의기도로 4만 명가량의 병자들을 치유했다고 한다. 그는 병 고침을 받은 이들의 명단을 수첩에 적어 두었다가 후에 자신이 집회를 인도했던 교회들을 순회하면서 그들이 어떻게 사는지를 알아보았다고 한다. 그런데 자신의 기도를 통해 치유받은 사람 열 명중 일곱,여덟 명은 신앙 생황을 하지 않고 있다는 충격적인 사실을 발견하였다. 그 사실을 안 그는 하나님게 신유의 은사를 거둬 달라고 기도했다고 한다. 그리고 그 후에는 병고침을 받으러 몰려드는 사람들에게 자신에게는 더 이상 신유의 은사가 없다고 하며 기도해 주지 않았다고 한다.   126

"여러분, 조용히 하십시오 저 사람이 눈을 뜬 것은 나와 아무런 상관이 없는 일입니다. 저 사람은 자신의 믿음으로 눈을 뜬 것입니다." 130  (손양원 목사님, 부산 초량교회 집회중에 나면서 눈 먼 사람이 눈을 뜨는 기적이 일어났고 그 사람은 뛰며 소리지르고 기뻐하였고 예배가 중단 되고 교인들이 웅성거리자..)

방언이 통역되면 계시적인 성격을 띠게 된다고 주장하지만, 방언의 특성상 그것은 타당하지 않은 말이다. 고린도 교회에 나타났던 방언은 하나님이 인간에게 말씀하시는 계시와는 정반대로 사람이하나님게 기도하는것인데, 어떻게 인간에게 주어지는 하나님의 계시가 될 수 있겠는가?   154

어떤 이들은 자신만 외톨이로 남고 싶지 않은 절박한 심정에서 방언 전도사가 시키는 대로 입을 벌리고 혀를 굴려 "랄랄랄라"를연발하며 인위적으로라도 방언과 같은 현상을 반들어 내려고 발버둥치기도 한다.     170 (-놀랍다. 이렇게 정확하게 아시다니..)

이런 현상은 인간의 부패한 시기심을 자극하여 열심을 부추기는 방언 전도사들에 의해 촉발되고 조작되는 일종의 영적인 집단 흥분 상태를 방불하게 한다. 이것을 은사를 나눠주시는 성령의 역사하심이라고 보기에는 의심쩍은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179

교회 역사 속에 수많은 신앙의 위인들이 방언을 하지 못했지만 그 누구도 범접할 수 없는 탁월한 영성과 신앙의 발자취를 남겼다. 아우구스티누스, 성 프란체스코, 칼뱅, 루터, 조나단 에드워즈, 스펄전, 빌리 그레이엄 같은 이들이 그랬고 한국 교회에서도 주기철, 손양원 박윤선, 한경직 등 수많은 훌륭한 목사들과 교우들이 그 사실을 증명해 준다.  그러므로 방언 체험의 유무는 결코 신앙 성숙이나 영적인 충만함의 척도가 될 수 없다.   184

나는 방언을 30년넘게 하고 있는 사람이다. 하지만 나는 아직도 이런 방언이 100퍼센트 하나님이 주신 은사인지 아니면 내가 만들어 낸 것인지 잘모르겠다. 한 가지 확실한 사실은 내 마음이 주께로 향해 있다는것이고, 어떤 의미에서는 이 사실이 방언의 문제보다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185 (어떤 목사의 고백)

바울은 성적으로 문란하며 서로 시기하고 다투던 고린도 교인들을 향해 성령 또는 성령의 불세례를 받으라고 가르치지 않고 오히려 그렇게 형편없이 사는 그들 안에도 성령이 계시며 그들이 성전이라는 사실을 거듭 일깨워 주었다.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안에 계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고전 3:16, 6:19)"

성령이 우리에게 다시 임하셔야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성령께 돌아가야 한다.    214

언제까지 이 성령의 오래참으심과 온유하심과 인자하심을 멸시할 것인가?   217

주님은 우리를 부르실 때 와서 죽으라고 부르신다. 이 점에서 있어서는 조금도 타협하지 않으신다.   226

성령의 은사와 능력을 이 땅에서의 성공에 대한 야망을 성취하기 위한 동력으로 활용하기 위해 열렬히 구한다. 그러나 그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성령은 종말의 영이시다. 세상의 헛된 영광을 향한 야망을 날카롭게 대적하는 영이시기 때문에 그 야망 성취를 위해 동원될 수 없는 분이시다.   239

문제는 우리에게 생수에 대한 목마름이 없다는 것이다.     240

이같이 성령 충만 자체보다도 성령으로 충만하면 누리게 될 혜택과 유익에 더 목마를 수 있다.241

우리가 성령 충만하기를 원하는 그 한가지 이유가 바로 주님의 기쁨이되는 것인가? 과연 주님의 기쁘신 뜻대로 거룩하게사는 것인가? 내 평생의 소원이 주 예수님을 닮기 원하는 것인가? 성령의 열매를 풍성히 맺어 주님의 아름다운 형상을 반영하는 이가 되는 것인가? 주님의 몸 된 교회와 하나님 나라를 위해 헌신하며 주님의 남은 고난에 참여하는 것인가? 이런 거룩한 목마름이 있어야 진정으로 성령 충만을 원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진정한 목마름은 우리 안에서 생성되는 것이 아니라 성령의 산물이다.   243

매일 목마르고 배고픈 것이 육적 생명의 자연스러운 현상이듯이 매일 성령의 생수에 목마른 것은 영적인 생명의 자연적인 표출이다.   243

성령충만은 자신의 처절한 실패를 통해 성령으로 충만하지않으면 비참하게 실패할 수 밖에 없다는사실을 뼈아프게 경험하고 이 은혜 없이는 더 이상 살아갈 수 없다고 하나님게 매달리는 사람과 교회를 위한 은혜다. 성령충만은 우리가 경건하게 산 것에 대한 하나님의 보상이 아니라 우리의 죄와 실패에도 불구하고 우리에게 주어지는 하나님의 파격적인 은혜다. 그러나 실패를 통해 귀한 깨우침을 얻고 거기서 돌이키기를 원하는 이들을 위한 은혜다. 실패의 심연에서도 하나님의 무한한 긍휼에 대한 소망과 믿음의 줄을 놓지 않는 이들을 위한 선물이다.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맺으신 영원한 사랑의 언약을 어기실 수 없다는 확신을가지고 이 약속에 호소하며 자신과 교회를 회복시켜 달라고 울부짖는 사람들을 위한 은총이다.   247 (-아멘)

이같이 성령이 충만한 은혜가 인간적으로 회복이 불가능해 보이는 절망적인 상황에 임함으로써 하나님의 영광은 한층 더 고조되며, 우리가 최선의 모습이 아니라 최악의 모습일 때 찾아옴으로써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가 밝히 드러난다. 주여, 다시  한번 이 일을 행하소서!   248


Posted by 지윤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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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이 영광을 받으실 때 성령님이 오신다. 우리는 성령님이 오시도록 간청할 필요가 없다. 왜냐하면 구주께서 영광을 받으실 때 성령님이 오시기 때문이다. 그리스도가 진정 높아지실 때 성령님은 오신다.(하나님이 예수를 높이시매 그가 약속하신 성령을 아버지께로 받아서 너희 보고 듣는 이것을 부어주셨느니라 행 2:32,33)    13


그러나 지금 우리의 신앙에는 '신앙'만 있고 '하나님'은 계시지 않는다. 즉, 우리는 우리의 신앙을 믿을 뿐이다. 그렇기 때문에 아무것도 이루지 못한다. 그러나 사도의 무리는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믿었기 때문에 무엇인가를 이루었다.    17

하나님께 능력을 받지 못한 교회는 친목회, 향우회, 동창회, 테니스 클럽 및 기타 자질구레한 것들을 중심으로 모이는 단체들과 다를 것이 없다.   18

"당신이 유혹을 받지 않는 때가 찾아올 것이라고 착각하지 말라. 자신이 유혹을 받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사람이야말로 가장 큰 유혹에 빠져 있는 것이다."    20

성령충만한 교회는 어떤 열들을 맺는가?   22
첫째, 기쁨으로 충만하케 된다.
둘째, 유용성이 파급된다.(경찰관의 수가 줄어든다)
셋째, 영향력이 전파된다.

성령충만한 교회를 싫어하는 사람들도 있는가?  27
첫째, '주일 신자들
둘째, 안락을 좋아하는 신자들(사람들은 십자가의 열매에 동참하기를 원하지만, 십자가의 통제 앞에 무릎 꿇는 것은 원하지 않는다.)
셋째, 재미를 추구하는 신자들
넷째, 문화적 신자들

성령 충만한 사람들의 특징   33
첫째, 죄를 버리기를 원한다.
둘째, 하나님을 알기를 갈망한다.
셋째, 주님의 음성을 듣는다.
넷째, 하나님의 임재를 느낀다.

하나님을 향한 굶주림으로 가득한 사람이 채움을 얻지 못하는 일이 벌어진다면, 하나님의 말씀은 무너진다. 우리는 우리가 원하는 만큼 성령으로 충만해진다.   38

더욱이 성령 충만을 받았으면서 자기가 언제 성령 충만을 받았는지 알지 못하는 사람이 있다는 이야기를 나는 들어본 적이 없다. 그런 사람에 대한 이야기는 성경, 교회사 또는 기독교인의 전기 등 그 어디에서도 발견되지 않는다. 또한 성령 충만을 점진적으로 받았다고 말하는 사람의 이야기도 발견되지 않는다.   39

성령 충만을 받기 위한 준비 단계   41
첫째, 성령 충만을 받을 수 있다고 확신해야 한다.
둘째, 성령 충만 받기를 진정으로 원해야 한다.(하나님 한분으로 만족하지 못하고 그분 이외에 다른 것들도 가지려는 태도가 그리스도인들 사이에 만연해 있다.  49)
셋째, 성령 충만을 받을 필요성을 알아야 한다.(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자녀들이 즐거워하기를 원하신다. 그러나 그것이 육신의 싸구려 즐거움은 아니다.  53     하나님을 깊이 알기 위해서는 당신에게 고독이 필요하다.   55)

성령 충만을 받는 방법    57
첫째, 나의 그릇을 드려야 한다.
둘째, 하나님께 구해야 한다.
셋째, 하나님께 기꺼이 순종해야 한다.
넷째, 하나님을 믿어야 한다.

우리는 성령충만과 기름부음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여기서 나는 ' 기름부음'이라는 말을 강조하고 싶다. 기름부음은 점진적 행위가 아니다. 이런 기름부음은 점진적으로 일어나지 않고 순간적으로 일어났다.    62
(- 기름부음의 증폭이라는 말로 지금껏 현혹되어 왔었다. 날마다 기도하고 구하면 언젠가는 그 기름부음이 쌓여서 터져나온다는 거짓말에 속았었다.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에 기도하러 가다가 앉은뱅이를 고친 사건까지 예로 들면서 말이다.)

초대교회의 신자들은 비유적으로 말하자면 순종이었다. 그들과 비교하면 우리는 비유적으로 잡종이다.    80

무디의 간증   81
"저는 하나님께서 제게 주기를 원하시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받고 싶습니다."

보혜사 성령님이 비둘기같이 찾아오셨다. 사람들은 서로 화해했다. 그들은 정결케 되었고, 그들의 마음에서 거리끼는 것들을 제거했고, 죄를 버렸다.    87

성령님이 이렇게 찾아오시는 것을 우리는 '부흥'이라고 부른다.    97

우리는 남들에게 경건하게 보여야 할 상황에 처하면 재빨리 경건의 모습을 갖춘다. 그러면 그들은 우리를 가리켜 ' 경건한 교인'이라고 칭찬하지만, 우리의 마음속에는 정욕이 가득하다. 하나님은 이런 우리를 미워하신다. 이런 우리에게 비둘기 같은 성령님은 임하시지 않는다.    100

기독교는 "네게 있는 것으로는 부족하기 때문에 너는 위로부터 임하는 능력을 받아야한다"라고 가르친다.
사이비 종교들은  " 마음을 편히 하고 집중하여 당신 안에 있는 창조적 능력을 계발하라"라고 말한다. 그러나 이런 창조적 능력이 우리 안에 없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114

우리에게 있는 가능성이란 바로 시체로 변할 수 있다는 것뿐이다.   115

어떤 사람들은 제자들이 성령충만을 받기 전에도 기적을 행하는 능력을 갖고 있었다는 사실을 망각한 채 "당신이 성령충만을 받으면 기적을 행할 것입니다"라고 가르친다.  성령님의 능력은 기적을 행하는 것보다 무한히 높고 크고 놀라운 것이다. 제자들은 성령님이 오시기 전에도 기적을 행했다.     117

성령님은 제자들을 위해 무엇을 행하셨는가?   117
첫째, 제자들은 성령님의 임재를 알았다.
둘째, 제자들에게는 기쁨이 임했다. 
셋째, 제자들은 능력으로 복음을 전했다. 
넷째, 제자들에게는 권위가 있었다. 
다섯째, 제자들은 구별되었다.
여섯째, 제자들은 기도의 사람이 되었다.      
(- 이렇게 해야 성령충만을 받는 것이 아니라, 성령충만한 후에 이렇게 된 것이다. 다시 정리하자면, 이렇지 않은 사람은 성령충만을 받은 것이 아니라고 생각해도 이상할 것이 없다. 나는 현재는 확실히 이렇지 못하다.)

모라비아 신자들과 존 웨슬리와 찰스 웨슬리의 이야기  130~132
"내 동생 찰스에게 있는 것이 내게는 없습니다. 이제 내가 어떻게 해야 합니까?"

성령의 은사들이 없을 때 우리는 사람들의 재능에 의존한다.
그러나 분명히 말하지만, 성령님은 인간의 재능, 즉 달란트를 가지고 일하시지 않는다.   137

"당신들의 주장이 사실이라면 어거스틴, 버나드, 토마스 아켐피스, 프레더릭 W.페이버, 데이비드 리빙스턴, 찰스 스펄전 그리고 조지 뮬러는 성령충만하지 못한 사람들이었다. 왜냐하면 그들중 누구도 방언의 증거에 대해 말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   159

성령님을 소홀히 했을 때 나타나는 일들   166
1. 교회가 '친목회'로 변질되기도 한다.
2. 교회가 육신적 교훈과 관습에 빠지기도 한다. 

많은 사람들이 성령님에 대해 잘못 알고 있다. 어떤 사람들은 열심을 내게 되면 그것이 성령님의 임재라고 믿는다. 171

그들은 자기들이 원하는 방식대로 살면서 단지 성령님을 액세사리처럼 갖기를 원한다. 그러나 분명히 말하지만, 성령님은 액세사리 같은 분이 아니시다. 그분은 주님이시다 .우리가 그분을 주님으로 모시지 않는다면 그분은 우리에게 임하시지 않는다.   172

성령님은 어떤 분이신가?   180
첫째, 성령님은 예수님 같은 분이시다.
둘째, 성령님은 우리 때문에 슬퍼하실 수 있다. (성령님이 교회에서 떠났다고 이야기하는 여자의 이야기)

오순절 사건의 반복될 수 없는 요소는 무엇인가?   190
첫째, 온 교회가 한자리에 모였다.
둘째, 급하고 강한 바람같은 소리가 있었다.
셋째, 불의 나타남이 있었다. 
넷째, 신자들은 통역을 세우지 않고도 여러 종류의 외국어를 말했다. 

오순절 사건의 영속적 요소는 무엇인가?   194
첫째, 성령님은 그리스도를 증거하신다.(- 이 부분에 대한 강조는 이 책 이전까지, 예전 교회에서는 들어보질 못했다.)그리스도께서 성령님의 강림을 약속하신 것은 성령님이 오시셔서 죄인들에게 죄를 깨닫게 하고 신자들에게 그리스도를 보여주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둘째, 행할 수 있는 능력을 주신다.

사탄의 전략   198
(-광적이고 거칠고 두려움을 주는 그리스도인들이 그리스도인으로서 해서는 안될 일을 행하게 하여 다른 사람들로 하여금 성령에 대해 거부감을 갖게한다)

우리가 이 땅에서 그리스도를닮은 작은 그리스도가 되어 그분을 드러내려고 한다면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분은 그리스도의 영이시다. 하나님은 가장 미약한 그리스도인에게도 기적의 삶을 살라고 명령하신다.   202

우리는 성령님이 하나님과 예수님에 대해 가르쳐주시는 것 이상으로 하나님과 예수님에 대해 알 수는 없다.   204

"하나님의 충만함으로 충만한 것은 바다 속의 병에 비유될 수 있다. 병의 코르크 마개를 빼내어 병을 바닷물 속에 집어넣으면, 병 속에는 바닷물이 가득찬다. 병은 바닷물 속에 집어넣으면, 병 속에는 바닷물이 가득 찬다. 병은 바다 안에 있고 바다는 병 안에 있다. 바다는 병을 담고 있지만, 병은 바다의 극히 일부만을 담고 있다. 그리스도인의 경우도 이와 같다."    206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고백하는 신자들은 하나님의 백성이 하나님과 동행하기를 원한다고 믿고싶어 한다. 그러나 그들의 기대와는 달리 많은 하나님의 백성은 하나님과 화합하여 동행하기를 원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그토록 많은 신자들에게서 성령님의 능력과 평안이 발견되지 않는 것이다. 그러므로 나는 "우리가 사랑과 순종 가운데 하나님과 동행하기를 정말 원하는가?"라고 묻고 싶다.    211

오류를 낳는 잘못된 개념들   221 (-지성만으로 이해할 수 있을거라는 오류)
1. 성경공부에 대한 오해
2. 방법에 대한 오해
성령님이 우리에게 그리스도를 계시해주기를 기뻐하시는 만큼만 우리가 그리스도를 알 수 있다.   226

잘못된 개념이 초래할 수 있는 악한 결과들   226
첫째, 그리스도인의 삶과 자연인의 삶을 구별하지 못한다.
둘째, 인간의 지적 능력을 맹신하게 된다.
셋째, 과학에 의지하여 기독교를 증명하려 한다.
넷째, 인간의 위대함을 내세우려 한다.

존 번연의 ' 양다리 걸치는 사람'    240
(- 그리스도를 원하는 동시에 세상을 어느정도 원하는 그리스도인들,
모든것을 얻기 위해 모든것을 포기하겠다는 자세가 되어 있지 않으면 성령 충만한 살에 대해 이야기 하는 것은 아무 소용이 없다.)

그리스도인의 유형들  241
첫째, 보험을 드는 태도로 신앙생활을 하는 그리스도인들
둘째, 사교적 그리스도인들

성령님과 교제를 나누는 법   247
첫째, 성령님을 더욱 깊이 알라
둘째, 예수 그리스도께 온전히 몰두하라
셋째, 예수 그리스도를 높여라
넷째, 의 가운데 행하라
"제자가 되지 않고도 그리스도인이 될 수 있다고 말한 사람은 누구입니까?"
다섯째, 당신의 생각을 지켜라(거룩한 성소가 되도록 마음을 깨끗이 하라)
여섯째, 성령님의 임재를 훈련하라
당신의 영적 상태를 점검하는 방법은 당신의 일상생활과 습관들을 점검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당신이행하고 있는 일들과 당신이 행하지 않는 일들을 자세히 살피면 현재의 영적 상태가 드러날 것이다. 이런 것들이 당신에게서 예수님의 얼굴을 가리는 쪽으로 작용하는가? 이런 것들이 당신의 마음에서 기쁨을 앗아가는가? 이런 것들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이 전보다 덜 달게 느껴지는가? 이런 것들 때문에 세상은 더 좋아보이고 천국은 더 멀게 느껴지는가? (- 내 습관들과 마음을 살피면 모두 "그렇다"라고 대답할 수 밖에 없다..) 
어쩌면 당신에게 회개가 필요할지 모른다.


Posted by 지윤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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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사악함을 보신 하나님은 당신이 죽어야 한다고 판결하셨다. 모든 사람은 사형선고를 당한 상태이다. 사형선고를 당한 사람들이 저토록 즐겁게 사는 것을 볼때 나는 신기하다는 생각이 든다.    29


공의는 하나님께 돌아온 죄인의 편이다.   32


이 길이 결국에는 즐거운 길이라는 것을 아는 사람은 자기가 잃어버린 것에 대해 불평하지 않는다.    45


고독은 성도가 성도로 살아가기 위해 지불해야 할 한가지 대가인 것 같다.   48


그토록 많은 현대 그리스도인들의 약점은 그들이 세상에서 너무 편하다는 것이다. 거듭나지 못한 사회에 편하게 적응하려고 노력하는 과정에서 그들은 순례자라는 그들의 특징을 잃어버렸다.   58


"그리스도 한 분으로 충분하다!"   59


우리는 우리 자신에게 "내가 내 영적 가난을 철저히 숨기기 때문에 하나님도 내가 나를 아는 것 정도로만 나를 알고 계실거야"라고 말하지 않는가?    70


우리가 당연히 당할 징계를 당하면서도 그것을 '십자가'라고 믿는 것은 우리 자신을 속이는 것이다. 그러므로 징계의 고통에 대해서는 기뻐할 것이 아니라 회개해야 할 것이다.   84


또 그것은 날마다 순종의 좁은 길에서 발견될 수 있는 자기 부정이나 회개나 겸손이나 겸허한 희생을 자발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것이 신자 개인의 십자가이다. 그것만이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지라고 말씀하신 십자가이다.   101


새 십자가는 상스럽지 않고 악의 없는 무수한 놀이와 오락의 근원이 된다.    103


복음을 전하는 우리는 우리가 그리스도와 세상 사이의 관계를 호의적인 관계로 만드는 홍보대사라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106


"십자가가 시인과 화가에 의해 미화되었지만, 하나님을 간절히 찾는 사람에게 있어 십자가는 옛날과 마찬가지로 아주 잔인한 사형도구일 뿐이다."    131


당신의 육신을 억제하라. 그렇지 않으면 당신의 육신이 당신을 죽일 것이다.    137


내가 확신하건데, 우리에게서 영적 능력이 거의 나타나지 않는 이유 중 하나는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는 것', 즉 '십자가를 지는 것'을 싫어하기 때문이다.   141


따라서 우리는 많이 기도하며 깊이 생각해야 한다. 우리 앞에는 성경이 있고 우리 안에는 성령이 계신다. 이 땅에 살면서 우리는 그리스도의 심판대에 대비할 수 있다. 그런데 무엇 때문에 그렇게 하지 못하고 있는가?   159


십자가를 지는 그리스도인은 세상 어디에서도 유례를 찾을 수 없는, 철저한 비관주의자이며, 동시에 낙관주의자이다. 이토록 그리스도인은 '믿기 힘들 정도로' 참으로 놀라운 존재이다!    179


옛 십자가는 사람들을 죽였지만 새 십자가는 그들을 즐겁게 해준다. 옛 십자가는 비판했지만 새 십자가는 재미있게 해준다. 옛 십자가는 육신에 대한 자신감을 죽였지만 새 십자가는 그것을 조장한다. 전자는 눈물과 피를 쏟게 했지만 후자는 웃음을 선사한다.   221


자기의 죄가 얼마나 무거운지를 느낀 사람이나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마 27:46) 라는 갈보리 언덕의 외침을 들은 사람은 통속적 기독교가 제공하는 얄팍한 희망에서 평안을 얻지 못한다. 그런 사람은 그리스도의 대속적 죽음이 제공하는 죄 사함과 깨끗게 함과 보호가 아니면 평안을 얻지 못한다.  당연히 그래야 한다!   "오, 주님! 당신이 나의 의이시고 나는 당신의 죄입니다"      230


- 토저. 다시봐도 놀랍다는 말밖에는..

다시 보고 봐야할 책들.

Posted by 지윤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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