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과의 교제를 회복하기 전까지는 우리 안에서는 쉼을 얻을 수 있는 요소가 하나도 없게끔 만드셨다. 113


하나님과의 연합과 그분과의 사귐을 통해, 비록 우리가 사는 세상이 악한 자 안에 놓여있다 할지라도 우리는 웃을 수 있고 십자가를 견뎌 내 수 있으며 온전한 기쁨을 간직할 수 있다. 122

하나님께 말하며 또한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하나님을 알며 하나님을 찬양하면서 즐거워하고 그분에 대해 더 많이 알려고 몸부림치는 우리가 되어야 할 것이다.
우리에게 가장 긴요한 질문은 다음과 같이 간단한 것이다.
"나는 하나님을 알고 있는가" 137

성경 말씀이야말로 모든 경험에 대해, 하나님에 관한 지식에 대해 유일무이한 권위이자 또한 최종적 결정을 내릴 수 있는 기준이 되기 때문이다. 150

하나님과 잘못된 평안을 갖는 것보다 더 두려운 것은 아무것도 없다. 사람들에게 가장 위험한 것은 하나님과 함께 있으면 모든 것이 좋다고 스스로 설득하면서 정작 고통의 순간에는 하나님을 찾지않는 것이다. 170

욕망과 불평으로 달려 내려갈 것 같은 느낌이 들때에는 잠시 멈추어 히브리서 저자가 "우리 하나님은 소멸하는 불이심이라"고 말한 것을 기억하면서 하나님께 경외함과 두려움으로 나아가야 할 것이다. 171

'어둠에 행한다'한 밀씀의 뜻은 하나님에 대해 별로 생각하지 않으면서 살아가는 것을 의미한다. 179

인간의 마음은 참으로 완악하다. 하지만 자신을 정직하게 바라보는 사람은 이것이 인간의 본성에 대한 단순한 진리이며 인간에게 문제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우리의 본성은 악하고, 죄악되며, 우리 스스로를 속이고 있다는 책망을 용납하지 아니하며, '진리가 우리 안에 있지아니한' 것이다. 183

우리의 감추어진 죄악들을 빛으로 인도해주고 그 죄악들을 정죄하며 런 죄악을 범하지 않도록 인도해주시는 것이 성령의 사역이기 때문이다. 200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롬 5:8. 232

chapter 14. 죄 235

정욕이란 우리가 자신의 소원을 절제해 꼭 필요한 데만 마음을 두어야하는데 오히려 그러한 소원에 의해 주도당하는 것을 의미한다. 347

하지만 확실히 알 수 있는 것은, 죄의 힘이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 죄의 세력은 바울의 때에도 활동했으며 오늘날에도 아주 특별한 모습으로 기승을 부리고 있다. 따라서 지금이야말로 심판의 때이며 하나님의 백성이 매우 조심하고 신중해야만 하 때인 것이다. 또한 진리에 관해 그들이 취해야 할 견해에 곱절로 확신을 갖고 있어야만 될 때이다. 그리스도인은 그들을 잘못된 길로 인도해 들이려는 교묘한 죄의 세력들을 항상 경계하며, 요한이 요청한 대로 진리에 강하게 설 수 있어야만 할 것이다. 371

성령의 기름부음을 우리안에 간직하고 있다면 우리가 진리 안에서 그리고 믿음 안에서도 보호함을 입을 수 있다는 것이다.(기름부음에 대해서 오해하지 말자)
405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그리스도인이라는 단어가 갖는 의미나 적용보다도 그리스도인이라는 자체가 어떤 신분인가를 인식하는 것이다. 447
우리가 누구인가 하는 사실만 확실하게 깨닫게 된다면 어떤 행동을 취해야 할 것인가에 대한 문제도 자연히 해결된다.
448

복음은 사람들이 어려움을 극복하는 데
도움을 주는 심리적 위로를 준다거나 잠시 동안의 행복한 느낌을 제공하는 정도의 것이 아니다. 온전하고 영원한 위안과 위로는 언제나 우리가 누구이며 어떤 사람인가에 대한 충분한 이해와 깨달음에 근거한 상태에서만 주어질 수 있다.
450

그리스도인이란 단어는 자신이 어디에 놓여 있으며 어디에 서 있는지 아는 사람을 의미한다. 453

거듭나지 못한 사람은 자신이 필요로 할때는 하나님으로부터 축복받기 원하지만 사실상 그들의 마음에는 하나님을 거스르고자 하는 적대감이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으로부터 주어지는 것들 때문에 기뻐하고 성경말씀 읽기를 원하며 기도하기를 좋아하면서 좀더 많이 기도하지 못하는 것을 안타까워하는 사람이야말로 하나님의 자녀라는 사실을 입증하는 증표를 지녔다고 말할 수 있다. 457

나같이 보잘것 없고 실수투성이면서 죄악되고 무가치한 자가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이신 그분과 같이 될 것이라는 사실과, 그분의 놀라운 영광을 대하는 데 불편함이 없는 자로 변화될 것이라는 사실이야말로 참으로 영광된 소망임에 틀림없다. 467

이 말은 그냥 죄를 짓지 않으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긍정적이고 적극적으로 그분이 정결했던 것처럼 나도 정결해 지려고 노력함을 의미한다.
479

죄를 단순히 우리에게 있는 어떤 약점이나 실수 정도로 이해해서는 안된다. 또한 아직도 벗어버리지 못한 과거의 어떤 형편없는 삶 정도로 이해해서도 안된다. 죄는 율법을 어기는 것이며 하나님과 우리를 향한 그 분의 거룩한 뜻에 불순종하는 것을 의미한다. 488

이 세상의 모근 불행은 사탄의 교묘한 거짓말을 믿는 인간의 어리석음의 결과라고 할 수 있다. 505

우리가 그리그도안에 없으면그리스도인이 절대로 아니다. 524

죄를 계속해 지을 수 없으며 죄의 삶을 살 수 없다. 왜냐하면 나에게 주어진 새로운 성품이 이를 거절하기 때문이다.
530

우리 안에 영원한 생명이 거하면서 계속해 음직여 나가고 다른 빙향으로 그리고 좀더 훌륭한 쪽으로 우리를 이끌어들이는 좋은 의미의 소동을 겪지 못하고 일지못한다면 우리는 그리스도인이 아니다.
547

이는 그리스도가 그녀보다 앞서 그 안에 들어가 계시기 때문이다. 560
세상과 우리를 대립시키는 역할을 하는 유일하한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 즉 새로은 생명이라 할 수 있다. 560

좋아한다는 감정이 지식을 사용함으로써 생기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좋아한다는 것은 동물적 삶과 본능에 속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566

사랑은 언제나 매우 이성적이다. 567

사랑은 행하고 베풀며 스스로 표현한다. 억제할 수 없고 드러날 수 밖에 없는 것이 사랑이다. 578

언젠가는 진리에 의해 이중적 삶이 들추어지게 될 것이라는 말이다. 582

하나님 앞에 있다는 것은 기도에서 가장 본질적인 것이다. 585

나의 마음이 나를 책망한다면 과연 하나님의 관점에서 보실 때의 나는 어떻겠는가? 589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시니 모든 것이 잘 될 것이야." 라고 말함으로써 죄책감을 피할 준비를 하게 된다. 590

우리가 그분 앞에 있다는 사실과 살아계신 하나님을 대면해 말씀드릴 수 있다는 사실이야말로 참으로 영광스러우며 놀라운 특권이다. 599

Posted by 지윤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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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나단 에드워즈가 보여준 영적 성숙의 길(카일 스트로벨 지음, 윤석인 옮김, 부흥과개혁사)


지혜는 그리스도인의 삶을 사는 것, 오직 예수님만을 위해 살기를 애쓰는 결과로 발생한다. 지혜는 인내와 겸손과 사랑을 익힘으로써 생겨난다. 지혜는 우리보다 앞서 예수님과 동행한 인물들의 발치에 앉아서 배우는 일을 수반한다.   10


바울 사도의 말을 빌리면, 찬된 신앙은 '너희 속에 형성된 그리스도'다.   13


죄는 추함을 아름다움으로 믿는 것으로 이해될 수 있어서, 육체에 애정을 갖거나 세상을 숭배한다. 79


사람은 여호와의 선하심을 맛보고 봄으로써, 온 마음이 성령으로 말미암아 예수님 안에서 하나님께 대하여 살게 된다. 그것은 삼위로 계시는 하나님과의 교제다.   82


우리는 영적 훈련에만 관심을보이고 영적 훈련이 거룩함에 가져올 수 있는 효과에만 치중함으로써, 우리를 거룩하게 하시는 예수님의 사역에 대해 말하는 일을 대단히 성급히 멈추고 자아를 성장시키기 위한 우리 자신의 행위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한다.   93


은혜는 하나님이 우리로 하여금 더 나은 사람이 되도록 하기 위해 우리에게 주시는 이런 소질이 아니다. 은혜는 우리가 잠재력을 끌어올리기 위해 마실 수 있는 강장 음료와 갖지 않다. 오히려 은혜는 하나님과 더불어 누리는 우리 삶에 포함된 관계적 측면이다.  96


우리가 하나님께 나아간다고 해서 은혜를 베푸실 의무가 하나님께 있는 것은 아니지만,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께 나아가 이 은혜를 받도록 하기 위해 정하신 수단들을 은혜로 우리에게 제공하신다. 우리가 할 일은 믿음으로 그 연못에 들어가는 것이다. 98


은혜의 수단들을 신천하는 일이 신자의 삶 속에 은혜나 거룩함을 일으키는 게 아니다. 은혜의 수단들은 기껏해야 참된 생수를 위한 관계 용수로에 불과하다. 그러므로 종종 스스로를 거룩하게 만들려는 시도가 되기 쉬운 영적 훈련과 달리, 은혜의 수단들은 받음의 자세를 요구한다. 우리가 추구하는 목적은 언제나 자기 영으로 말미암아 예수님 안에 나타나시는 하나님이지, 더 나은 삶이 되어서는 결코 안된다(왜냐하면 하나님이 풍성한 삶의 원천이시기 때문이다).   106


성경을 읽는 일은 영적이거나 지적인 것처럼 보이려는 욕구가 동기로 작용할 때가 있다. 죄책감과 죄책감을 없애려는 욕망이 성경을 읽는 일을 부추길 때가 있다. 뿐만 아니라, 성경을 읽는 일은 하나님의 은혜를 얻으려는 육신적 시도일ㄹ 때가 있다. 육체의 끝은 언제나 자신이지만, 은혜의 끝은 하나님이다. 성경은 알아도 예수님은 모르기 쉬울 수 있다. 하나님과 하나님의 말씀을 참되게 안다는 것은 성령으로부터 받으려는 자세로 성경을 읽는다는 뜻이다.   109


기도는 하나님을 꾀어서 우리 편으로 만들거나 겟세마네에서 예수님이 하신 기도(마26:39)와는 반대로 우리가 바라는 형태의 삶을 보장하는 방향으로 하나님의 도움을 끌어들이려는 시도로 채워지기 쉽다. 그보다 기도는 하나님 자신을 구하는 것이다.  우리가 기도하는 중에 구하는 것은 선이신 하나님이지, 하나님이 주고자 하시는 가능한 응답이 아니다.  112


우리가 기독교 실천을 정욕으로 하는 경우가 대단히 많다는 자기 인식이 없다면, 자신의 '미덕'이 단지 변형된 악덕에 불과한 이유를 인지하지 못할 수밖에 없다.   128


우리가 자신의 죄를 하나님께 밝히기를 얼마나 두려워하는지의 여부는 우리가 아직도 스스로를 구원하기 위해 애쓰는 상태에 있는지를 가늠하는 척도가 된다. 이와 같은 죄의 폭로는 우리의 기를 꺾고 주눅이 들게 하는 대신, 하나님의 은혜를 음미할 수 있는 기호를 우리에게 제공한다. 죄의 폭로는 하나님께, 오직 하나님만 의지하기 위한 기회다.     129


여러분은 세상의 헛된 것들 때문에 말씀 읽기와 기도와 묵상을 게을리합니다. 여러분은 세상의 일들 때문에 안식일을 지키지 않습니다. 여러분은 세상을 위하여 다투는 일에 많은 시간을 보냅니다. 여러분은 세상 때문에 자기 이웃을 질투하고 미워합니다. 여러분은 세상 때문에 하나님과 예수님과 천국을 등 뒤로 버립니다. 여러분은 세상 때문에 자기 영혼을 팝니다. 여러분은 말하자면 세상의 관심과 욕망이라는 물속에 자기 영혼을 익사시킵니다. 여러분은 한낱 지렁이에 불과해서, 결코 자기 본령 안에 있지 못하고 늘 땅에 기어다니고 땅 속에 몸을 숨깁니다.    155


교회에 가서 하나님의 말씀을 들은 뒤에 곧바로 텔레비젼을 켜고 축구 경기를 시청하기가 얼마나 쉬운지를 생각해 보라. 흙이 얕은 토양에 떨어진 씨앗이 자리지 못하고 죽는 이유는 흙이 깊지 않기 때문이다.   180


온전히 살아 있다는 것은 '천국에만 지나치게 주의를 기울인 나머지 세상적인 선을 등한시한다'는 뜻이 아니다. 오히려 천국에 주의를 기우인다는 것은 여러분의 마음이 예수님께로 고정되었다는 바로 그 이유로 세상에서 가장 선한 사람이 된다는 뜻이다.  187


금식은 하나님의 뜻을 우리의 뜻에 굽히게 만드는 방법이 아니다. 금식은 심지어 우리 육체를 굴복시키는 방법도 아니다. 금식은 여러분의 마음을 준비시키는 수단이다.  195


은혜의 수단들은 우리를 사랑 안에서 하나님과 이웃에게로 향하게 함으로써,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은혜로 이 세상에서 성령의 열매를 맺도록 만든다(갈 5:22~23)   202


우리는 사탄이 종종 자신을 광명의 천사로 가장한다는 말을 듣지만(고후 11:14), 이 말이 단지 '천사처럼'을 뜻한다고 가정하는 태도는 잘못일 것이다. 오히려 사탄의 가장은 추한 것을 취해서 사람들에게 이것을 아름다운 것으로 납득시키기를 꾀한다. 사탄은 어두움을 취해서 빛이라고 선전한다.   209


그리스도인들은 '온 세상에서 벗어나는 것을 즐거움으로 삼는 반면", 불신자들은 "자신들을 우울하게 만든다"는 이유로 침묵과 독처를 종종 피한다.    211


당신의 생을 마감할 때 천국은 당신에게 결코 낯선 장소가 아닐 것이다. 그렇다. 당신은 전에도 수천 번씩 천국에 간 적이 있다.   - 존 엘리엇      218


영적 성숙은 하나님을 흥분이나 강령이나 더 큰 영향력과 맞바꾸지 않고 하나님께 완전히 의존하면서 사는 삶이다. 이는 인적이 드문 길인데, 왜냐하면 십자가로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220


나는 에드워즈가 여러분에게 아름다움의 하나님을 가리키는 것을 여러분이 허락하기를 소망한다. 바로 그 하나님이 여러분의 상상력을 사로잡게 하라.   221

Posted by 지윤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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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 은 인간의 최대의 관심사인데, 역설적으로 행복해지려고 노력할때 오히려 불행질 수 있습니다.

"천국이 저희 것임이요" , '심령이 가난하면 복이 있는데 왜냐하면(호티), 하늘 나라가 저희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늘 나라'는 하나님이 통치하시는 나라입니다.
인간의 행복은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맺고 천국의 질서 속에서 하나님을 즐거워하며 사는 거기에 있다는 것입니다.
인간의 모든 불행은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능력과 힘을 입어 살지 못하는데에 있습니다.

인간의 영혼이 아름다울 때가 두번 있습니다.
한번은 하나님을 사랑할때, 다른 한번은 죄에 대해서 깊이 회개하며 하나님을 앙망하고 그리워 할 때 입니다.
인간의 범죄는 그 하나님을 떠날 때 시작되었습니다. 가난한 마음은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이 '가난한 마음'은 인간의 노력만으로는 이룰 수 없습니다.

가난한 마음이 되는 길은,
1. 표상들로부터 벗어나는 것입니다.
   표상은 어떤 사물에 대한 해석인데, 올바른 해석이 아니라 하나님을 거스리며 살려는 인간의 욕망에 의해서 비뚤어진 해석입니다.  표상에 사로잡히게 되면 죄의 지성에 관해서 속임과 의지에 관하여 강압을 받게 되어 그릇됫 희망, 잘못된 절망을 안겨줍니다. 그릇된 희망을 가질 경우에는 위험한 상황에 있어도 그것을 알지 못하고 잘못된 희망을 갖게 되고, 잘못된 절망을 갖게 되면 비관적으로 치닫게 됩니다.
성경의 진리를 통해서 모든 사물을 비추어 올바른 해석을 갖게 되어야 합니다.
'인간은 진리의 빛을 받지 않는다면 인간은 필연적으로, 육체와 영혼 중 육체를 편애할 수 밖에 없는 존재이다' 아우그스티누스.
이 진리의 밝은 빛이 나에게 비취어 지도록 허락하여야 합니다.
"나는 내가 누군지 알 수 없는 비참한 존재이니 하나님의 진리의 밝은 빛으로 짐승같은 나를 비춰주옵소서"
나에게 왜 이런 여건과 환경을 주셨는지 진리의 빛 아래에서 해석해야 합니다.
진리의 참된 빛때문에 흘리는 회개의 눈물은 이 잘못된 욕망적 표상을 고치게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의 빛을 구하며 눈물 흘려본 일이 있습니까?
"하나님, 제가 깨닫지 못하기기 짐승과 같사옵고 내 마음의 욕망의 출렁거림이 나의 통제를 벗어나고 있사오니 오, 주여 오늘 이시간에도 주의 말씀의 기이한 법을 나에게 깨닫게 하사 이 모든 거짓된 표상에 속지 않도록 나를 일깨우시옵소서"

2. 선행하는 은혜가 작용해야합니다.
   아름답고 추함은 위치와 관계가 있습니다. 인간의 아름다움은 하나님이 지정해주신 자리에 있는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과 관계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을 의존하며 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임할때,
소극적으로는 우리가 집착하는 삶이 얼마나 보잘것 없는 것인지 알게해주고, 표상이 영원에 비하면 얼마나 허무한지 알게하십니다. 그래서 은혜가 임할 때는 '외로운 마음'이 먼저 찾아옵니다. 내가 의지하는 모든 것들이 하찮은 것이라고 생각하게 됩니다.
적극적으로는 아들까지 내어주신 하나님의 사랑에서 떨어진 것이 나의 잘못이라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하나님은 이런 가난한 마음이 되려는 사람들의 마음에만 선행하는 은혜를 주십니다.
지금 내가 가진 이세상의 모든 것을 잃어버릴 지라도 하나님께 소유되고 싶은 마음입니다. 그러므로 주님의 은혜를간절히 구하는 여러분이 되시길 바랍니다.

3. 하나님안에 있는 행복을 생각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을 멀리 떠난 나의 비참함과 대조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안에 있을때 얼마나 큰 행복을 누렸는지를 생각하게 하는 것입니다.
인간은 행복해지려고 몸부림칠수록 불행해지고 자신의 행복을 아랑곳하지 않을때 행복해지는 존재입니다.
인간은 자기를 사랑하는 것이 자기를 사랑하는 것이 아니요, 자기를 진정으로 사랑하지 않는 것이 자기를 사랑하는 것이라고 어거스틴은 말했습니다.
만복의 근원이 하나님이심을 믿고 회심은 다시는 하나님 밖에서는 행복을 찾지 않겠노라고 우리 자신을 돌이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당신을 떠난 사람들의 비참을 내버려두지 않으십니다.

4. 기도로써 그 마음의 열망을 표현하는 것입니다.
   모닥불을 붙이듯이, 작은 불씨로 시작하듯이 작은 은혜와 깨달음을 주셨을때, 그것을 불씨삼아서 간절히 집중하여 기도하여야 합니다.이때 우리의 마음이 움직이기 시작하고 간절한 기도가 나옵니다. 원망하는 마음이 물같이 녹고, 자기를 신뢰한것이 자신의 잘못임을 깨닫고 죄와 고통속에서도 하나님이 나를 버리신적이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사랑은 여기에 있나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셔서 자기의 독생자를 화목제물로 주셨음이라  (요한일서)"
이때 자기깨어짐을 경험하게 됩니다.
주님의 집에서 종으로 사는 것이 이 세상에서 부귀 영화를 누리면 사는 것보다 낫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비참한 고통속에 있던 딸을 위해 주님앞에 몸부림치던 수로보니게 여인을 생각하십시오. 그녀의 비참은 하나님의 은혜를 나타내는 수단이 되었습니다.


우리의 인생의 발걸음 하나하나 하나님의 은혜와 용서가 아닌 것이 없고, 주님이 우리를 위해 흘리신 보혈이 묻지 않은 곳이 없었습니다. 눈을 들어 우리 하나님을 바라보는 여러분이 되시기 바랍니다. 심령이 가난한 자가 되어 이 하늘을 누리며 사는, 이 세상에 발을 딛고 있으나 마음으로는 하늘에 사는 여러분이 되셔서 여러분이 이땅에 존재하는 것이 하나님에게 기쁨이 되고 죄로 비참한 이세상에 희망이 되도록 주님께 간구하는 여러분이 되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 모든 말씀을 다 새기고 잊지 말았으면 좋겠는데 돌아서면 잊고 잊고 다시 듣고 보면 다시 새롭다


Posted by 지윤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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