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들 신실한 신자들에게 '그리스도인'이라는 이름은 그냥 일반적인 종교적 칭호 이상이었다. 그 칭호는 자신과 주변 세상을 어떻게 인식하는지를 포함한, 자신의 모든 것을 구정했다. 그 칭호는 어떤 대가를 지불하더라도 예수님을 기꺼이 따르겠다는 헌신과 십자가에 못 박히신 메시아를 향한 사랑을 뒷받침했다. 15


현시대의 기독교에서 다루는 용어는 노예가 아닌 다른 것, 즉 성공, 건강, 부, 번영, 행복 추구에 대한 것이다. 우리는 종종 하나님이 무조건적으로 사람들을 사랑하시며, 그들이 모두 자신이 원하는 대로 살기를 바라신다고 듣는다. 21


그러나 신자들과 그리스도와의 관계에 관해 신약성경은 정반대로 가르친다. 그분은 주인이요, 소유주이시다. 우리는 그분의 소유이다. 한마디로, 우리는 그분의 노예들이다. 22


이유가 무엇이든 간에, 둘로스가 '노예'로 번역되지 않고 '종'으로 번역되는 순간, 번역상 중요한 개념이 사라진다. 복음은 단순히 그리스도의 동료가 되라는 초대가 아니라 그분의 노예가 되라는 명령이라는 개념 말이다. 25


노예들의 존재 목적은, 주인에게 충성스럽게 순종함으로써 모든 면에서 주인을기쁘게 하는 것이었다. 32


번영을 설교하는 사람들은 그리스도를 램프 속에 갇힌 '지니'처럼 소개하며 많은 돈을 헌금하는 사람에게 건강과 부와 행복을 제공해 주는 분으로 전락시키고 인간을 주인으로 만든다. 77


"나무는 각각 그 열매로 안다"(눅 6:44) 93


본래 얼마나 타락했는지, 
얼마나 모든 악을 저지르기 쉬운지, 
그들의 삶이 사단에게 얼마나 속박되어 있는지, 
그들의 의지가 얼마나 완고한지.


사단은 다스리며
자기 소유물을 평화롭게 유지한다.
영혼은 사단의 사슬에 매여 있기를 기뻐하며, 
풀려나기를 원하지 않는다.


예수님은 사단보다 더 강하셔서,
주님의 시간에,
자기 백성들을 자유롭게 하기 위해 나타나시네,
찬탈자의 권세로부터 자유롭게 하기 위해. (존 뉴턴) 114


나사로의 이야기는 죽음(영적,육체적)에 대한 그리스도의 신적 능력을 증명할 뿐만아니라, 그 반대의 신학적인 진리, 다시 말하자면 죽은 자는 스스로 살아날 수 없다는 진리도 설명한다. 126


비록 죄가 자기 노예들에게 만족과 생명을약속하지만, 실제로 죄가 주는 보상은 정확히 그 반대이다. 이 생에서는 비참함, 내세에서는 정죄함이 기다리고 있을 뿐이다. 129


로마의 노예시장에서 노예의 미래를 결정하는 권한은 오롯이 구매자의 손에 달려있었다. 마찬가지로 성경은 하나님게서 주권적이고 독자적으로 자신의 노예들을선택하셨다고 가르친다. 132


따라서 구원은 "원하는 자로 말미암음도 아니요 달음박질하는 자로 말미암음도 아니요 오직 긍휼히 여기시는 하나님으로 말미암"는다(롬 9:16) 135


왜냐하면, 하나님이 우리를 먼저 사랑하지 않으셨다면 우리는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기 때문이다. 138


"어느 날 저는 죽었습니다. 완전히 죽었습니다. 조지 뮬러는, 조지 뮬러의 의견과 조지 뮬러가 좋아하는 것과 기호와 의지는 죽었습니다. 세상을향해, 세상의 찬성과 비난에 대해 죽었습니다. 심지어 내 형제들과 친구들의 찬성과 비난에 대해서도 죽었습니다. 그후로 저는 하나님께 인정받기 위해 연구했습니다." (조지 뮬러) 155


우리는 하나님을 구하지 않았지만, 여전히 하나님은 우리를 발견하셨고 우리를 구원하셨다. 우리는 하나님의 원수들이었다. 그러나 여전히 하나님은 우리를 그분의 친구로 받아 주셨다. 우리는 하나님께 아무것도 되돌려드릴 수 없었지만, 여전히 하나님은 우리가 받기에 합당하지 않은 유산을 우리에게 허락해 주셨다. 
"내가 너희를 영접하여 너희에게 아버지가 되고 너희는 내게 자녀가 되리라"(고후 6:17-18) 167


불성실했던 노예만 주인의 귀환을 두려워한다. 열심히 일하고 잘 섬긴 그리스도의 노예들에게는 주인의 귀환이 커다란 축제가 된다. 그들에게 주인의 귀환은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하고 큰 보상을 받는 출발점이다. 184


이 생에서 우리가 내어 드린 순종과 희생적 섬김을, 우리의 주권자 주님께서 반드시 주목하여 보시고 갚아 주실 

것이다. 188


하나님의 왕국으로 인도 받은 존재가 스스로 죄악의 지배를 받거나, 그리스도와 함께 다스리도록 부름 받은 자가 죄악에 사로잡히기로 선택하는 것은, 마치 자기 머리에서 왕관을 벗어 내동댕이치고 넝마를 걸치고 구걸하는 신경질적인 여인의 노예가 되기로 선택하는 것처럼 터무니 없는 것이다. ... 어떻게 죄악이 당신 안에서 왕노릇할 수 있는가 그것은 죄악 그 자체의 힘 때문이 아니라 당신의 게으름 때문이다.(요한 크리소스토모스) 207


그리스도를 안다고 주장하면서도 여전히 회개하지 않는 죄악의 삶을 살아가는 사람은, 자신의 믿음의 고백을 배신하는 것이다(요일 1:6) 218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그리스도의 노예가 되는 것이다. 219


"영원한 것을 얻기 위하여 영원하지 못한 것을 버리는 자는 결코 바보가 아니다"(짐 엘리어트) 236


그리스도가 신자의 구원자라는 사실은 당연하게 가르치면서, 그리스도가 신자의 주님이라는 사실은 '선택적'으로 가르치는 것은 20세기의 이단이다.(짐 엘리어트) 237



- 존 맥아더. 

  이분의 책도 있는대로 읽어봐야겠다. 

  그리고 이분이 언급한 과거의 인물들의 책들도...

Posted by 지윤이네
,

심령이 가난한 복된 자들, 즉 자기들의 죄를 한탄하며 의에 목말라 하는 자들은 하나님나라의 자녀들이다. 24


"간음하는 여자들이여 세상과 벗된 것이 하나님의 원수임을 알지 못하느뇨 그런즉 누구든지 세상과 벗이 되고자 하는 자는 스스로 하나님과 원수 되게 하는 것이니라"(약 4:4) 27


하나님을 알기 원하는 사람은 심적 동요를 겪어야한다.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에게 임할 때마다 우리 안에 소용돌이가 일어나야 한다. 그러므로 동요를 느낀다고 동요하지 마라. 그것은 아주 정상적인 것이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뒤흔들어 놓으시기 때문이다. 33


날카로운 창이 심장을 꿰뚫듯, 그분의 증거는 인간의 영혼에 직접 파고든다. 50


사람들은 "주님이 약속하신 것이 겨우 이것인가? 정말 실망스럽다"라고 말했는가? 결코 그렇지 않다. 성경은 그들이 놀랐다고 말한다. 주님은 약속하신 것 이상으로 부어주셨다. 말씀으로 약속하신 것은 모두 성령님에 의해 성취되었다. 56


예를 들면, "무한에 접속하라", "네 안에서 잠자는 거인을 깨워라", "긍정적으로 사고하는 법을 배워라", "마음에 믿는 대로 된다"라는 헛소리와 감언이설을 늘어놓는다. 이 말들이 주사 한대 맞으면 바짝하듯이 일시적으로 심리적인 효과를 줄 수도 있다. 그러나 지속적인 효과를 줄 수는 없다. 왜냐하면 위로부터 임하시는 성령의 능력을 알지 못한 채 다만 인간의 타락한 본성에 희망을 걸기 때문이다. 62


목사의 축도로 예배가 끝날 때쯤 '어디에 가서 재미있는 시간을 보낼까?'라는 생각이 그의 머리를 스친다. 예배는 그의 삶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 67


당신은 성령님의 도우심을 원한다. 성령님이 주실 수 있는 여러가지 유익들을 갈망한다. 그렇다면 세상의 편한 길을 용납하지 않으시는 성령님과 동행할 준비가 되었는가? 만일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면, 더 이상의 영적 능력이나 축복을 얻겠다는 꿈은 접어라. 만일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면, 당신은 성령님을 원하는 것이 아니다. 단지 성령님을 원한다고 혼자서 착각하고 있을 뿐이다! 84


그렇다면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성경말씀대로 사는 것이다. 이것은 아주 간단한 일이다. 그러나 동시에 아주 혁명적인 일이다. 88


우리는 하나님을 갈망하는 만큼 하나님을 소유하게 된다. 96


진짜 그리스도인에게 십자가는 버림받고 죽임당하는 것을 의미한다. 교수형을 즐기는 사람이 없었든이 십자가를 즐긴 그리스도인은 없다. 97


그러므로 하나님의 깊은 뜻을 헤아리며 순종하라. 그러면 그분은 이제까지 오랫동안 우리에게 평안을 주었던 세상의 것들을 거두어 가실 것이며, 우리가 오직 성령님의 위로만 의지하도로고 도우실 것이다. 도한 그분은 이제까지 우리를 가렸던 가면을 찢어내어 우리가 얼마나 철저히 부패했는지 드러내 주실 것이다. 그때 비로소 우리는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다"(마5:3)라는 주님의 말씀의 깊은 뜻을 깨달을 것이다. 98


고난의 광야 체험이 우리에게 주는 의미는 그 체험이 우리의 관심을 되돌려놓는다는 데 있다. 덧없는 세상 것들에서 영원한 것들로 우리의 관심이 바뀐다는 데 있다. 99


우리가 그분을 만나러 가면 그분은 벌써 우리 쪽으로 절반이상 와 계실 것이다. 100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의 생각을 깨끗하게 해야한다. 우리의 생각은 성령님이 거하시는 성소이다. 101


지금 많은 사람들이 자기들에게 능력이 필요하다고 확신하면서도 능력을 받기 위해 옛 생활을 죽이는 고통스러운 과정을 거치기를 원하지 않는다. 116


참 믿음이란 자신의 심령의 가난함을 깊이 깨닫고 영적 굶주림을 채우려는 열망에 불타는 가운데 하나님을 향하여 크게 울부짖는 것이다. 117


기독교의 이상(理想)은 '행복해지는 것'이 아니라 '거룩해지는 것'이다. 성령님은 오직 거룩한 마음 안에만 거하신다. 127


그러나 성령님은 사람들이 흔히 말하는 것처럼 인간의 의지를 꺾어버리는 방법을 사용하시지는 않는다. 그분은 인간의 의지에 침투해 들어오셔서 그의 의지가 하나님의 의지에 기쁨으로 연합되도록 만드신다. 136


죄가 인류에게 가져다준 가장 큰 해악 가운데 하나는 우리의 정상적인 감정을 타락시켰다는 것이다. 우리는 웃기지도 않는 것을 보고 웃고, 인간의 존엄성을 훼손시키는 것들을 즐기며, 사랑해서는 안 될 것들에 애착을 느낀다. 그러나 진정한 성도들은 언제나 '죄악의 쾌락'에 반대했다. 140


우리는 '열심'을 성령님으로 착각해서는 안 된다. 흔히 열심은 흥분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그러나 흥분의 도가니 속에서 법석을 떠는 그곳에 성령님이 계실거라고 착각하지 말라. 144



- 성령님에 관한 31 가지 묵상(Tozer on the Holy Spirit)

1. 자기부정
살기 위해 죽어라
2. 부흥
냉랭한 심령에 성령의 불을 붙여라
3. 육신
육신에서 벗어나라
4. 연합
인간 중심이 아니라 그리스도 중심의 연합이어야 한다
5. 사랑
우리의 지혜에 사랑의 불이 붙어야 한다.
6. 순종
진리이신 그리스도께 순종하라
7. 분별력
대세에 휩쓸리지 말고 이 세대를 분별하라
8. 내주하심
살아계신 하나님이 당신 속에 있는가?
9. 소명
사람의 부름이 아니라 성령님의 부르심을 받아라
10. 향기
위대한 사람이 아니라 선한 사람이 되라
11. 부정 
죄를 미워해야 의를 사랑할 수 있다. 
12. 십자가
언덕 위의 십자가는 내 마음속의 십자가가 되어야 한다.
옛날에 한 젊은이가 나이 지긋한 성도에게 찾아와서 "어르신, 십자가에 못 박힌다는 것이 무슨 뜻입니까?"라고 물었다. 질문을 받은성도는 잠시 생각한 후에 "십자가에 못 박힌다는 것은 두 가지를 의미한다네. 우선, 십자가에 못 박힌 사람은 오직 한 방향만 향하게 되지"라고 대답했다. 그리고 또 말을 이었다.
"젊은이, 두 번째로 말하자면... 십자가에 달린사람은 이미 다시 돌이킬 수 없다네."

모든 그리스도인들의 마음속에는 십자가와 보좌가 있다. 
그들이 자신을 십자가에 못 박지 않았다면 
그들은 보좌에 앉아 있는 것이다. 183

13. 예배
일보다 예배가 더 중요하다. 
14. 은사
모든 신앙 행위는 성령의 능력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15. 기술
예배의 기술에 대해 무지하다
16. 경건
머리로만 믿는 기독교가 문제이다
17. 거룩함
거룩하신 하나님을 닮아 거룩한 삶을 살라
18. 본질
신앙의 본질은 성령의 역사로만 깨달을 수 있다
19. 정상(산의 정상)
어중간한 신앙을 탈피하라
20. 고백
성령으로만 예수를 주로 고백할 수 있다.
21. 기름부음
성령의 기름부음은 그 향내로 드러날 수밖에 없다.
22. 타협
세상과 타협하지 마라
영적 성장의 책임은 각각의 그리스도인들에게 있다. 그들이 성령님의 인도함을 받기위해 치러야 할 대가를 치르지 않거나 죄와 악을 미워하지 않는다면, 교회는 친목회롤 전락하고 말 것이다. 203
23. 감정
인위적 감정 조작을 경계하라
하나님은 우리가 영적 결단을 내리도록 만들기 위해 우리의 감정을 이용하는 분이 아니시다! 204
24. 주재권
성령님이 당신의 삶의 주인이 되셔야 한다
25. 제자도
삶에서 제자도를 실천하라
26. 결단
성령의 불은 우리로 결단하게 한다
하나님의 불꽃이 사람 안에 떨어지면 그는 고민하게 된다. 210
27. 상처
겟세마네를 지나야 그리스도와 함께 보좌에 앉을 수 있다.
28. 정결
하나님을 닮아 정결하라
29. 하나님의 나라
하나님의 나라는 거듭난 자만이 들어간다
이 세상과 그 거민들에게 임한 모든 재앙 중에서 가장 끔찍한 재앙은 인간의 영이 물질적 가치에 자발적으로 굴복하는 것이다. 217
30. 열심
성령님의 불은 열심의 불이다
31. 영원
영원한 복을 받아라

Posted by 지윤이네
,

나는 분명히 말한다. 예배를 지겨워하는 사람은 아직도 천국에 갈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사람이다.   9

 

만일 당신이 일주일의 7일간 하나님을 예배하지 않는다면 당신은 일주일에 단 하루도 하나님을 예배하지 않는 것이다. 22

 

참예배를 위해 우리에게 정말 필요한 것은 성령님이 찾아오시는 일이다. 왜냐하면 그분이 찾아오셔서 예배의 영을 허락하셔야 우리가 참예를 드릴 수 있기 때문이다.  35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으면서 하나님을 예배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것은 성경이 가르치는 것이요, 또한 우리 이성이 주장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전부'가 아닌 것에는 결코 만족하지 않으신다. 48

 

그리스도의 사랑에 감격하고 기뻐하면서 그분을 사랑하려고 애쓰는 사람들은 얼마나 적은가! 너무 적어서 탄식이 나올 지경이다. '그리스도를 향한 미칠 것같은 아름다운 사랑'은 오늘날 찾아보기 힘들다. 50

 

어떤 사람들은 모든 것에 감탄하고, 어떤 사람들은 아무것에도 감탄하지 않고, 또 어떤 사람들은 잘못된 것에 감탄한다. 하나님은 이런 사람들에게 찾아오셔서 "나는 하나님이다. 나를 보고 감탄하고 열광하라"라고 말씀하신다.  54

 

하나님을 불쾌하게 해드리는 것이 내 안에 조금도 없을 때에 비로서 그분은 나의 예배를 온전히 기뻐하신다.  59

 

하나님이 받으실 만한 예배를 드리는 방법을 아는 분은 오직 성령님이시다. 64

 

오늘날의 기독교가 보여주는 하나님은 사람들이 친구처럼 쉽게 어울릴 수 있는 나약한 싸구려 하나님이다. 그분은 '이웃집 아저씨'정도로 여겨진다. 그분은 당신이 어려움에 처했을 때 도와주고, 당신이 평안할 때는 당신을 그냥 내버려두는 분으로 여겨진다. 우리는 아브라함과 야곱의 하나님을 ,누구든지 어제나 쉽게 도움을 청할 수 있는 박제된 하나님으로 반들어버렸다.   78

 

그분은 가장 친절한 분이지만 동시에 높고 강하신 주님이시다. 그분은 죄인들의 친구이시지만, 악인들에게는 공포의 대상이시다. 그분은 온유하고 겸손하시지만, 장차 이 당에 오셔서 만민을 심판하실 분이시다. 그분과 친밀한 관계를 맺은 사람은 누구도 그분 앞에서 경박하게 행동할 수 없다.   92

 

아브라함, 다윗, 바울과우리의 큰 차이점은 그들이 하나님을 찾고 발견하고, 찾고 발견하고 찾고 발견했다는 것이다. 그들은 하나님을 간절히 찾았다. 그러나 우리는 어떤가? 우리는 주님을 영접하고 난 뒤에는 그분을 다시 찾지 않는다.   94

 

그의 간절함은 그를 한밤중에도 교회로 오게 만든다. 부흥은 자정이 넘어서 찾아온다는 말은 그를 두고 하는 말인 듯하다.    96

 

현재 가장 필요한 것은 스스로 그리스도인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하나님께, 그리고 서로에게 자복하는 일아다. 그들이 자복해야 할 내용은 이런 것이다. 그들이 잘못된 길로 가고있으며, 세상적이며, 낮은 도덕적 상태에 머물러 있으며, 영적으로 냉랭하다는 것이다.    107

 

교회에서 양육된 맣은 사람들에게는 하나님을 경외해야한다는 생각이 없다. 이 것은 그들이 하나님의 임재를 믿지 않기 때문인 것 같다.   111

 

피조물의 조급함 때문인지는 몰라도 나는 종종 '현대의 그리스도인들을, 짧고 쉬운 교훈을 통해 고통없이 깊은 영적 삶으로 인도할 수 있는 방법이 있으면 좋겠다!'라고 희망하곤 한다. 그러나 이런 바람은 헛된 것이다. 쉬운 지름길은 없다. 하나님을 알고자 하는 사람은 그분에게 시간을 드려야 한다.   117

 

이 어두운 시대에 우리의 선생들은 우리가 더 이상 하나님을 찾을 필요가 없다고 잘못 가르쳤다. 그들은 처음에 그리스도를 영접하기만 하면 그 다음으로는 할 것이 없다고 가르쳤다. 그 결과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의 영혼에 나타나시기를 더 이상 갈망하지 않게 되었다.   125

 

종교적 연예오락이 그리스도의 교회를 너무나 타락시켰기 때문에, 수백만의 사람들은 그것이 이단이라는 사실조차 알지 못한다. 전 세계 수백만의 복음주의자들은 종교적 연예오락에 몰두해 있다.    129

 

의지하는 감정, 즉 의존감은 모든 예배의 근간이다. 영적으로 아무리 높은 단계에까지 올랐다 해도 그 시작은 언제나 자신의 부족을 절감하는 데  있다. 물론 하나님만이 그 부족을 채워주실 수 있다. 이처럼 자신의 부족을 인식하는 의존감이 자연종교의 뿌리에 놓여 있는 것이 사실이라면, 왜 그토록 많은 사람들이 '연예오락'이라는 신을 숭배하는지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들은 연예오락을 의지하는 것이다. 그들은 연예오락없는 삶을 도저히 견딜 수 없다.    130

 

기독교가 매우 대중적인 종교인데도 우리는 거의 능력을 발휘하지 못하다. 왜 그러가? 우리에게 죄의 깨달음과 회개와 경건한 슬픔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133

 

그들은 자신들이 그리스도를 위해서 산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들은 외식하는 자들이다. 그들은 그리스도를 위해서그러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의 육신적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서 애쓰는 것이다. 그들은 다만 세상의 나이트 클럽에마음놓고갈 수 없어서교회를 나이트클럽처럼 활용하는 것뿐이다.   135

 

오늘날 스스로 '그리스도인'이라고 고백하는 수많은 사람들은 성령님이 자기에게 반드시 필요한 분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138

 

그들은 "나를 즐겁게 해주고, 고통없이 나를 교화해주세요"라고 말한다.  140

 

교회는 '연예오락'이라는 큰 신을 이길 수없을 바에야 차라리 그와 연합하여 그의 힘을 이요하는 편이 더 낫다고 잠정 결론을 내린 것처럼 보인다.    143

 

현대의 기독교인들은 세상 사람들을 십자가에 못 박지 않는다. 그 이유는 그들이 세상 사람들과 너무나 편하게 잘 지내고 있기 때문이다.   158

 

문제는 그들이 그리스도보다 인기를 더 사랑한다는 것이다. 그들은 아이들, 사업상 거래처 사람들, 직장 동료들, 친목회 친구들의 호감을 잃기를 원하지 않는다. 이렇게 그들은 친구들을 잃지 않으려고, 적을 만들지 않으려고 그리스도를 배신한다.   161

 

이 땅에서 주님을 섬기며 금과 은을 쌓는데 익숙한 사람들은 금으로 만든 천국의 길에 별 매력을 느끼지 못한다.    164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구원하신것은 우리가 먼저 예배자가 되고 그 다음에 일꾼이 되도록하기 위함이다.   179

 

위티즈 접근법.. 그리스도가 이 세상 유명인사들의 유명세에 편승하도록 만들고 있다.  180

 

현대의 기독교가 전하는 새로운 십자가는 사람들에게 그들이 죄인임을 깨닫고 하나님 앞에서 두려워 떨며 절망감을 느끼게 하려 하지 않는다. 184

 

"내가 오락거리로 즐기는 것이 무엇인가? 내가 탐닉하는 것들중에서 나를 방해하는 것이 무엇인가?" 만일 그런 것들이 있다면 자신을 변호하려는 논쟁을 벌이지 말고, 당장그것들을 끊어버려라. 189

 

그런 예배는 샴페인과 잘 차려 입은 술꾼이 없는 성화된 나이트클럽에 비유할 수있다.   190

 

그리스도는 그들을 불러내어 거룩해지라고 말씀하시지만, 우리는 그들을 불러내어 천박하고 값싼 행복을 추구하라고 가르친다.   194

 

그들은 완전히 속고 있는 것이다? 그리스도인의 삶의 상징은 십자가 이다. 그렇지만 우리는 우리의 십자가를지려고 하지 않는다. 우리는 원수를 용서하려고 하지 않는다. 원수와 화해하려고 하지 않는다.   195

 

우리의 영적인 곤고함과 비참함을 애통해 하여 하나님 앞에 주저앉아 울어야하는데, 오히려 우리는 종교적 오락에서 위로를 얻으려고 애쓴다. 198

 

그러나 아무리 아침 일찍부터 밤늦게까지 열심히 일한다고 해도 그것이 단지 종교적인 계획을성취하기 위해서 인간의 재능을 사용하는 일에 불과하다면, 그것은 결국 하나님 없이 인간이 인간의 일을 하는 것뿐이다. 하나님은 그런 일들에 '결국 썩어서 없어질 것들' 이라는 낙인을 찍으실 것이다.   199

 

그들은 신약성경보다는 고급스럽고 세련된 물건에 대해서, 성령님보다는 연애소설과 연속극에 대해서 더 많이알고 있다.   203

 

복음주의 진영에서 요란스러운 종교적 활동에 몰두하게 만든 대단한 착각은 시대가 변함에 따라 교회도 변해야 한다는 생각이다.   207

 

이제 우리는 우리 가운데 하나님의 영을 모시지 않고 그 대신 화려한 매력(섹스, 화장품, 화려한 의상, 인공조명등으로 상징되는 것들)이라는 우상을 모신다. 216

 

현재 기독교의 경향은 사람들에게 천국 지향적인 사고를 심어주지 못하고, 오히려 신앙을 세속화 하여 타락한 인간들의 육신적 가치관에 대해 좋게 말한다.  현재 성공을 우상화하는 교회는 대기업 회장, 영화배우, 운동선수, 정치인 및 각 분야에서 성공한 사람들의 사회적 평판에 아랑곳하지 않고 그들의 신앙 간증을 전하기에 바쁘다. 218

 

기독교는 단지 약간 높은 수준의 도덕을 요구하는 정도가 아니라 불가능한 것을 요구한다. 그러면서도 그 불가능한 것을 이룰 수 있는 힘을 주는 것이 기독교이다.   224

 

-- 놀랍게도 예전의 교회에서 하던 대부분의 일들이 토저가 이 책에서 설명한 "쇼"하는 교회에서 하는 일이었다. 

전혀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연예오락(엔터테인먼트!)에 집중하고 그 일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이라고 장려하기까지 했고, 나도 거기에 수년간 열심히 동조한 것을 분명히 인정한다. 마음깊이 회개하고, 긍휼히 여겨주시고 속히 깨닫고 돌이키길 기도할 수 밖에 없다. 

Posted by 지윤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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