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분명히 말한다. 예배를 지겨워하는 사람은 아직도 천국에 갈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사람이다. 9
만일 당신이 일주일의 7일간 하나님을 예배하지 않는다면 당신은 일주일에 단 하루도 하나님을 예배하지 않는 것이다. 22
참예배를 위해 우리에게 정말 필요한 것은 성령님이 찾아오시는 일이다. 왜냐하면 그분이 찾아오셔서 예배의 영을 허락하셔야 우리가 참예를 드릴 수 있기 때문이다. 35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으면서 하나님을 예배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것은 성경이 가르치는 것이요, 또한 우리 이성이 주장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전부'가 아닌 것에는 결코 만족하지 않으신다. 48
그리스도의 사랑에 감격하고 기뻐하면서 그분을 사랑하려고 애쓰는 사람들은 얼마나 적은가! 너무 적어서 탄식이 나올 지경이다. '그리스도를 향한 미칠 것같은 아름다운 사랑'은 오늘날 찾아보기 힘들다. 50
어떤 사람들은 모든 것에 감탄하고, 어떤 사람들은 아무것에도 감탄하지 않고, 또 어떤 사람들은 잘못된 것에 감탄한다. 하나님은 이런 사람들에게 찾아오셔서 "나는 하나님이다. 나를 보고 감탄하고 열광하라"라고 말씀하신다. 54
하나님을 불쾌하게 해드리는 것이 내 안에 조금도 없을 때에 비로서 그분은 나의 예배를 온전히 기뻐하신다. 59
하나님이 받으실 만한 예배를 드리는 방법을 아는 분은 오직 성령님이시다. 64
오늘날의 기독교가 보여주는 하나님은 사람들이 친구처럼 쉽게 어울릴 수 있는 나약한 싸구려 하나님이다. 그분은 '이웃집 아저씨'정도로 여겨진다. 그분은 당신이 어려움에 처했을 때 도와주고, 당신이 평안할 때는 당신을 그냥 내버려두는 분으로 여겨진다. 우리는 아브라함과 야곱의 하나님을 ,누구든지 어제나 쉽게 도움을 청할 수 있는 박제된 하나님으로 반들어버렸다. 78
그분은 가장 친절한 분이지만 동시에 높고 강하신 주님이시다. 그분은 죄인들의 친구이시지만, 악인들에게는 공포의 대상이시다. 그분은 온유하고 겸손하시지만, 장차 이 당에 오셔서 만민을 심판하실 분이시다. 그분과 친밀한 관계를 맺은 사람은 누구도 그분 앞에서 경박하게 행동할 수 없다. 92
아브라함, 다윗, 바울과우리의 큰 차이점은 그들이 하나님을 찾고 발견하고, 찾고 발견하고 찾고 발견했다는 것이다. 그들은 하나님을 간절히 찾았다. 그러나 우리는 어떤가? 우리는 주님을 영접하고 난 뒤에는 그분을 다시 찾지 않는다. 94
그의 간절함은 그를 한밤중에도 교회로 오게 만든다. 부흥은 자정이 넘어서 찾아온다는 말은 그를 두고 하는 말인 듯하다. 96
현재 가장 필요한 것은 스스로 그리스도인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하나님께, 그리고 서로에게 자복하는 일아다. 그들이 자복해야 할 내용은 이런 것이다. 그들이 잘못된 길로 가고있으며, 세상적이며, 낮은 도덕적 상태에 머물러 있으며, 영적으로 냉랭하다는 것이다. 107
교회에서 양육된 맣은 사람들에게는 하나님을 경외해야한다는 생각이 없다. 이 것은 그들이 하나님의 임재를 믿지 않기 때문인 것 같다. 111
피조물의 조급함 때문인지는 몰라도 나는 종종 '현대의 그리스도인들을, 짧고 쉬운 교훈을 통해 고통없이 깊은 영적 삶으로 인도할 수 있는 방법이 있으면 좋겠다!'라고 희망하곤 한다. 그러나 이런 바람은 헛된 것이다. 쉬운 지름길은 없다. 하나님을 알고자 하는 사람은 그분에게 시간을 드려야 한다. 117
이 어두운 시대에 우리의 선생들은 우리가 더 이상 하나님을 찾을 필요가 없다고 잘못 가르쳤다. 그들은 처음에 그리스도를 영접하기만 하면 그 다음으로는 할 것이 없다고 가르쳤다. 그 결과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의 영혼에 나타나시기를 더 이상 갈망하지 않게 되었다. 125
종교적 연예오락이 그리스도의 교회를 너무나 타락시켰기 때문에, 수백만의 사람들은 그것이 이단이라는 사실조차 알지 못한다. 전 세계 수백만의 복음주의자들은 종교적 연예오락에 몰두해 있다. 129
의지하는 감정, 즉 의존감은 모든 예배의 근간이다. 영적으로 아무리 높은 단계에까지 올랐다 해도 그 시작은 언제나 자신의 부족을 절감하는 데 있다. 물론 하나님만이 그 부족을 채워주실 수 있다. 이처럼 자신의 부족을 인식하는 의존감이 자연종교의 뿌리에 놓여 있는 것이 사실이라면, 왜 그토록 많은 사람들이 '연예오락'이라는 신을 숭배하는지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들은 연예오락을 의지하는 것이다. 그들은 연예오락없는 삶을 도저히 견딜 수 없다. 130
기독교가 매우 대중적인 종교인데도 우리는 거의 능력을 발휘하지 못하다. 왜 그러가? 우리에게 죄의 깨달음과 회개와 경건한 슬픔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133
그들은 자신들이 그리스도를 위해서 산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들은 외식하는 자들이다. 그들은 그리스도를 위해서그러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의 육신적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서 애쓰는 것이다. 그들은 다만 세상의 나이트 클럽에마음놓고갈 수 없어서교회를 나이트클럽처럼 활용하는 것뿐이다. 135
오늘날 스스로 '그리스도인'이라고 고백하는 수많은 사람들은 성령님이 자기에게 반드시 필요한 분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138
그들은 "나를 즐겁게 해주고, 고통없이 나를 교화해주세요"라고 말한다. 140
교회는 '연예오락'이라는 큰 신을 이길 수없을 바에야 차라리 그와 연합하여 그의 힘을 이요하는 편이 더 낫다고 잠정 결론을 내린 것처럼 보인다. 143
현대의 기독교인들은 세상 사람들을 십자가에 못 박지 않는다. 그 이유는 그들이 세상 사람들과 너무나 편하게 잘 지내고 있기 때문이다. 158
문제는 그들이 그리스도보다 인기를 더 사랑한다는 것이다. 그들은 아이들, 사업상 거래처 사람들, 직장 동료들, 친목회 친구들의 호감을 잃기를 원하지 않는다. 이렇게 그들은 친구들을 잃지 않으려고, 적을 만들지 않으려고 그리스도를 배신한다. 161
이 땅에서 주님을 섬기며 금과 은을 쌓는데 익숙한 사람들은 금으로 만든 천국의 길에 별 매력을 느끼지 못한다. 164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구원하신것은 우리가 먼저 예배자가 되고 그 다음에 일꾼이 되도록하기 위함이다. 179
위티즈 접근법.. 그리스도가 이 세상 유명인사들의 유명세에 편승하도록 만들고 있다. 180
현대의 기독교가 전하는 새로운 십자가는 사람들에게 그들이 죄인임을 깨닫고 하나님 앞에서 두려워 떨며 절망감을 느끼게 하려 하지 않는다. 184
"내가 오락거리로 즐기는 것이 무엇인가? 내가 탐닉하는 것들중에서 나를 방해하는 것이 무엇인가?" 만일 그런 것들이 있다면 자신을 변호하려는 논쟁을 벌이지 말고, 당장그것들을 끊어버려라. 189
그런 예배는 샴페인과 잘 차려 입은 술꾼이 없는 성화된 나이트클럽에 비유할 수있다. 190
그리스도는 그들을 불러내어 거룩해지라고 말씀하시지만, 우리는 그들을 불러내어 천박하고 값싼 행복을 추구하라고 가르친다. 194
그들은 완전히 속고 있는 것이다? 그리스도인의 삶의 상징은 십자가 이다. 그렇지만 우리는 우리의 십자가를지려고 하지 않는다. 우리는 원수를 용서하려고 하지 않는다. 원수와 화해하려고 하지 않는다. 195
우리의 영적인 곤고함과 비참함을 애통해 하여 하나님 앞에 주저앉아 울어야하는데, 오히려 우리는 종교적 오락에서 위로를 얻으려고 애쓴다. 198
그러나 아무리 아침 일찍부터 밤늦게까지 열심히 일한다고 해도 그것이 단지 종교적인 계획을성취하기 위해서 인간의 재능을 사용하는 일에 불과하다면, 그것은 결국 하나님 없이 인간이 인간의 일을 하는 것뿐이다. 하나님은 그런 일들에 '결국 썩어서 없어질 것들' 이라는 낙인을 찍으실 것이다. 199
그들은 신약성경보다는 고급스럽고 세련된 물건에 대해서, 성령님보다는 연애소설과 연속극에 대해서 더 많이알고 있다. 203
복음주의 진영에서 요란스러운 종교적 활동에 몰두하게 만든 대단한 착각은 시대가 변함에 따라 교회도 변해야 한다는 생각이다. 207
이제 우리는 우리 가운데 하나님의 영을 모시지 않고 그 대신 화려한 매력(섹스, 화장품, 화려한 의상, 인공조명등으로 상징되는 것들)이라는 우상을 모신다. 216
현재 기독교의 경향은 사람들에게 천국 지향적인 사고를 심어주지 못하고, 오히려 신앙을 세속화 하여 타락한 인간들의 육신적 가치관에 대해 좋게 말한다. 현재 성공을 우상화하는 교회는 대기업 회장, 영화배우, 운동선수, 정치인 및 각 분야에서 성공한 사람들의 사회적 평판에 아랑곳하지 않고 그들의 신앙 간증을 전하기에 바쁘다. 218
기독교는 단지 약간 높은 수준의 도덕을 요구하는 정도가 아니라 불가능한 것을 요구한다. 그러면서도 그 불가능한 것을 이룰 수 있는 힘을 주는 것이 기독교이다. 224
-- 놀랍게도 예전의 교회에서 하던 대부분의 일들이 토저가 이 책에서 설명한 "쇼"하는 교회에서 하는 일이었다.
전혀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연예오락(엔터테인먼트!)에 집중하고 그 일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이라고 장려하기까지 했고, 나도 거기에 수년간 열심히 동조한 것을 분명히 인정한다. 마음깊이 회개하고, 긍휼히 여겨주시고 속히 깨닫고 돌이키길 기도할 수 밖에 없다.
'책' 카테고리의 다른 글
Slave ( John MacArthur) 2013년 11월 11일 (0) | 2014.09.19 |
---|---|
이것이 성령님이다.(A.W.Tozer) 2013년 11월 8일 (0) | 2014.09.19 |
십자가와 은혜. 김남준. (성장반 1) 2013년 9월 11일 (0) | 2014.09.19 |
아이야, 엄마가 널 위해 기도할게 (김남준) 2013년 9월 1일 (0) | 2014.09.19 |
깊이 읽는 주기도문. 김남준 2013년 8월 24일 (0) | 2014.09.1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