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협할 수 없는 진리 (마틴 로이드 존스 지음, 김효남 역, 지평서원)



1부 진리는 변하지 않는다


이 거짓 선지자들은 언제나 "평안, 평안"만 외치며 모든 것이 곧 잘풀릴 것이라고 우리를 설득합니다.  52


그리고는 아주 온화하고도 겸손한 모습으로 가장하고서는, 자신들도 인간이 아직까지는 완전하지 않으며 여전히 가야 할 길이 멀다는 것을 인정한다고 천연덕스럽게 말합니다. 결국 이 모든 것이 전적으로 시간문제라고 집요하게 우리를 설득하려는 것입니다.   56


이와같이 인간에게 있는 문제에 대해 피상적으로 접근하는 관점들은 한 가지 공통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곧 우리의 문제를 전적으로 여건과 환경의 탓으로 돌린다는 것입니다. 58


이처럼 안락함이나 행복 그 자체를 목적으로 삼는 것이야말로 참된 행복을 얻지 못하게 만드는 가장 거짓되고도 치명적인 실수입니다.  66


거짓 선지자들이 명확하게 사고할 수 없는 궁극적인 이유는, 그들이 의도적으로 자신을 방어하고 자신에 대해서 긍정적으로 생각하기로 작정했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어려움에 처하게 되는 것은 근본적으로 자만심 때문입니다.

우리는 비판받기를 무엇보다 싫어하며, 자신이 틀렸다고 지적받는 것을 매우 싫어합니다. 우리는 변명하고 우리가 범한 죄를 합리화하는데에 얼마나 능숙한지요! 또 다른 사람들에게 있는허물과 잘못은 멀리서도 찾아내면서 자신에게 있는 허물과 잘못을 찾아내는 것은 얼마나 어려워하는지요!  67


우리가 가지고 있는 문제들은 바로 우리 자신, 즉 우리의 됨됨이에서비롯되는 것입니다.73


그러나 인간은 실패할 수밖에 없습니다. 왜냐하면 문제가 인간 자신에게 있으며, 그를 둘러싼 환경과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 있기 때문입니다. 결국 인간은 자신이 원하는 것을 주실 수 있는 유일한 분과 싸우고 있는 것입니다. 75


"내가 증언하노니 그들이 하나님께 열심이 있으나 올바른 지식을따른 것이 아니니라"(롬 10:2)  83


그들은 오직 목표를 추구하고 목표를 찾아가는 방법만을 강조합니다. 찾으려는 노력이 실제로 찾아내는 대상보다 더 중요해져 버렸습니다. 그래서 진실한 태도와 열정적인 자세가 다른 어떤 것보다 더 높은 가치를 지니게 된 것입니다.  91


이보다 더 우스운 사실은 그들이 그렇게 해 놓고서는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을 위한 것이라고 스스로를 세뇌시겼다는 것입니다.   101


정말 중요한 질문은 "우리가 진정 누구를 기쁘게 하고 있는가?"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자신입니까, 아니면 하나님입니까? 우리는 과연 그분의 방식대로 살기로 작정하였습니까? 과연 우리의 의지를 하나님 앞에 굴복시키고 우리 삶의 주도권을 그분께 내드렸습니까? 아직 그렇게  하지 못했다면, 우리에게 있는 모든 의는 '더러운 옷(사 64:6)'에 불과할 뿐입니다. 그런 의가 우리에게 해 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103


우리가 하나님에게서 멀어질수록 우리의 삶이 점점 더 복잡해지는 것입니다.  123


신앙을 모호하고도 불확실하게 만들어 놓은 상태에서 그 신앙을 따르는 신자들이 다양한 활동으로 인해 바쁘기만 하다면, 그들에게 모든 것이 잘되어 간다는 생각을 심어주는 것은너무나도 쉬운 일입니다.   125


일단 한 사람이 바로 서게 되면 그 사람이 다른 모든 것들을 제자리로 돌려놓게 되는 것입니다. 142


우리의 눈이 성할 때 비로소 온몸이 밝아질 것입니다.(눅 11:34)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을 우리 마음에 비추셨느니라"(고후 4:6)   147



2부 청교도주의에서 비국교도주의로


'인간적인 논리를 들이대며 진리를 위협하는 거세 세파 가운데서도 절대 타협하지 않은 채 생명을걸고라도 진리를지키고자 일어셨던 사람들'



"그리스도의 근본을 당신의 근본으로 삼으라. 진리에서 한치도 떨어지지 말라. 왜냐하면 진리는 당신의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것이기 때문이다." - 사무엘 루터포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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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원이란 무엇입니까? 구원이란 단지 나 한 몸 죽어서 천국 가는 것이 아닙니다. 만일 구원의 의미가 그러하였다면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이 구원받는 즉시 죽게 하셔도 될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구원받은 자들에게 사명과 임무를 주셨습니다. 칼뱅이 바로 그 점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그에게 구원이란 믿음의 공동체가 이 땅에서부터 하나님의 언약에 반응하며 사는 삶입니다.  그렇기에 구원이란 신자의 삶의 전 영역을 바꿔놓는 근원적 힘이 됩니다.  82


- 은혜가 왜 필요한 것인지, 

   '나'라는 인간이 얼마나 은혜없이는 살 수 없고 구원받을 수 없는 존재인지,

   그 '은혜'가 날마다 순간마다 얼마나 필요한 것인지,

   하나님께서 얼마나 나의 "삶"을 원하시는지를 더 깊이 들여다보게 하는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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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려움에서 믿음으로 (마틴 로이드 존스 지음, 김은진 옮김)


만일 내가 하나님께서 참으로 나의 아버지가 되시며 나의 머리털까지 세신 바 되고 나의 행복과 안녕에 대해 나보다도 더 관심이 많다는 것을 믿는다면, 또한 하나님께서 자신의 위대하고도 거룩한 이름의 영광을 나타내기를 나보다도 더 간절히 원하신다는 사실을 믿는다면, 하나님께 기도한 후에 그분의 응답을 찾지 않는 것은 분명히 하나님을 모욕하는 일입니다. 그것은 믿음이 없는 매우 심각한 태도입니다. 우리가 기도한 후에 취하는 행동과 태도만큼 우리의 믿음의 성격을 잘 보여 주는 것도 없습니다. 믿음의 사람들은 기도한 것에 그치지 않고 하나님의 응답을 기다렸습니다.    68


히브리어로 '부흥'은 '보존하다' 또는 '살아 있게 하다'라는 의미를 지닙니다. 하박국은 교회가 모두 파괴되는 것을 가장 두려워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보존하여 주소서. 주여, 교회를 살리고, 전멸되지 않게 하소서"라고 기도하였습니다. 그러나 부흥은 이러한 의미 외에 '깨끗하게 하다, 교정하다, 모든 악을 제거하다'라는 뜻도 가지고 있습니다. 이러한 것들은 하나님께서 부흥을 이루시는 모든 곳에 반드시 따라오는 내용입니다.  모든 부흥의 역사 속에서 우리는 하나님께서 깨끗하게 하시는 것과, 하나님의 뜻을 훼방하는 것들과 죄와 불순물을 제거하시는 것을 보게 됩니다.


상황이 어려울 때 그 상황만 을 바라보지 말고, 우리 자신을 돌아보면서 이렇게 질문하십시오. " 내영 영혼의 상태는 어떠한가? 하나님께서 나에게 뭐라고 말씀하시며, 나에게 어떤 일들을 행하고 계시는가? 내가 여기서 무슨 유익을 얻을 수 있는가?"

우리 자신을 돌아보고 겸손해진 후에 우리 자신을 하나님의 손에 맡기십시오. 그리고 이렇게 고백하십시오. "주여, 아무리 힘든 길이라도 나의 길이 아닌 주님의 길을 가게 하소서. 나의 단 한 가지 소원은 내 영혼이 바르게 되는 것입니다. 오직 진노 중에라도 긍휼을 잊지 마옵소서. 그러나 그 모든 것보다도 주님의 일을 계속 행하사 나의 영혼이 부흥하게 하시고, 나로 하여금 주님의 마음에 흡족한 자가 되게 하소서."   120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하지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먹을 것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나는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면 나의 구원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리로다 (하박국 3장)



- 세상의 답답한 상황들에 대한 하박국의 두려운 마음에서 시작하여 하나님에 대한 믿음으로 마쳐진 선지서 "하박국"


"기도"후 응답을 찾지 않는 것은 '하나님을 모욕'하는 일.. 나의 믿음이 얼마나 없는지 보여주는 것.. 내 믿음의 성격이 어떤지 고스란히 드러난다.


예전에 "부흥"은 교회가 커지는 것, 사람이 많아지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교회와 부서의 "부흥"을 위해서 수년간 기도해왔지만, 정작 그 원래 뜻인 "보존하고, 살아있게 하고, 깨끗하게 하고 교정하고 모든 악을 제거"하기 위해서는 그만큼 기도해 본 적도 없고 사모해 본 적도 기억에 없다. 

두주전쯤, 1000석의 본당에 1300여명이 한꺼번에 와서 보조의자까지 사이사이에 놓았지만 다 들어오질 못해서 로비에 앉아서 예배를 드렸지만, 목사님은 이런 일에 대해서는 "부흥"이라는 표현을 한번도 쓰지 않으셨다. 오히려 '개인의 심령의 부흥, 마음의 부흥'을 여전히 항상 강조하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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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빈의 십계명 강해(존 칼빈, 김광남 옮김, 비젼북)


오히려 우리는 그분이 적적한 방식으로 우리 곁으로 다가오실 때 우리 역시 그분을 향해 나아가야 합니다. 그리고 그렇게 나아간 자리에 머물러야 합니다.   54


우리처럼 연약한 존재는 그분의 영광을 감당할 수 없습니다.   59


간단히 말해 우리는 늘 악을 향해 기울어집니다. 선함의 가면을 쓰고 있을 때조차 그러합니다. 그로 인해 우리가 하나님을 섬기는 곳에조차 부패와 우상숭배가 넘칩니다.   65


그러므로 믿는 자들이 자기들이 좋아하는 것을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자유를 갖고 있다거나 모든 이가 자기들 입맛에 맞는 것을 추구할 수 있다는 주장은 더이상 옳지 않습니다.   75


비록 우리가 제아무리 순전하게 하나님을 섬긴다고 할지라도, 그분이 우리에게 어떤 보답을해주시는 것은 그분이 우리에게 무언가 빚을 지고 계셔서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만약 그분의 이런 은혜가 없다면, 틀림없이 우리 모두는 망하고 말 것입니다.  105


우리는 선지자 이사야의 말처럼 그 말씀 앞에서 두려워하며 떨어야 합니다. (사66:2,5)   132


그러므로 배은망덕해지지 맙시다.   162


우리가 하나님께 순종하는 삶을 살지 못하도록 가로막는 원흉은, 다름 아니라, 우리가 자신에게 얽매이는 것이 훨씬 더 유리하다는 우리의 확신입니다.  게다가 우리는 언제나  그것이 무엇이든, 우리에게 안락을 주는 것을 얻으려 하고, 또한 그것이 무엇이든 세상에 속한 모든 것을 즐기려 합니다.   171


우리 삶에는 두가지 중요한 요소가 있습니다. 하나는 하나님을 순전하게 섬기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각자의 의무를 다하며 다른 이들과 더불어 정직하고 의롭게 살아가는 것입니다.   183


그러므로 이제 우리는 하나님은 우리의 손과 발뿐 아니라 우리의 감정과 생각까지도 다스리고자 하신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219


정의와 경건은 분리될 수 없습니다.   237


"만약 너희가 고결하고 건전하지 않다면, 너희는 간음한 자들이나 다름없다. 너희가 사람들 앞에서 어떤 변명을 하든, 그리고 너희가 저지른 잘못이 얼마나 하찮은지와 상관없이, 나는 너희를 미워할 것이다. 너희는내게 악취를 풍기게 될 것이다. 내 앞에서 너희의 삶 전체가 더러운 것이 될 것이다."  239


이해하려고 하지 않는 자보다 어리석은 자는 없으며, 들으려고 하지 않는 자보다 가망없는 자는 없습니다. 그런데 바로 우리가 그런 짓을 합니다. 그리고 바로 그런 이유 때문에 우리는 주님이 우리의 눈앞에 그분의 영광을 드러내시더라도 그것을 알아보지 못합니다.   259


우리는 단순히 죄에 동의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만약 우리에게 그렇게 할 수 있는 수단이 있다면 즉시 그 악한 생각을 실천에 옮기기 때문입니다. 313


만약 우리가 자신이 누구인지를 신중하게 살핀다면, 우리는 우리 안에서 완전한 부패와 저주 받아 마땅한 악 외에는 아무것도 발견하지 못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우리 안에서 악을 향해 기울어지지 않은 생각을 단 하나도 찾아내지 못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324


"주님, 우리의 구원은 주님의 순전한 선하심과 은혜 때문입니다."   333


사실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명령하신 것을 지킬 만큼 완벽한 존재이기는 커녕 어디에서 시작해야 하는지조차 알지 못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를 고쳐 주시기 전까지는, 그리고 그분이 우리를 자신에게 이끄시고 우리에게 그렇게 할 마음을 주시기 전까지는, 단 한 가지의 좋은 생각도 하지 못합니다. 그것만이 아닙니다. 우리가 무언가 좋은 일을 하기 위해서는 그분이 우리에게 우리가 하고자 하는 것을 할 수 있는 능력을 허락해 주셔야 합니다.   392


사실, 설령 우리가 그분의 모든 율법을 이행할지라도, 도대체 그분이 그것으로 인해 무슨 유익을 얻으시겠습니까? 우리의 그런 일이 그분에게 무슨 대단한 것을 가져다 드리겠습니까? 아무것도 없습니다!   우리는 우리가 하나님께 순종할 경우 그분이 우리를 번성하게 하시는 것이 그분이 우리에게 어떤 빚을 지고 계시거나 우리에게 그럴 만한 자격이 있어서가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410


우리가 진정으로 하나님을 예배하고 섬길 수 있으려면 무엇보다도 하나님을 제대로 아는 것이 필요합니다.   우리가 우리에게 좋아보이는 것을 떠올린 후 "나는 하나님을 안다"라고 말해도 괜찮은 것입니까? 아닙니다, 결코 아닙니다! 오히려 하나님이 우리 곁으로 다가오셔서 우리에게 자신을 계시해 주셔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을 적절하게 알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오직 그분의 말씀을 통해 가르침을 받는 것뿐입니다.   434



-- 인간의 본성은 악하기만 할 뿐.

하나님은 그런 인간을 너무나 잘 알고 계셔서 가장 쉽게 하나님 자신이 어떤 분이신지를 계시하셨다. 인간은 스스로가 어떤지를 전혀 알지 못하는 존재이고, 하나님은 그렇지 않으시다. 인간을 너무도 잘 아실 뿐아니라 그런 인간을 사랑하셔서 친히 자신을 낮추고 낮추셨다. 그럴 필요가 전혀 없으신데도 낮추고 낮추셨다.


칼빈은 사람에 대해서, 정확히 말해서 '나'에 대해서 너무나 잘 알고 있다.

마치 내 속에 들어왔다가 나간 사람처럼 말이다..

어떻게 이런 하나님의 마음을 잘 헤아려서 "배은망덕"한 사람이 되지 않을 수 있을까?...  

오직 은혜. 

은혜가 없으면 언제라도 망하고 말 사람, 그리고 그것이 너무도 당연한 일인 사람.

그게 바로 나이다.



Posted by 지윤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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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생명의 길로 인도하시는 성령님을 의지하라.

   예수 그리스도를 온전히 소유하라

   매 순간 자아를 십자가에 못 박으라


2. 믿음의 참 근원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라.

   믿음의 손을 내밀어 예수그리스도를 취하라

   믿음은 말씀을 통해 자란다

   믿음은 하나님의 선물이다


3. 죄인에게 은혜를 베푸시는 하나님을 신뢰하라.

   회개하고 믿으라

   은혜의 말씀을입술로 고백하라

   자신의 부패함을 깨닫고 스스로를 낮추라

   믿음의 행위를 보이라


4. 약속을 주시고 그 약속을 이루시는 주님을 믿어라.

   말씀을 의지할 때 굳건한 믿음이 생긴다

   믿음 안에서 인내하라

   날마다 규칙적으로 신령한 양식을 섭취하라

   믿음은 감사를 낳고 감사는 믿음을 강화시킨다



"주님, 새날이 밝았습니다. 저는 여느 때와 다름없이 연약할 뿐입니다. 이 아침에 저를 찾아오셔서 주님으로 저를 채우시고, 저의 영혼에게 말씀하옵소서."   25


예수 그리스도께서 사람의 마음에 들어오시면 주님은 그 사람의 삶을 통해 자신을 드러내신다.   27


성령님은 그리스도를 십자가로 인도하셨고, 십자가는 그리스도와 우리를 성령님의 임재로 이끌며, 성령님은 다시 우리를 십자가로 이끄신다.  32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빌 2:5    34


자아를 부인하는 것은 인간의 내면에서 이루어지는 사역이고, 십자가를 지는 것은 그런 내면의 사역이 밖으로 드러나는 것이다.   40


믿음은 우리 자신의 비참함과 빈곤함을 인정하고, 무능력하고 무기력함을 고백하는 것이다. 믿음은 하나님의 은혜에 동의하고 굴복하고 순종하는 것이다.  51


하나님은 값없이 은혜를 베푸시는 것과 부의한 자를 긍휼히 여기시는 것을 다른 무엇보다도 영광스럽게 생각하신다. 하나님을 가장 슬프게 만드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가 우리를 위한 것이라는 사실을 의심하는 것, 곧 은혜의 위대함과 신실함을 불신하는 것이다.   84


회개, 곧 죄를 버리는 행위가 없이도 믿음을 가질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터무니없는 망상이다. 

아울러 믿음이 없이는 참 회개도 없다.   87


내가 믿나이다 나의 믿음 없는 것을 도와주소서  막 9:24   91


전적으로 무기력하다는 사실과 스스로 더 나아질 수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죄인은 하나님의 뜻에 자신을 온전히 내맡긴다.   115


겸손할수록 믿음은 더 커지고, 믿음이 클수록 겸손은 더 깊어진다. 이는 불변의 법칙이다.   116


오직 예수님이 잃어버린 자를 찾기 위해 세상에 오셨고, 주님이 구원하실 수 없을 정도로 타락한 사람은 없다는 확실한 진리만을 생각하라.    151


미쁘다 모든 사람이 받을 만한 이 말이여 그리스도 예수께서 죄인을구원하시려고 세상에 임하셨다 하였도다 죄인 중에 내가 괴수니라  딤전 1:15    154


인간의 본성은 항상 눈에 보이는 의식의 형태를 찾는 성향이 있다. 

"나아만이 노하여 물러가며 가로되 내 생각에는 저가 내게로 나아와 서서 그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고 당처 위에 손을 흔들어 문둥병을 고칠까 하였도다   왕하 5:11"   166


위대한 믿음을 원하고 그것을 얻기 위해 기도하는 사람은 많지만 정작 그런 믿음을 가진 사람은 거의 없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가장 주된 이유는 사람들이 믿음의 길을 걷기를 거부하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믿음의 길을 배우기를 두려워하거나 위대한 믿음을 얻는 방법에 대해 잘못 생각하고 있다.  171


"옳습니다. 주님, 저는 비참한 존재입니다. 제 마음에서 느껴지는 죄는 모두 사실입니다. 하지만 개들도 부스러기를 먹습니다 .주님과 같이 선하신 분이 베푸시는 은혜는 가장 비참한 죄인에게까지 흘러넘치나이다"   175


원기 왕성한 아침 시간과 한낮의 힘은 모두 세상의 일에 바치고 몸과 마음이 무기력해진 저녁시간에 하나님께 남아 있는 힘을 바치는 사람이 허다하다. 그러니 축복을 받지 못하는 것이 당연하다.  마음은 지치고, 정신도 흐릿하고,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감수성도 무디어졌으니 어찌 축복을 받을 수있단 말인가?   177


아침에 나로 주의 인자한 말씀을 듣게 하소서   시 143:8    178


하나님과 성령님은 믿음을 구하는 이의 마음에 말씀으로 찾아오신다.   187



-- 앤드류 머레이(Andrew Murray, 1828~1917)

"앤드류 머레이의 책은 무엇이든 좋습니다. 얼마든지 읽으십시오"라는 김남준 목사님의 말씀이 기억나서 다른 책을 빌리러 갔다가 얼른 집어든 책.

순수하게 하나님만 의지하고, 나에게서 조금도 믿을만한 구석이 없음을 깨닫게 하는 글.

내가 약할 때 오히려 주님의 능력이 강하게 역사하시는 진리를 깊이 체험하고 알고 있는 분.

인용된 말씀들 하나하나가 마음깊이 들어오게 하는 책.

"무엇이든 좋다"고 하셨는데, 이 분의 책이 참 많네.. 부지런히 찾아서 읽어야 할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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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하나님을 전혀 모른다. 

그래서 우리는 항상 이렇게 똑같다.    76


어떤 사실을 분명히 알기 때문에 생기는 믿음은 그냥 자연스럽게 삶 속에서 흘러나오고 삶의 모든 분야에서 자연스럽게 투영되기 마련이다.   82


과연 하나님의 나라가 무엇인가? 교회가 무엇인가? 그런 질문은 내게 더 이상 복잡하지 않다. 사람, 이 한 단어로 귀결된다고 할까? 자신의 이익을의한 거짓말과 사악함이 없이 나와 다르게 생각하는 사람들까지 포용하는 마음을 가진 사람 말이다. 그것이 하나님의 나라고, 교회다.     92


불편한 하나님(욥의 이야기)   96


나는 가끔 미국 텔레비전에서 하얀 옷을 입고 나와 수많은 사람에게 '삥'을 뜯는 베니 힌 같은 사람을 보면 웃음밖에 안나온다. 그런데 왜 그런 사람에게 사람들은 돈을 갖다 바치며 열광할까? 여러가지 이유가 있지만, 베니 힌은 어린 시절 환상속에서 만난 예수님 얘기를 자주 한다. 그 예수님이 자신을 목사로 만들었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이런 '구라'를 들으며 고개를 갸우뚱거리는 대신 그를 '신령한'사람으로 존경한다. 그게 현실이고, 그게 힘센 놈이, 기독교 식으로 하면 영빨 센놈이 이기는  이 세상의 법칙이다.    148


정말로 궁금하다. 왜 사람들은 자기의 생각을 '내 생각'이라고 있는 그대로 말하지 않고, '하나님의 뜻'이라는 말로 포장하는지 말이다.도대체 왜 그럴까?

나는 몇 가지 원인을 생각해 보았다. 

내가 원하는 것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이고, 내가 싫어하는 것은 하나님이 싫어하시는 것이라고 떠들어 대는 사람들의 첫 번째 유형은 매우 찌질하다는 점이다. ...

두번째로 이렇게 말하는 이유는, 내가 도용하는 그 이름과 존재가 결코 내 생각과 반대되는 의견을 내지 않을 것이라고 확신하기 때문이다.   ...

세 번째는 좀 복잡하다. 어쩌면 하나님의 뜻을 운운하는 대다수의 사람이 이에 속한다고 볼 수있다. 다름 아니라 정말로 자기의 뜻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확신, 확신, 또 확신하는 경우다. 신기하게도 우리는 주변에서 이런 사람들을 참 많이 본다.   152


'자기 부인'은 어떻게 가능한가? '자기 부인'은 어디에서 나오는가? 예수님을 정말 믿을 때 가능하다. 이를 테면, "아프리카가 아니라 미국이야말로 가장 예수 믿기 힘든 곳"이라고 고백했던 존 파이퍼 같은 사람에게서나 가능한 얘기다. "대한민국은 하나님이 복을 주어서 경제 대국이 되었고, 록펠러는 십일조를 열심히내서 부자가 되었으며, 예수 안믿는 나라는 다 지지리도 가난하다"라는 식의 아메바적 사고에 빠진 사람에게서는 결코 가능하려야 가능하지 않은 이야기다. "부는 복이 아니라 오히려 인간을 하나님에게서 멀게 하는 것이다"라는 사실을 진짜로 체험하는 사람에게서만 가능한 것이 자기 부인이다.    167


어쩌면 천 번 만 번을 쓰러져도 병이 낮지 않는다는 사실을 아는 것은 앞에서 그들을 쓰러뜨리는 김 목사뿐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김 목사는 결코 의식적으로 그런 생각을 하지 않는다. 그는 생각하지 않고 그저 쓰러뜨릴 뿐이다. 쓰러진 다음 일은 그의 소관이아니고 하늘의 소관이니까! 자신이 쓰러뜨리고 난 다음은 신의 영역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203


나는 우리 주변에 '실질적 목사 숭배자들'이 차고 넘친다고 생각한다. 비록 입으로는 목사가 아닌 하나님을 섬긴다고 하지만, 행동을 보면 목사를 섬기는 사람들, 하나님 앞에서 옳고 그름을 판단하려 하기보다는 목사의 눈치를 살피는데 급급한 사람들, 바로 그들이 '실질적 목사 숭배자들'이다.   222



- "생각"이라는 것을 하며 신앙에 대해서 성경에 대해서 하나님에 대해서 고민하고 고민하고 물어보고 질문하고 답을 구하려고 씨름한 저자. 이런 궁금증에 대해서 깊이 생각하고 싶어하지 않았고, 질문하는 것을 '나쁘게' 여겼는데, 그 모든게 결국 신앙과 하나님에 대한 무관심.

"생각"이라는 것을 좀 하고 살아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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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 심리학은 인간의 가장 긴급한 문제가 하나님의 진노로부터의 구원이 아니라 내면의 치료라고 생각한다.
(무의식의 세계로 대표되는 인간의 내면 세계 속에 숨어 있는 상처를 찾아내어 치료하는 것 그래서 결과적으로 이제 자신을 사랑하고 용납하게 되는 것.)  그러나 성경은 이렇게 말합니다. 
"자녀들아  이제 그의 안에 거하라 이는 주께서 나타내신바 되면 그가 강림하실 때에 우리로 담대함을 얻어 그 앞에서 부끄럽지 않게 하려 함이라"(요한1서 2:28)   100

기독교는 원천적으로 인간의 자존심이 들어설 자리가 없는 종교입니다. 하나님의 주권으로 시작해서 하나님 주권으로 끝나는 종교가 기독교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예수 그리스도의 공로를 믿음으로 구원받는 기독교는 스스로 무엇인가를 해내야 직성이 풀리는 인간의 본성과 전혀 맞지 않습니다. 이런 하나님 중심의 기독교가 자기 사랑과 자기 수용을 위해 하나님까지도 수단화시킬 준비가 되어 있는 심리학과 어떻게 조화를 이룰 수 있겠습니까?   118

기독교의 '죄'와 '구원'이 사라진 자리에 각종 그럴듯한 이름의 '병명'들만 들어가고 있습니다. 이제 모든 인간은 책임질 것이 전혀 없는 '피해자 또는 환자'일 뿐입니다. 피해자에게 무슨 구세주가 필요하고 구원이 필요합니까? 환자에게 필요한 것은 구원이 아닌 치료일 뿐입니다.   149

우리가 가장 경계해야 할 적은 노골적으로 기독교를 부정하는 이단이 아니라 가면을 쓰고 교회 안에 들어온 심리학이다.   150

"너희는 이것을 알라 말세에 고통하는 때가 이르러 사람들은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자랑하며 교만하여 비방하며 부모를 거역하며 감사하지 아니하며 거룩하지 아니하며(딤후 3:1~2)"   168   - 글자마다 너무 맞는 말씀. 뭐라 할 말이 없어진다.

'상한 감정의 치유(데이비스 시먼스, 두란노. 2000년)'  -  '자기사랑'에 대해서 잘못된 가르침.

우리가 자신을 바로 알게 될 때 우리는 자신에 대한 긍지에 차서 사랑하고 자랑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찬양하게 됩니다. 우리는 모두 우리 각자의 존재를 하나님께 빚지고 살고 있습니다. 내 스스로 숨쉬고 내 스스로 생명을유지하고 있는 자는 이 세상에 단 한 명도 없습니다. 우리는 '존재 자체를 빚진 자' 입니다. 여기에 무슨 자랑이 있을 수 있겠습니까?   178

당신이 하나님으로부터 사랑받는다고 느끼는 이유가 하나님께서 당신이 대단한 존재라고 느끼도록 해 주기 때문입니까, 아니면 당신이 하나님을 영원히 높여드리는 기쁨을 누리는 존재로 하나님이 당신을 자유하게 하셨다는 사실 때문입니까?  (존 파이퍼 목사)   182

내가 진짜 크리스천인지 아닌지를 알아볼 수 있는 방법 중의 하나는 바로 이것입니다 : 내가 나의 본성을 미워하고 있는지 아닌지의 여부 입니다. (마틴 로이드 존스 목사)  182

소위 말하는 메가 처치들이 미국 곳곳에서 속속 생겨나고 있습니다. 이것이 무엇을 의미합니까? 로버트 슐러의 가르침이 열매를 맺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주시는 부흥의 역사라고요? 사람이 모이기만 하면 그것이 부흥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의 눈에는 그렇게 비칠 것입니다.   197  
- "메가 처치"... 여러번 들어서 기억나는 말. "이 교회가 메가 처치가 될 것입니다... 메가 처치가 꿈입니다...메가 처치..." 소름이 돋을 정도로 무섭고 성경과는 절대 맞지 않는 것이지만 이것이 그런지조차 모를 뿐 아니라 알려고 하지 않고 잘못된 방향으로 전속력으로 달음질하는 교회.

조엘 오스틴 ' 긍정의 힘 ' , 두란노, 2005년,  
오스틴의 특징 가운데 하나는 모르는 부분에 대해서는 전혀 알려고 하지 않는 대신 자신이 아는 부분에 대한 확신은 매우 강하다는 점입니다. 부정적인 데라고는 전혀 없는 하나님, 그가 생각하는 하나님은 실로 단순하기 그지 없습니다. 하나님은 단순하신데 우리 인간이 괜히 신학이니 조직신학이니 성경신학이니 하는 말들로 하나님의 그 단순한 진리를 학문화시키며 복잡하게 만들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면에서 그는 상식적으로 볼 때 왜 하나님이 인간을 구원하시기 위해 그톨곡 복잡한 과정들, 선지자들의 예언, 예수님의 성육신, 십자가의 죽음, 부활, 초대 교회와 순교등을거치셨는지에 대해 아무런 관심이 없어 보입니다. 그는 그냥 '하나님은 긍정적이시며 우리를 축복하시기 위해 존재하실 뿐이다.'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니 오스틴이 자신의 설교에서 죄니 십자가니 하는 주제가 거의 등장하지 않는 것은 당연합니다. 그는 자신이 이해가 안 되는 부분에 대해서는 그냥 눈을 감아버리고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부분만 강조하기 때문입니다.  200
- 이것은 오스틴 뿐만이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생각과 다르거나 모르는 부분에 대해서는 알려고 하지 않았다. 그것이 "생명"과 관련된 일임에도 여전히 관심이 없을뿐만아니라 자신이 뭘 믿고 있는지 조차 모르고 그저 전진만 하고 있었다.

조엘 오스틴의 TV 인터뷰  226  
인터뷰만을 봐서는 조엘 오스틴은 아마도 다음 두가지 가운데 한 가지인 듯싶습니다. 자신이 믿는 것에 대해서 솔직하지 모샇거나 아니면 자기가 무엇을 믿고 있는지에 대해 자신도 잘 모르고 있거나!   227

당신이 누구인지, 그리고 당신이 지금 어떤 일을 하는 사람인지는 아무런 관계가 없습니다. 당신들이 남들 보기에 얼마나 훌륭해 보이는 사람인지 당신이 그럴듯한 선행들을 얼마나 하고 살고 있는지 아무런 관계가 없습니다. 어쩌면 당신은 평생 동안 교회 안에서 생활한 사람일지도 모릅니다. 아니, 지금도 교회에서 중요한  일들을 맡아 하고 있는 사람일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당신이 당신 자신의 본성이 죄악 되다는 사실을깨닫지 못했다면, 바울이 성경에서 말하듯이 당신이 '죄로 죽은 상태'라는 사실을 깨닫지 못했다면 당신은 예수 그리스도를 당신의 구세주로 알고 있는 사람이 아닙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가 자신의 구세주라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예수에 대해 사실은 아무것도 모르고 있는 사람입니다.   (마틴 로이드 존스 목사)   249
- 가장 무섭고 가장 슬픈 말씀...

"말한 대로 된다, 상상한 대로 된다" 고 주장하고 가르치는 성공의 방법들 263
하나님은 하나님의 뜻대로 일하시고 이루시는 분이시지 내가 말하고 생각한다고 해서 그것을 무조건 이루어 주시는 그런 하나님이 아닙니다.
과거 인간은 몸으로 돌을 날라서 바벨탑을 쌓았지만 이제는 말과 상상만으로 하나님께 도달하는 바벨탑을 쌓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305

우리는 성경 전체의 내용을 바르게 알려하기보다 ' 올해의 말씀'이니 '이 달의 말씀'이니 하는 이름을 붙여 성경 한두 구절을 마치 주문처럼 취급하려합니다. 이렇게 우리가 성경을 단편적이며 즉흥적으로 대하려고 하는 한 우리는 성경 말씀이 살아서 우리를 온전케 하는 능력을 결코 알지 못할 것입니다.  우리가 성경 말씀의 온전한 능력을 알지 못하면 우리는 우리의 귀를 즐겁게 만들어주는 세상의 소리에 더 귀를 기울이고, 세상의 이론에 따라갈 수밖에 없게 됩니다.   311
- 매년 초에 한번 뽑는 그 말씀으로 일년을 붙들고 살아가라고... 그 "뽑기"가 무슨 하나님의 계시인것처럼 과대포장하여 나눠주고, 서로 "임의대로"해석하였다. 안맞는 것은 짜맞추려고 애쓰고..  진리의 말씀에는 관심이 없었다.

"사람이 귀를 돌려 율법을 듣지 아니하면 그의 기도도 가증하니라(잠 28:9)"   312
- 말씀은 몰라도 기도는 잘 할 수 있다는 위험한 착각을 경고.  

성경의 충분성을 알기 위해 우리는 성경을 깊고 넓게 그리고 간절히 읽어야 한다.   320

"주의 법이 나의 즐거움이 되지 아니하였더면 내가 내 고난 중에 멸망하였으리이다 내가 주의 법도를 영원히 잊지 아니하오니 주께서 이것들 때문에 나를 살게 하심이니이다. (시 119:92~93)"


-- 옥성호 님의 부족한 기독교 3부작 시리즈 중 첫번째. 심리학에 물든 부족한 기독교.
옥한흠 목사님의 아들. 목사도 아니고 신학교를 나온 사람도 아니지만, 대체 얼마나 공부를 한건지... 도무지 반박을 할 수 없을 만큼 조목조목, 그리고 성경과 관련 서적, 인터뷰들까지 참고하여 안타까운 마음을 글로 펼쳤다.
전에 읽어보기도 하고 들어보기도 한 책들과 유명한 목사들의 이름이 등장하였고, 그 내용들에 대해서 "분별"이라는 것을 생각도 해보지 못했는데.. 읽는 내내 두려운 생각이 많이 들었고, 답답한 마음을 어찌 할 수가 없었다. 이 책에 강조된 내용들에 90%이상 부합한 교회에서 오랜 기간 있었고 그냥 있기만 한게 아니라 들은 것을 기억하고 배우고 가르치기까지 했었는데, 그 답답함은 정말...
할 수 없이 다음 시리즈까지 읽어봐야 할 거 같다. 
너무 모르고 너무 어긋나 있는 생각들을 이렇게라도 다시 바르게 세울 수 있으면 좋겠다..


Posted by 지윤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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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는 잠깐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니라" 야고보서 4:14    30


"내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친히 원수를 갚지 말고 진노하심에 맡기라 기록되었으되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고 주께서 말씀하시니라"(롬 12:19)"욕을 받으시되 대신욕하지 아니하시고 고난을 받으시되 위협하지 안니하시고 오직 공의로 심판하시는 자에게 부탁하시며"(벧전 2:23)    39


"하나님(의 손)이 또한 유다 사람들을 감동시키사 저희로 왕과 방백들이 여호와의 말씀대로 전한 명령을 일심으로 준행하게 하셨더라"(대하 30:12) 기도가 필요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오직 하나님만이 이루어져야 할 일들을 하실 수 있다.   45


"그러나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하신하나님의 은혜로라"(고전 15:10)   45


믿음은 나는 도움을 받을 자격이 전혀 없다는 자세로 그리스도께 도움을 구하는 영혼의 모습이다.   53


하나님께 무언가를 받아낼 게 있을 만큼 우리가 순종했다는 생각을해서는 안 된다. 하나님은 누구에게도 빚을 지실 수 없는 분이다.  57  - 날마다 긍휼을 구해야하는 이유


그러므로 작은 믿음이 우리를 그리스도의 모든 긍휼에 잇대어 준다는 사실을 기억하자.   58


아드레날린과 같은 우리의 의를 용서하옵소서.우리를 심장박동형 그리스도인으로 만들어주옵소서.   65   -아멘


당신의 몸은 조만간 무덤에 묻히고 이내 벌레들의 밥이 되고 말 것입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섬기며 그분을 영화롭게 해드리기 위해 살다가 죽을 수만 있다면, 제 몸이 식인종에게 먹히든 벌레들에게 먹히든 상관없습니다. 그날에 부활한 제 몸은 부활하신 우리 구원의 주님을 닮아 당신의 몸만큼이나 멋진 모습으로 일어날 테니까요. (선교사 존 페이튼. 1865년 남해제도의 부족들에게 복음을 전하러 가겠다고 결단했을 때 그곳에는 식인종이 있다고 한 성도가 반대하자..)   73  -이 사실을 죽을때까지 기억하였으면...


폭풍은 주님의 솜씨로 빚어진 승리물이다.

주님은 눈을 감을지라도 마음은 결코 닫지 않으신다. . . 

 (조지 허버트의 시, 존 뉴턴이 좋아했던 시인)


"이는 하나님이 거짓말을 하실 수 없는 이 두가지 변치 못할 사실을 인하여 앞에 있는 소망을 얻으려고 피하여 가는 우리로 큰 안위를 받게 하려 하심이라."   88


매일 과거를 아는 지식을 넓혀가라. 그리고 미래에 저지를지도 모르는 어리석은 행동으로부터 자신과 자녀들을 보호해줄 가장 휼륭한 수단인 과거를 아는 지식으로 스스로를 무장하라.   93당신은 떡을 사랑하는가, 아니면 하나님을 사랑하는가? 하난미을 소중히 여기며 고통 속에 담긴 그분의 선한 뜻을 신뢰하는가, 아니면 그분이 주시는 선물들을 더 소중히 여기며 그 선물들을 빼앗겼을 때 화를 내고 마는가?    109  -이것이 나. .


우리가 당하는 시련은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우리가 세상을 얼마나 사랑하고 있는지 보여준다. 고통을 경험하면서 우리 안에 숨겨져 있던 우상숭배가 드러나는 것이다.   110


순례자의 마음   131

순례자는 그 목적에 흔들림이 없다.

순례자는 이 세상의 것들을 꽉 잡아서는 안된다. 

순례자는 닮고자 노력하는 대상을 닮아간다.

순례자는 하나님이 아닌 그 무엇으로도 만족을 얻을 수 없다.

순례자는 여행 종착지에 도달했을 때 슬퍼하지 않는다. 

순례자는 자신이 추구하는 바에 대해 깊이 생각한다.

순례자는 함께 여행한다.      (조나단 에드워즈의 설교 중)


"모든 사람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나타나 우리를 양육하시되 경건치 않은 것과 이 세상 정욕을 다 버리고 근신함과 의로움과 경건함으로 이 세상에 살고"(딛 2:11-12)

그러므로 절제를 위한 싸움은 믿음의 싸움이다.  145


세상의 소금은 썩어가는 고기를 비웃지 않는다. 할 수 있는 곳에서 보호하며 짜게 만든다. 그리고 그렇게 할 수 없는 곳에서는눈물을 흘린다. 세상의 빛은 귀찮을 것을 떼어버려서 시원하다는 듯이 불경건한 어두움을 버리고 뒤로 물러나지 않는다. 빛을 비추기 위해 노력하지만 쥐고 흔들지는 않는다.  163


나그네 된 그리스도인들의 위대함은 성공에 있지 않고 섬김에 있다.   164


"사랑아, 전능한 능력을 가지고 내 백성들에게로 가라!"   170

Posted by 지윤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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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방언에 대한 논쟁과 토론에는 관심 없다. 만일 당신 삶의 모든 것들이 족하다면, 하나님 안에서그저 행복하고 만족하다면, 그대로 살기 바라다. 그러나 하나님께 대해 배고프다면, 목마르다면, 하나님의 기름 부음과 성령의 능력을 더욱더 충만하게 받으라고 촉구하는 바이다.... 일반적으로 보았을 때에 규칙적으로 방언을 하지 않는 사람들은 다른 은사도 받지 못한다... 내가 보기에 성령세례를 받아 방언을 하는 것이 다른 은사들로 향하는 출입문인 것 같다."(마헤쉬 차브다의 '방언 체험' 중에서)

  이 사람(마헤쉬 차브다)은 성경이 뭐라고 하는지는 별 관심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성경의 가르침보다 훨씬 중요한것은 내가 지금 확실히 느끼는 체험이기 때문입니다.   27

 

오순절을 기점으로 사도들을 통해 이 각각의 독특한 집단에게 부어주신 사도행전 방언의 역사는 오늘날 '달라고 떼쓰고 기도하면' 누구에게나 주어지는 그런 방언이 전혀 아니었습니다.  88

 

고린도 시의 중앙 높은 곳에 위치한 "아프로디테(비너스)"신전에서의 이방 숭배의식과 거기에 나타난 '방언'(지금 우리가 알고 말하는 그 방언과 흡사한, 게다가 통역까지도 하는)  96,97

 

사도행전 2장 4절에서 "방언"으로 번역된 단어의 헬라어는 '글로사(glossa)'인데, 이 단어는 신약에서 50번 사용되었는데, 16번은 신체기관의 "혀", 단 한번은 2장 3절의 "불의 혀같이 갈라진 혀들", 33번은 '언어'를 의미한다. 성경에서 단 한번도 방언이 단지 하나님만이 이해하시는 하늘의 언어를 뜻한 적이 없다. 그 단어는 결코 신비한 것이나 인간에게 알려지지 않은 것을 의미한 적이 없다.   110

 

내가 아는 사람 중에 아프리카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한 선교사의 아들이 있다. 그가 한번은 방언으로 집회는 교회에 참석했다.  그는 거기서 자신이 알고 있는 아프리카어로 '주기도문'을 외웠다. 그러자 갑자기 근처에 있던 방언 통역을 받은 사람이 벌떡 일어나서이렇게 말했다. "여러분, 지금 이 형제가 방언으로 곧 재림하실 예수님에 대해 증거하고 있습니다." 라고    186

 

오늘날 방언을 보고 그 속에서 방언을 인정하는 카슨 교수와 같은 사람은 고민할 수밖에 없습니다. 저는 카슨의 그 고민이 귀하게 느껴집니다. 성경을 정직하게 본다면 당연한 결과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런 고민 자체가 없는 사람이 너무 많습니다. 왜 그들은 고민이 없습니까? 방언이 언어임을 확신해서그런가요? 아니지요. 아예 말씀이 무어라고 가르치는 데는 관심 자체가 없기 때문입니다.   187

 

"만일 누구든지 자기를 선지자나 혹은 신령한 자로 생각학든 내가 너희에게 편지하는이 글이 주의 명령인 줄 알라"  (고전 14:37)     197

 

우리가 돌아가야 할 곳은 말씀입니다. 말씀은 방언에 대해 분명하게 알려 주고 있습니다. 남은 문제는 우리의 순종입니다. 말씀이 아닌 체험이 나의 판단을 결정하는 시금석이 될 때 우리에게 더 이상 이성적인 대화가 들어설 자리는 없습니다.    201

 

바울은 교린도 교회의 교인들이 은사의 본질을 통해 '교회의 본질'을 깨닫기 원했습니다.  '교회 공동체'의 본질을 그들이 알기를 원했습니다.    203

 

오늘날의 방언은 결코 하늘의 언어가 아닙니다. 그 방언이 아버지의 심장으로 들어가는 직통도로는 더더욱 아닙니다. 왜냐하면 오늘의 방언은 성경의 방언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나도 내가 무슨 소리를 하는지 모르는 기도를 통해 우리는 하나님께 나아갈 수 없습니다.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질 뿐입니다. 말씀으로부터 멀어질 뿐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전인격을 원하십니다. 우리의 존재 전부를 원하십니다.     205

 

"우선 은사주의자들에게는 자신들 나름의 신조와 신앙고백이라고 내세울 만한 점이 전혀 없다는 것부터 지적해야겠다. 신학적으로 그들은 사도들의 체험이나 전통적인 '기적 신앙'외에는 제시할 것이 없는 원시인에 가깝다.... 그들은 신학적인 사색에는 별로 흥미가 없다. 그런 것들이 이 운동의 진정한 관심사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의 성경 해석은 유치할 정도로 단순하다. 게다가 이 운동 안에서 조차 은사 체험에 대해 신학적인 일치를 보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우려하거나, 그런 일에 괘념하는 사람이 거의 없는 듯하다."   232

 

방언이라는 체험에 빠지면 빠질수록 우리는 성경에서 멀어집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드려야 할 기도는 우리의 마음과 생각을 담는 전인격적인 기도여야 합니다.   234

 

기독교의 진리는 신비한 체험을 찾아 이곳 저곳 헤매는 종교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235

 

사도들은 이렇게 애걸하지도 않았고 실패에 대해 변명한 적도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오늘날 은사 받았다는 수많은 사람에게는 너무 많은 변명이 필요합니다.  237

 

인간은 신비주의적 체험에 한없이 약합니다. 뭔가 내가 이해할 수 없고 만질 수 없는 그 무엇에 그냥 무너지고 마는 존재입니다. 그런데 이런 인간에게 하나님은 인간이 되어 오셨습니다. 우리가 만질 수있고 볼 수있는 그런 평범한 인간으로 오셨습니다.  기독교는 바로 이 '신비하지 않은' 예수님을 믿는 종교입니다.  이 예수님을 기록한 말씀을 통해 진리를 깨닫는 종교입니다. 보고 만질 수있는 예수를 기록한 성경을 성령 하나님이 우리로 하여금 깨닫게 하심으로 믿는 종교입니다.  말씀을 통해 모든 인류가 그토록 고민하고 애태우는 하나님의 존재를 확인하도록 하는 종교입니다.   240

 

오늘날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자꾸 새로운 계시를 갈구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미 우리에게 '충분하게' 주어진 계시를 바로 개닫는 것입니다. 사놓은 책은 안보면서 자꾸 새 책만 사서 모으려고 하면 되겠습니까?   242

 

성령은 완성된 계시를 통해 우리를 인도하십니다. 우리가 흔히 교회에서 듣는 '성령님, 어서 오세요. 성령님, 가지 마세요.'등의 구호가 얼마나 비성경적인 말인지 깨달아야 합니다. 성령은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그 순간부터 항상 우리 안에 계십니다. 단 한순간도 떠나신 적이 없습니다.   243

 

우리에게 진짜 필요한 것은 하늘의 언어가 아니라 예수님을 더 알아가고 닮기 위한 말씀입니다. 약함 속에서 도리어 더 빛나는 복음의 능력입니다.   245

 

 

 

- 거룩함은 +(더하기)가 아니라 -(빼기)이다. 하나님은 그렇게 가르치시고 이끄신다.

 

1부 사도행전의 방언에서는 오순절사건, 사마리아인의 회심사건, 고넬료의 회심사건, 에베소 세례요한 제자들의 회심사건 속에 나타난 방언들을 통해서 사도행전의 방언이 예언성취를 통한 구속사의 완성을 증명했다. 

2부 고린도전서의 방언에서는 고린도 교회의 심각한 은사 사용 문제들, 특히 방언에 대한 문제를 통해서 방언의 본질과 역할을 분명하게 증명하였는데, 방언을 포함한 은사의 목적이 '개인'의 유익이 아니라 '교회'의 유익을 위함인 것을 설명했다.

3부에서는 오늘날의 방언이 성경의 방언이 아닌 이유와 그 위험들을 설명하였다.

 

방언 지지자의 입장의 대표로 특히 '마헤쉬 차브다'의 책과 내용을 많이 인용하였는데 그 이름은 분명히 기억이 나고, 또 몇가지이지만 그가 했던 말들을 나도 예전의 교회에서 들었지만, 정말 '그것이 그런가' 하고 '상고'해 본 적은 한번도 없었다. 그것을 단순히 좋게 받아들이며 믿었다기 보다는 그것이 사실인지 아닌지에 관심이 없었다는 표현이 더 옳을 듯하다.

 

이 정도의 요약과 정리로 책에서 받은 느낌을 모두 보존하기는 힘든 것이 사실이지만, 읽는 내내 나의 "무지함"과 진리에 대한 "무관심함"에 답답함, 한숨, 한심함... 등 여러가지 복잡한 마음이 들었고, 그와 함께 분명하게 성령님은 여전히 말씀가운데  살아서 역사하시고 깨닫게 하시는 "기적적인 사역"을 하신다는 것을 알았다. 놀라운 일은 교회를 옮긴 이후, 일부러 그런 것은 아닌 것 같은데, 나와 아내는 방언기도 자체를 하지 않고 있었다. 

 

성령의 하시는 사역중 가장 큰 사역은 어떤 기적이나 은사가 아닌 "깨닫게 하심"이라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없고, 그 깨닫게 하심은 어떤 기적보다 더 초자연적인 일이라고 생각한다.

 

기적을 행하신 하나님께 감사드릴 수밖에 없다.

Posted by 지윤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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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를 계속 죽이지 않는다면 죄가 당신을 죽일 것이다.  28

 

믿음의 성인들은 죄로부터 해방되 후에도 죄로부터 피할 수 있는 도피처는 없으며, 죄와 끊임없이 싸워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33

 

따라서 매일매일 죄를 죽이는 삶을 살지 않는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선하심, 자비, 지혜, 은혜, 그리고 그 분의 사랑에 정면으로 도전해서 죄를 짓는 것이다.   37

 

성령이 어떻게 죄를 죽이는가?

첫째, 성령은 우리의 마음을 은혜로 넘치게 하고 육체의 열매에 반하는 열매들을 풍성하게 맺게 함으로써 죄를 이기게 마든다.

둘째, 성령은 실제적인 효력을 발휘하여 죄의 뿌리와 습관을 무력화시키고 파괴하고 제거한다.

셋째, 성령은 믿음으로 성도의 마음속에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가져다주어 우리로 하여금 그리스도의 죽음과 그분의 고난에 동참케 한다. 54

 

죄는 우리의 생각을 사로잡아 하나님의 사랑을 내쫓고 죄를 짓도록 부추기고, 영혼에게 다른 것을 사모하도록 만든다. 그 결과 영혼은 하나님게 똑바로 진실하게 "당신은 나의 기업이니다" 라고 말할 수 없게 된다.   64

 

죄를 죽이지 않는다면 신실할 수가 없다. 죄를 죽이는 사람만이 가장 확실한 신실함의 증거를 가질 수 있다.  68

 

죄를 죽이기 위한 9가지 방법    125

방법 1. 정욕에 동반되는 여러 위험한 징후들을 살펴라.

고질적 습관

죄와 타협하려는 마음

죄의 유혹에 동조하는 태도

죄와 싸우지 않고 논쟁하는 자세

징계의 심판에 대한 무감각

죄를 교정하려는 하나님을 방해하는 것

 

"내가 무엇을 했는가? 내가 어떻게 그 큰 사랑과 자비, 보혈, 은혜를 경멸하고 짓밟았는가!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과 아들 하나님의 피, 그리고 성령의 은혜에 대한 보답이 이런 것이었는가? 결국 이런 식으로 나는 주님에게 보상했는가? 그리스도의 죽음을 통해 씻음을 받고 성령이 내주하게 된 나의 마음을 이런 식으로 내가 더렵혔단 말인가? 이 더러운 먼지에서 나는 벗어날 수 있는가? 어떻게 그 분 앞에서 뻔뻔스레 머리를 들 수있는가? 그분과의 교제를 너무나 소홀히 다루어 나의 정욕으로 인해 나의 마음속에서 그분의 설 자리가 거의 사라졌던 것은 아닌가? 이 큰 구원을 무시한 내가 어떻게 심판을 회피할 수 있단 말인가? 이제 나는 주님께 무엇이라고 말할 수 있는가? 마음 속에 정욕을 품기위해서 사랑, 자비, 은혜, 선하심, 평화, 기쁨, 위로등을 모두 저버렸고 그것을 하찮은 것으로 여기고 말았다. 하나님 아버지의 도움을 받았던 내가 오히려 그분의 얼굴 앞에서 그분을 노하게 만들었단 말인가? 나의 영혼이 씻김을 받았던 이유가 단지 새로운 죄를 짓기 위함이었는가? 그리스도의 죽음의 목적을 훼손 시키는 행동들을 나는 계속 할 것인가? 나의 구속의 날까지 인치심을 주는 성령을 매일 근심시킬 것인가?"  160

 

금식이나 철야기도와 같은 수단들이 그 자체에 어떤 마술적인 힘이 있기 때문에 죄를 죽일 수있다고 생각하지 말라. 정말 그러한 효과가 있다면 이 세상의 중생하지 않은사람도 성령의 도움 없이 죄를 죽일 수있게 된다. 167

 

성도의 탁월한 위치는 그가 많은 진리를 알고 있다는 데에 있는 것이 아니라 비록 짧은 이해이지만 그 진리를 구원의 빛, 즉 하나님의 영의 빛 속에서 바라본다는 데에 있다. 그래서 그것을 통해 성도는 하나님과 교제를 나누게 되고 더 이상 호기심 어린생각을 하지 않게 된다.   186

 

그러므로 하나님의 임재 앞에서 당신의 비천함을 알고 당신의 천성이 그분의 본질적인 영광을 이해하기에는 너무나 왜소하다는 사실을항상 자각하라.  188

 

"온유한 자를 공의로 지도하심이여 온유한 자에게 그 도를 가르치시리로다(시 25:9)"라는 약속이  있고, 그 외에도 하나님은 당신의 실수를 계속 좌시하지 않기 때문이다.   200

 

회개케 한다는 것은 죄를 죽이게 한다는 의미이다. 죄의 죽임이 없는 회개란 있을 수 없다.   215

 

그러므로 영혼의 믿음을 단련시키기 위해 당신은 다음과 같이 고백해야 한다.  " 나는 연약하고 가련하며 물과 같이 흔들거리는 피조물이다. 나는 결코 뛰어난 존재가 아니며 나의 부패함은 너무나 커서 영혼을 거의 파멸시킬 정도이지만 나는 그것에 대해 어찌하지 못한다. 나의 영혼은 불에 탄 땅이 되어 용의 거처로 변해 있다. 그 동안 나는 수많은 약속을 깼다. 그래서 나의 많은 맹세들은 무용지물로 변했다. 나는 스스로 승리했다고 여기고 구원도 받았다고 확신했다. 하지만 나는 속았다. 이제 분명하게 볼 수 있는 것은 탁월한 외부의 도움이 없다면 결국 나는 실패한 자가 되어 나의 죄로 인해 하나님을 완전히 포기 하게 될 것이라는 사실이다."  216

 

죄를 죽이기 위한 성령의 사역  230

첫째, 성령만이 죄를 깨닫게 해준다.

둘째, 성령만이 풍성한 은혜를 보여준다. 

셋째, 성령만이 우리를 붙들어 준다. 

넷째, 성령만이 십자가의 능력을 갖게 해준다.

다섯째, 성령은 성화의 저자이자 완성자이다.

여섯째, 성령만이 기도로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도록 도와준다. 

Posted by 지윤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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