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은 우리가 가지고 있는 어떤 아름다움이나 가능성에 근거하지 않습니다.   27.


기독교는 짧은 인생을 사는 사람들이 하나님께 예쁜 짓 해야 좋아하시고 복 준다는 그런 샤머니즘 종교가 아닙니다. 기독교의 생명은 그런 데 있지 않습니다.   52


이방종교의 샤머니즘처럼 하나님께 예쁜 짓을 해서 복을 타 내려는 행위는 참되고 진실한 성도들에게는 있을 수 없습니다.  186


질그릇과 같이 깨어지기 쉬운 사람 하나를 위해 독생자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이기를 주저하지 않는 하나님이 주신 복음의 은혜가 구원입니다. 이런 영광이 우리 속에 있는데 어떻게 예수를 믿으면 자신이 잘되고 ,병들면 낫고 , 내 자식, 손자 손녀까지 잘되는 것이 복음이고 기독교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까?  그것은 샤머니즘이고 세상 종교들이 말하는 것입니다.  201


사랑하는 여러분, 신앙생활 수십 년을 해도 자신을 나쁜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면, 죄송하지만 아직 성도가 아닙니다.  207


기독교의 생명은 우리를 생각하게 만드는 데 있습니다. 우리가 깨닫고 생각하게 만드는 데 기독교의 모든 영광이 들어이 있습니다.  214


고난없는 성도의 삶은 없습니다. 성도에게는 반드시 고난이 있습니다.  301


그러나 여러분, 교회는 미쳐야 되는 곳입니다. 교회는 세상을 사는 우리에게 도움을 주는 공동체가 아닙니다. 교회는 생명을 걸고 모든 것을 아낌없이 다 드려도 포기할 수 없는 진리의 공동체입니다.   302


그동안 조국교회는 사람들이 원하는 것, 좋아하는 것을 복음이라는 이름으로 가르치고 싶어했습니다. 에수를 믿어서 돈 벌고 병 낫고, 명성이 높아지고, 만사가 형통할 것이라고 말하고 싶어했습니다.  347


그러나 성경이 말하는 “신령하다” 혹은 “신앙이 잘 자라고 있다”는 것은 개인적인 은사 체험이나 신비 체험으로 확인되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들과의 관계를 어떻게 맺는가에 의해 판별되고 드러납니다.  406


사랑하는 것은 종노릇하는 것입니다. 사랑은 베풀어 주는 것이 아닙니다. 사랑은 종이 되지 않으면 할 수 가 없는 것입니다.   410


그런데 사람들은 어리석게도 스스로를 속입니다. 스스로를 속이는 것은 죄를 지은 인생의 불행한 모습입니다.  426

우리가 예수를 믿는다는 말은 주님 안에서 이미 우리의 삶이 끝났다는 말입니다. 430


하나님은 우리의 소유로 우리를 평가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허락하신 것을 어떻게 사용했느냐에 따라 평가하십니다.  431


‘예수 그리스도를 인격적으로 만나는게 뭘까?’라고 고민을 하니까? 어떤 성도가 조언합니다. “체험을 하면 돼, 방언이 터지는 체험을 하면 돼.” 예수께서 말씀하십니다.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떠나가라.”  486



Posted by 지윤이네
,

2015.4.19  주일. 시편23편 강해 (8)   여호와의 집에서 영원히

 

시편 23:6

나의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정녕 나를 따르리니 내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거하리로다I. 본문해설

 

시인은 많은 은혜를 입고,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를 노래합니다.

 

 

II.  “나의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정녕 나를 따르리니”

 

A. “따르리니”

이것은 ‘추격한다’는 의미입니다. 마치 범죄자를 추격하거나 전투기를 쫓아가서 맞추고야마는 미사일같은 것입니다. 시인은 자신이 어디에 있든지 하나님이 자신과 함께 하신다는 것, 선하심과 인자하심으로 자신을 ‘추격’하신다는 것을 깨달은 것입니다.

 

B. “선하심”

하나님의 선하신 성품때문에 피조물에게 선하게 대하시는 호의를 말합니다.

세상은 선하고 아름다와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하나님이 선하신데 왜 세상이 이 모양이냐며 무신론을 주장하기도 하지만 이 세상이 선하고 아름다와야 한다는 전제가 잘못된 것입니다. 

 

세월호 1주기.

작년 세월호 사태 후, 아모스서를 설교. ‘거지같은 나라’라는 표현.

“권세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지 않음이 없나니 모든 권세는 하나님께서 정하신 바라 . 롬 13:1” , 이 말씀만 기억하십니까? 그 다음을 보십시오.

“다스리는 자들은 선한 일에 대하여 두려움이 되지 않고 악한 일에 대하여 되나니 네가 권세를 두려워하지 아니하려느냐 선을 행하라 그리하면 그에게 칭찬을 받으리라.  롬 13:3”

이런 나라에 권세에 대해서 그렇게 복종하고 따르라는 것입니다.

 

‘국가란 무엇인가’ 시리즈에 대한 설교를 하고 싶습니다.

 

교회의 영광스런 권세에는 쉽게 굴복하지 않는 사람들이 말도 되지 않는 국가의 권세에는 왜 그렇게 쉽게 굴복할 마음을 갖습니까?

 

히틀러가 독일을 통치할 때 93%의 지지를 받았는데 이것은 어떤 국가에서도 발견된 적이 없었고, 지금도 그것이 남은 것은 일본입니다. 

 

세월호에서 죽은 아이들은 비록 그들이 죄가 있었을 지라도 그들의 죄때문에 죽은 것이 아닙니다.

나는 목사이지만 그들보다 의롭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만일 사람이 자기 죄 때문에 그렇게 죽는다면 남아있을 사람이 누가 있겠습니까?

 

정의로운 나라가 되지 못한 것은, 비록 그것이 어려운 상황일지라도 국가는 그 책임을 피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여기에 피 끓는 분노를 일으켜야하는 것입니다. 

설령 잡혀가더라도 말입니다. 그게 그리스도인들입니다. 

 

국가는 하나님이 직접 세우신 것이 아니라 인간들이 하겠다고 하니 하나님께서 하라고 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국가는 교회와 같은 권위를 가지지 못합니다. 국가를 감시하고 잘못했을 때에는 회초리를 들 수 있어야합니다. 그것이 용기입니다. 그것이 그리스도인입니다.

 

C. “인자하심” (헤세드)

 

존재하지도 않는 신에게 개거품을 물며 욕을 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렇게 욕을 했는데도 하나님께서 참으시는 것은 바로 하나님이 인자하시게 살아계시다는 반증입니다.

 

이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일평생 시인을 추격할 것이다, 그렇게 강하게 따를 것이라는 것을 시인은 깨달은 것입니다. 

 

 

III.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살겠습니다.A. 여호와의 집

완전하고 아름다운 성전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이 때는 성막이 있을 시대였습니다.

당시의 이스라엘이 가지고 있던 성전신앙은, 철저한 성전 중심의 신앙이었습니다. 

개인의 어려움, 국가이 어려움이 있을 때마다, 혹은 개인적인 희노애락과 크고 작은 소원들까지도 이 성전을 찾아 드려졌습니다.  그들에게 여호와의 집은 이런 것이었습니다. 그들의 인생을 함께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신약의 교회가 신자들에게 무엇이 될것인지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교회는 신자에게 ‘어머니’인 것입니다.

 

“교회를 어머니라고 부를 수 없는 자는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를 수 없다”

 

하나님을 모르면 그리스도를 모르고, 그리스도를 모르면 교회를 모르고, 믿는다는 게 뭔지, 세계와 교회가 무슨 상관이 있는지 아무것도 모르면서 무지하게 살아가게 됩니다. 

 

B. 영원히 거하리로다

신자는 교회와 떨어질 수 없는 신앙을 가진 사람입니다. 

 

보이지 않는 그리스도에 대한 진실한 사랑은 보이는 교회의 지평에서 입증되어야 합니다.

그리스도를 사랑한다고 하면서 교회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거짓말을 하는 것입니다. 

사람은 알 수 없지만 하나님은 아십니다.

 

바람처럼 스치듯 지나가며 사는 것이 인생입니다. 이슬과 같은 것이 인생입니다. 

 

“인생의 황혼이 깃들어서 이 땅에 수고가 끝날 때에

주님을 섬기다 평안히 가리라 사랑의 주 내 주님께”

 

“큰 은혜를 주신 내 예수시니 이전보다 더욱 사랑합니다”

 

 

IV. 적용과 결론

 

잘 사십시오. 

바람같이 지나는 인생의 끝에, 여러분들이 얻기위해 그렇게 피땀을 흘리고 몸부림친 모든 것은 죽는 순간 여러분들과 함께 있지 않다는 것을 명심하십시오.

 

여러분이 태어났을 때 어머니와 아버지가 있으셨습니다. 그분들이 좋은 분도 있으셨겠지만 그렇지 못한 분들도 있을 수 있습니다. 여러분들이 두 번째 태어났을 때, 어머니는 교회였고, 아버지는 하나님이셨습니다. 

거짓교회는 여러분들에게 상처를 주었을 수도 있지만 참 교회는 여러분들을 사랑하지 않은 적도 없고 버린 적도 없었습니다. 그러니, 교회가 아닌 것들 때문에 받은 상처로 인해서 참 교회인 어머니를 욕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이 여러분의 인생에 무엇을 잘못하셨습니까? 언제나 거기 계셔서 선하게 인도하시고, 우리가 행한 악도 선하게 바꾸어 주셨습니다. 모든 사람이 우리를 미운 물건으로 여기고 떠났어도 하나님은 언제나 거기 계셔서 우리를 긍휼히 여기셨습니다. 

 

지나간 날들만 빨리 지나갔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우리 앞에 있는 날들도 그 지나간 날들처럼 속히 지나갈 날들입니다. 그러므로 잘 사는 여러분이 되시길 바랍니다. 그리스도의 교회를 진심으로 사랑하고 주님을 나의 목자로 섬기며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자신 안에 채우며 살아가야하는 것입니다. 

Posted by 지윤이네
,

2015.4.12. 주일. 시편 23편 강해(7)    기름을 부어주심

 

시편 23:5주께서 내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차려 주시고 기름을 내 머리에 부으셨으니 내 잔이 넘치나이다I. 본문해설

 

시인의 영혼의 빈 잔이 넘치는 이유가 원수 앞에서 상을 차려주시는 것과, 머리에 기름을 부으심이라고 고백을 합니다.

 

 

II. 기름부음의 의미

 

A. 구약의 3직과 기름부음

작은 민족인 이스라엘을 택해서 하나님의 경륜을 이루게 하시고, 이들을 이끌 세 가지 직임을 주셨는데, 왕과 선지자와 제사장입니다. 왕은 법과 통치로, 선지자는 계시의 말씀으로 하나님의 뜻을 전하고 모세의 율법을 해설하며, 제사장은 죄된 이스라엘이 하나님께로 나아가는 중보의 역할을 하게 하였습니다. 

 

올리브기름으로 그들에게 기름을 부어주셔서 세우시는데 실제로 그들에게 성령의 기름부음으로 그 사명들을 감당하게 하셨습니다. 

 

구약에서는 사명 감당을 위해서 개인을 선택하시고 기름부어서 그 일을 감당하게 하시고 그 사명이 끝나면 성령을 다시 거두어 가셨습니다. 

 

신약에서는 우리와 그리스도를 연합시키시고 보혜사로서 도우시고 간구하시고 인도하십니다. 

 

B. 신약의 기름부음

성령의 주요 사명은 그리스도를 생각나게 하시고 가르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자가 낳은 사람중에서 세례요한보다 큰 이가 없고, 천국에서는 아무리 작은 자라도 세례요한보다 크다고 하셨는데, 이것이 성령시대의 축복을 말씀한 것이었습니다. 

 

이 다윗의 고통스런 삶을 극복하게 하는 힘은 성령의 충만한 기름부음이었습니다. 

 

성령의 체험은 사람마다 다를 수 있고 때마다 다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기름부음의 효과는 모든 개인적인 소원이 사라지고 그리스도를 어떻게 더 사랑하고 하나님처럼 순전하고 거룩할 수 있을까에 대해서만 갈망하게 됩니다. 이것이 완전한 행복이고 완전한 기쁨인 것입니다. 

 

맑은 생수로 해갈을 해본 사람은 아무리 목이 말라도 아무 구정물이나 마시지 않는 법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불신자들이 알지 못하는 행복의 샘물을 맛 본 사람들입니다. 

 

“나에게 한 나라의 임금이 되라고 해도 나는 그런 사소한 일에 마음을 쓸 시간이 없다.” 찰스 스펄젼

 

 

III. 적용과 결론

 

여러분은 누구십니까? 행복하십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이 행복한 삶에 도움이 되십니까? 

우리가 바라는 모든 것이 이루어져도 완전한 행복을 주지는 못합니다. 

완전한 행복은 하나님 자신이십니다. 

 

성령의 충만한 기름부음없이 “내 잔이 넘치나이다”라고 고백할 사람은 없습니다. 

 

여러분은 죄를 버리고 성결해지고 성령의 충만함을 갈망하고 계십니까?

 

살아가고 싶은 삶을 살아갈 힘이 없는 것이 “영혼의 빈잔”입니다. 

주님은 누구든지 그 보혈의 샘에 와서 샘을 마시는 자에게 그것을 주시기로 약속하셨습니다.

 

----------------------------------

 

흔하지 않은, 목사님의 성령체험 이야기.

두 번의 성령체험을 말씀하셨고, 각각 다른 경험을 하셨는데, 중요한 핵심은 그 체험이 어떻게 느껴졌는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체험으로 온 효과였다.

성령의  충만을 체험하고 나서, 개인적인 간절한 소원이나 기도제목은 사라지고 하나님 처럼 순전하게되고, 거룩하게 되는 것이 최고의 소원이 되었다는 것.

성령의 불을 받고, 능력을 받고, 남들이 하지 못한 신기하고 신비한 체험을 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체험으로, 그렇게 잊지 못할 정도로 성령의 충만을 받은 경험이 있었다면 그 다음이 과연 무엇이었는가가 중요한 것이다. 

 

예전에, 유초등부에서 성경학교 행사 중에서 기름부음에 관련된 행사를 하고, 마지막에 아이들을 안수한 시간이 있었는데, 다 마치고 나서 담당 교역자가 아이들에게 뭔가 느낀 것이 있었는지, 어땠는지를 물어보았다. 몇몇 아이들은 손에 전기가 흐르는 것 처럼 찌릿한 느낌이 있었다고 하고, 어떤 아이들은 뭔가 바람같은 것이 느껴졌다고 하기도 했다. 그리고 그게 끝이었다. 당시에 나도 이것은 성령의 역사라고, 무척 감사하기도하였고, 놀라기도 하며 좋아했었는데, 정작 그 일로 하나님을 더 사랑하게 되었다든지, 예수님을 더 닮고 싶다든지 하는 아이들이나 교사들은 아무도 없었다. 기억하는 모든 교사들과 아이들은 느껴지는 체험에만 집중하였다.

 

고난이 많은 인생을 지내온 시인 다윗의 "내 잔이 넘치나이다!"라는 고백을 할 수 있었던 배경.

원수의 눈 앞에서 정성 가득한 밥상을 차려 주신 기억과, 

머리에 기름을 부으신, 성령에 충만한 체험을 다윗은 결코 잊을 수 없었다. 

그래서 다윗은 사울왕에게서 성령이 떠나간 것을 보고, 그가 미치광이가 된 것을 보며 후에 자신에게서도 성령을 거두지 말아주시기를 간구하였던 것이다.

 

이런 일은 세상은 도저히 알 수 없는 것이고, 

신자라고 해서 모두 안다고 할 수 도 없을 것 같다.

Posted by 지윤이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