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배자인가 우상숭배자인가(그레고리.K 비일 지음, 김재영, 성기문 옮김. 새물결플러스 )
우리는 창조주를 반영하든지, 아니면 피조 세계 가운데 있는 어떤 것을 반영하든지 한다. 24
예를 들어 우상이 볼 수도 들을 수도 없는 눈과 귀를 가졌다고 묘사될 때, 그 우상을 숭배하는 자 역시 눈과 귀를 가졌지만 보지도 듣지도 못한다고 그려진다. 32
만일 우상을 숭배하면 우리는 그 우상처럼 될 것이고, 우상과 닮은 점이 우리를 무너뜨릴 것이다. 68
우리는 멸망당하는 쪽으로든 회복되는 쪽으로든, 우리가 숭배하는 것을 닮아간다. 72
그들은 하나님의형상을 지닌 자로서 이런 본연의 역할을 감당하는 데 실패했으며, 아담과 하와처럼 에덴동산과 같은 그들의 땅에서, 그리고 하나님의 특별한 계시적 임재로부터 떠나 유배를 당하게 되었다. 74
죄는 자기(자아)를 중심으로 신존을 재정립하는 것으로, 결과적으로 자기가 자신의 창조주와 치료자와 유지자가 되는 것으로 표현된다. 따라서 모든 죄에는 우상숭배가 포함되어 있다. 201
그리스도안에 거하시는 하나님의 특별한 임재가 아니라 성전에 거하는 그분의 임재로 복을 받는다고 믿는 것은 우상숭배였다. 276
호세아서는 우상과 관계하는 이스라엘을 "창녀"라고 묘사한다. 342"입맞춤"은 사랑의 헌신을 상징하는 제스처이며 하나 됨을 암시한다. 우상숭배자에게 입맞춤하는 것은 사실상 그 우상에게 입맞추는 것이며 그와 일치되는 것으로 간주되었다. 349
"들을 귀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듣지 않는" 357
그리스도를 신뢰하지 않는 자들은 마귀의 권세 아래 있어 짐승과 동일시되고, 짐승의 속임수를 분별하고 막을 수 없으며, 짐승과 함께 영벌을 받을 것이다. 짐승과의 동일시는 현세에서는 일시적인 번영을 주지만, 결국 그들은 영원한 죽음이라는 징계를 받는다. 371
재미있는 것은, 토기장이 비유가 담긴 모든 텍스트에서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손으로 하신 일"이라고 불린다는 사실이다. 놀라운 점은 이사야서 전체를 통해 나타나는 "그들의(그의 혹은 사람들의) 손으로 한 일"이라는 구절이 이스라엘과 열방을 섬겼던 사람이 만든 우상을가리킬 때만 사용된다는 것이다. 399
나무나 돌, 쇠로 만든 형상을 섬긴다는 구약성경의 사상이 21세기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도 여전히 유효하다는 것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411
롯의 아내는 세상에 속한 자였다. 롯에게 소돔을 떠나라고 말하면서 천사는 "돌아보지 말라"고 권고했다. 하지만 하나님이 "유황불"을 내리실 때 롯의 부인은 "뒤를 돌아본 고로 소금 기둥이 되었더라". 마치 소돔과 고모라가 소금으로 변한 것 처럼 말이다. "돌아보았다"는 말은 롯의 아내가 자신의 궁극적 안락을 하나님보다는 소돔에 두었음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413
"땅의 것들에 마음을 둔 자들"은 이 세상에서 가장 마음이 편안하며, 이 세상의 것들을 꿈꾼다. 이들은 세상이 주는 안전의 일면만을 신뢰하며, 눈에 보이는 사물 너머의 것을볼 수 없다. "그 마침은 멸망"이다. 419
너무나 많은 교회가 오늘날 시장 중심으로 움직이며, 우상숭배적인 자아실현을 위한 소비자들의 욕구라는 필요를 채워주려고 한다. 425
거기에는 섹스와 흥분, 음악, 환락, 춤이 있었다. 이것들은 모두 대단했다. 그렇다면 히브리인들에게는 예배에 대한 보답으로 무엇을 주어야 했는가? 말씀이다. 426
"그리스도와 함께라면 당신은 더 나아지고 강해지며, 더 많은 사람이 당신을 좋아할 것이며, 더 큰 기쁨을 맛볼 것입니다." 하지만 이것은 자아를 더 크게 만들 뿐이다. 대신에 우리는 사람들이 스스로에게 진절머리가 나서 예수를 바라볼 수있도록 해주고 싶다. 427
우리는 우리가 존귀히 여기는 것을 닮아간다. 그 결과가 멸망이든 회복이든 말이다. 433
이런 우상은 교묘할 수 있는데 그 이유는 교회가 성경의 진리르 반박하지 않으면서도 실제적으로 교회의 삶과 실천에서 그 진리를 무시하기 때문이다. 435
우리는 무엇에 헌신하는가? 우리는 무엇에 복종하는가? 우리는 세상의 무엇을 닮아가는가? 아니면 그분의 말씀에서 알 수 있듯이 하나님을 닮아가는가? 441
때때로 우상숭배라는 죄도 잇몸병과 비슷하다. 아주 심각힌 피해를 입기 전까지는 우리가 당한 영적인 피해에 대해 잘 느끼지 못할지도 모른다. 눈이 있지만 우리 안에 나타나는 파멸을 볼 수 없는 것이다. 446
우리는 모두 무엇인가를 모방하며, 중립은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는 영적인 중립을 유지할 수 있다는 착각에서 깨어나야 한다. 세상의 우상에 복종하거나 하나님께 복종하거나 둘 중에 하나다. 447
우리가 스스로 우상숭배자인지 아닌지, 혹은 부분적인 우상숭배자인지 분별할 수 있다. 성경에 나오는 하나니의 말씀을계속적으로읽고 듣고 묵상하는 데 시간을 소비하는지를 우리 자신에게 물어보면 된다. 우리의 삶에서 그리스도와 관련이 없는 부분이어디인가? 친구나 연인과의 관계인가? 우리의 결혼 관계인가? 우리 자녀와의 관계인가? 가족이 모여서 구칙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기도하는 시간을가지고 있는가? 주일 예배에서 다른 그리스도인들과 교제하며 성실하게 그 모임에 참여하는가? 이런 질문들에 대한 답이 부정적이라면, 이는 우리가 우상숭배적인 관점을 가지고 있음을알려주는 잣대가 된다. 448
우리는 우리가 존귀하게 여기는 것을 닮는다. 그것이 멸명으로 이끌든지 회복으로 이끌든지 말이다. 449
- 구약에 나타난 유명한 우상숭배인 출애굽 후의 '금송아지 사건'으로 시작하여 구약 다른 부분들의 우상숭배에 대한 말씀들과 복음서, 사도행전, 바울서신을 지나 요한계시록에까지 나타난 우상숭배의 모습, 그리고 그 우상숭배자들의 결말에 대해서 차분히, 그러나 시종 강한 어조로 성경을 통하여 논증해낸다.
풀어내는 과정이 흥미진진하면서도 진지하고 많은 부분에서 두려움과 경각심을 갖게 한다.
읽는 내내 관심이 가는 부분은 '우상이 있는 자리'였는데, 금송아지(또는 다른 모형의 우상들)는 바깥에 있었지만, 이 우상들은 점점 사람에게 가까이오고 결국 사람의 마음과 '사람 자신'이 우상이 되어버리도록 했다. 심지어는 '교회'의 깊은 곳까지 들어와서 '견고하게' 자리를 잡고 있으면서 우상 자신의 세력을 지키고 있으며 우상을 따르는 자들(비록 교인이라고 할 지라도)을 우상 자신의 결말인 멸망으로 함께 이끌어간다.
대표적인 우상의 특징인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고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는' 것은 우상과 그 숭배자들에게 똑같이 나타나고, 그 보지 못하는 눈과 듣지 못하는 귀로 인해서 함께 멸망하는데, 이미 보지 못함과 듣지 못함은 '멸망'의 진행형인 듯하다.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
"우리는 멸망당하는 쪽으로든 회복되는 쪽으로든, 우리가 숭배하는 것을 닮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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