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3.15. 주일. 시편23편 강해 김남준 목사님
시 23:3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도다
I. 본문해설
우리를 구원해주신 것은 거저 구원해 주신 것이지만, 그렇게 구원하신 하나님의 계획이 있습니다. 그 계획을 따라 사는 것이 신앙생활입니다. 신앙생활이 힘든 것은 그 구원의 계획과는 다른 목표를 가지고 살기 때문입니다.
신앙생활을 올바로 하지 않으면 믿음 없이 사는 것만큼 힘듭니다. 그것이 인생입니다.
II. 구원의 의도
A. 의의 길(말겔레 째데크, 길, 똑바른 길)
시인의 영혼을 회복시켜주신 것은, 은혜를 주신 것은, 기쁘고 감사하고 그저 좋으라고 주신 것이 아니라 그 이상의 하나님의 의도가 있는 것입니다. 그 생명과 영적인 은혜의 힘을 가지고 자신의 삶의 난관을 극복하며 의로운 삶을 살게 하시려고 영혼의 회복, 은혜를 주신 것입니다.
그 의로운 삶은 구약에서는 기준이 율법, 십계명이었지만 신약시대에는 그것이 바로 주기도문의 삶인 것입니다.
우리를 구원해 주셨을 뿐만 아니라 우리에게 은혜를 주셔서 남이 알지 못하는 사랑을 알고 그 은혜의 세계를 알고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을 깨닫도록 만들어주신 이유는 바로 그렇게 남이 못 받은 사랑과 은혜를 받아 영혼의 생명을 누리고 있으니 이 불의한 세상에서 의로운 백성으로서 살아라, 한 줄기 빛처럼 살라는 말씀인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은 내가 예수를 믿어서 이렇게 성공했다라고 보여주는 것이 선교가 아닙니다.
어느 목사님 말씀이, 아무게 권사님이 있었는데 기도 많이 하고 열심히 섬겼더니 큰아들은 하버드, 둘째는 예일, 셋째는 프린스턴에 들어갔답니다. 그 설교를 듣는데 속이 다 뒤집혔습니다. 우리 교회에 그 권사님보다 더 헌금 많이 하고 섬겨도 자식이 하버드 못 들어간 분들 많습니다. 그게 복음입니까?
내가 성공했기 때문에, 부자가 되었기 때문에, 그래서 사람들에게 감동이 되고, 사람들이 나도 한 번 저렇게 부자가 되어보고 싶다고 생각하게 하는 것은 의의 길이 아니어도 얼마든지 가능한 것입니다. 그러나 진정한 감동은 그 그리스도인 앞에 서면 왜 그런지 인간으로서 자신이 부끄럽고, 저 사람은 행복한 것 같고, 잘 사는 것 같은데, 나는 잘 살지 못하는구나 라는 생각을 하게 하는 것입니다.
15년전, 평촌의 교회 건물을 마련한 일
방배동 지하에서, 장년 100명이 장소가 좁아서, 900명 들어가는 예배당을 월세 1,100만원, 보증금 5억을 빚내서 들어감. 3년 반 만에 장년 1000명으로.
그 장소도 좁아서 다시 이사 가기로 하고 땅을 알아보는데, 돈은 보증금 5억과 통장에 1500만원이 전부. 평촌의 땅을 알아보니 땅 주인 할아버지께서 교회를 짓는다는 말에 팔기로 하심. 그 할아버지 26세에 장로가 되었는데, 한경직 목사님께서 안수하셨고, 이 건물에서 한경직 목사님께서 매주 성경공부를 1년 6개월을 인도하신 건물.
36억에 구입하려는데, 세금이 3억이라서 이중장부를 써서 30억에 하고 6억은 비자금으로 하자는데, 교회가 그렇게 할 수 없어서 3억을 더 주고 39억에 구입.
계약금은 주었지만 중도금이 없어서 어려울 때, 주인이 등기와 인감을 주면서 교회에 넘겨주고 대출하여 갚아달라고 함. 나중에 1억을 끝까지 못 갚으니 주인이 자기 돈을 먼저 주면서 갚도록 하고 나중에 회사에 갚으라고 함.
불의한 세상을 욕하는 것은 혀에 침만 바르면 되지만 자기가 올바르게 사는 것은 피를 흘려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 의로운 길을 걸어가게 하시기 위해서 은혜를 주신 것입니다.
이 불의한 세상 속에서 의롭게 살아가기 위해서 때로는 좋은 사이로 지낼 수 있는 사람과 결별하기도 해야 하고 때로는 목숨을 걸고 싸워야 할 때도 있는 것입니다. 이것을 기꺼이 감당해야할 이유는 무엇이냐 하면 하나님께서 이 세상 사람에게는 없는 영적인 은혜의 자원을 주셨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 사람이 이해할 수 없는 놀라운 위로를 베풀어주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자녀들이 이 세상을 살아가는 방법입니다.
이 세상은 불의합니다. 그러나 여전히 사람들이 불의하게 살아도 진리가 살아있고 모든 인간의 불의에 대해서 심판하시는 하나님이 계시다는 사실을 하나님 당신께서 직접 보여주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자녀들을 통해서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그 삶은 어렵고 힘듭니다. 손해를 많이 보는데도 사람들에게 환영을 받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위로해주십니다. 영적인 은혜를 주십니다. 그 사랑의 힘으로 이기면서 사는 것입니다.
B. 자기 이름을 위하여
하나님은 물질이 아니기 때문에 이름은 있어도 그 모양이나 생김은 알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세상에 당신의 이름을 두셨습니다. 예수님의 첫 번째 기도제목은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였습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향한 열심은 하나님을 향한 열심입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위해서 산다는 것은 하나님을 위해서 산다는 것입니다.
다윗은 골리앗이 하나님을 저주하는 말을 들으며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다윗은 정치적 야망이 아니라 자신이 사랑하는 하나님의 이름이 더러운 인간의 입으로 모욕을 받고 있다는 사실에 솟구치는 의로운 분노를 참을 수가 없었습니다. 싸움으로 죽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을지 모르지만 그것은 그에게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이름이 짓밟히는 것을 견딜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골리앗의 말을 듣고 잠잠했던 수많은 이스라엘의 군인들은 어떠했을까요? 그들은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하나님을 당신을 뜨겁게 사랑하는 다윗의 편이 되어주셨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자녀들이 세상을 살아가는 이유입니다.
의로운 길을 따라 살면 사업에 성공을 못할지도 모릅니다. 그렇지만 높은 지위에 오른다고 해서 하나님의 이름을 드높이는 것도 아니고 이름 없는 한 사람으로 세상의 한 구석에서 산다고 해서 하나님의 이름을 높이지 못하는 것도 아닙니다. 문제는 자신의 가치를 어디에 두고 사느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매일 하나님의 이름을 위해서 사는 사람들의 마음속에는 그렇게 살지 않는 사람들이 결코 이해할 수 없는 기쁨이 있습니다. 하늘나라의 신령한 소망이 있습니다. 그 속에서 이 세상 사람들은 알 수 없는 방법으로 매일 그 영혼들을 소생시켜주시는 은혜를 아는 기쁨이 있습니다.
세상이 어둡고 불의하기 때문에 이것이 어두운 세상을 불꽃처럼 살도록 부름받은 하나님의 자녀들에게는 기회가 되는 것입니다. 조금만 의롭고 정직하고 남들을 배려하는 삶을 살아도 사람들의 주목을 받게 되어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충만한 은혜를 주시면 어디에 쓰시겠습니까?
하나님의 은혜는 우리 자신이 최종 소비처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이 그 은혜를 주신 것은 어찌하든지 시련과 고난 속에 있는 우리의 인생이 불의와 악에 에워싸여 살아가고 있는 이 험한 세상 속에서 하나님의 자녀다운 삶을 살아내라고 하나님이 주신 영적인 힘입니다.
이 은혜를 주실수록 의의 길을 걸어가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살아가는 여러분이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빕니다.
'열린교회 시리즈 > 시편23편 강해 2015년' 카테고리의 다른 글
2015.3.29. 주일. 시편 23편 강해 (6) 원수 앞에 차린 밥상 (0) | 2015.04.24 |
---|---|
2015.3.22. 주일 시편23편 강해(5) 사망의 골짜기로 지날 때 (0) | 2015.04.24 |
2015.3.8. 주일 시편23편 강해(3) 영혼의 회복(1) (0) | 2015.04.24 |
2015. 3.1. 주일 시편23편 강해2. 영적 침체와 염려 (0) | 2015.04.24 |
2015. 2.22. 주일 시편23편 강해1 그 사랑에 응답하라 (0) | 2015.04.2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