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04.18   새벽십자가 사경회5. 사랑으로 함께 하심


요 17:26

내가 아버지의 이름을 그들에게 알게 하였고 또 알게 하리니 이는 나를 사랑하신 사랑이 그들 안에 있고 나도 그들 안에 있게 하려 함이니이다



1. 하나님의 이름을 알게하셨습니다. 


단순한 지식이 아니라 삶으로, 경건과 신앙 속에서 경험하게 하는 것입니다. 영혼을 통해 마음에서 경험되어지지 않으면 하나님의 사랑을 알 수 없습니다. 

성도는 하나님께 사랑을 받은 사람이 성도이고, 이 성도는 교회와 일치를 이루고 그리스도를 사랑하고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며 삽니다.


2. 서로 사랑하게 하시려고 이름을 알게 하셨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께 접붙여진 몸이기 때문에 그리스도를 통해 사랑을 공급받습니다. 내가 싫어하는 사람도, 형제도 모두 그렇게 사랑을 받는 사람입니다.

우리가 누군가를 미워하는 것은 그 사람의 잘못때문이 아니라 우리안에 그 사랑이 적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그 사랑으로 구원받은 사람들입니다.


성령충만은 예수충만, 사랑충만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와 친밀한 교제를 누리고 그분의 분신처럼 살아가게 하십니다.

부활의 기쁨은 죽으신 그리스도가 우리 마음 속에 다시 살아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이것을 위해서 죽으시고 이 일을 위해서 땀이 피가 되도록 기도하신 것입니다.

Posted by 지윤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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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4.17  새벽십자가 사경회4. 예수 그리스도의 소원


요 17:24 

아버지여 내게 주신 자도 나 있는 곳에 나와 함께 있어 아버지께서 창세 전부터 나를 사랑하시므로 내게 주신 나의 영광을 그들로 보게 하시기를 원하옵나이다



십자가의 고난을 앞둔 예수님의 소원은,

1. 당신과 함께 있게 하는 것과, 

2. 당신의 영광을 보게 하는것이었습니다.



1. 제자들과는 몸으로, 시간적, 공간적으로 함께 하셨지만 지금은 시간, 공간을 넘어서 누구든지 영적으로 그리스도와 함께하는 친밀함이 있고 이것은 육적 친밀함보다 뛰어납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의 십자가도 더 깊이 가까이 느껴질 수 있는 것입니다.


2. 구약시대에는 기적과 이적을 보이셔서 영광을 보여주셨지만 신약에서는 그리스도의 인격과 성품을 통해서 보여주십니다. 개인적인 부흥을 통해서 영광을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이 부흥이 개인, 교회, 세계에 나타나고 임하고 경험되길 기도하는 것은 마땅하고 반드시 해야할 일인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영광의 부흥을 보는 은혜가 있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Posted by 지윤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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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4.16 새벽 십자가 사경회3. 교회의 온전함과 하나됨


요 17:23

곧 내가 그들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어 그들로 온전함을 이루어 하나가 되게 하려 함은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과 또 나를 사랑하심 같이 그들도 사랑하신 것을 세상으로 알게 하려 함이로소이다



예수님은 하나님을 온전하게 사랑하시는 모본과, 사람은 온전하게 사랑하시는 모본을 보이셨습니다.

그래서 온전한 지식과 온전한 사랑으로 모든 성도가 온전한 사람이 되며 온전한 교회를 이루기를 원하셨습니다. 


교회의 힘은 사상과 윤리인데, 이것을 묶어주는 하나님의 은혜가 있어야 하고 이 은혜는 삼위일체 하나님 안에 있는 사랑안에서 부어지는 것입니다. 


성부와 성자와의 사랑, 그 사랑이 바로 성령입니다.이것이 우리가 성령의 은혜를 간구해야하는 이유인 것입니다. 이 성령의 은혜로 아버지와 아들의 일치 속으로 들어갈 수 있습니다. 


성령의 역사는 두 가지인데, 

1. 우리 안에서 진리를 깨닫게 하십니다.

2. 그리스도의 사랑안에서 하나되게 하십니다.


교회가 온전한 지식과 사랑으로 하나되는 것.

Posted by 지윤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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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4.15. 새벽 십자가 사경회. 삼위일체의 사랑의 모상


요 17:20~21  

내가 비옵는 것은 이 사람들만 위함이 아니요 또 그들의 말로 말미암아 나를 믿는 사람들도 위함이니 

아버지여, 아버지께서 내 안에,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는 것 같이 그들도 다 하나가 되어 우리 안에 있게 하사 세상으로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믿게 하옵소서



"내 인생의 커다란 실수 두가지는 첫째는 목사가 된 것이고 둘째는 결혼한 것입니다."

로이 클레멘스라는 영국의 1000명이상의 목회를 하고 책을 여러권 쓴 영향력있는 목사가 어느날 갑자기 남자 정부(게이)와 도망가면서 남긴 유서와 같은 편지. 그는 대학시절 게이였지만 예수를 믿고 은혜받고 목회자가 되었지만 은혜가 떨어지자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간 것입니다. 이것이 "사람"입니다.

사람에게 "치유"란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신앙의 중심은 매일매일 하나님을 의지하는데에 있는 것입니다.


"나는 원래 술 주정뱅이가 아니었습니다. 술주정뱅이가 돌이켜 하나님께 돌아오는 것도 하나님의 은혜이고 술주정뱅이가 되지 않고 남아있는 것도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아우구스티누스


리깡(심리학자) " 내가 생각하는 곳에는 내가 존재하지 않고, 내가 존하는 곳에는 내가 생각할 수 없다." 이것이 모순에 가득찬 인간의 모습인 것입니다.



참된 나로 돌아가는 것은 하나님과 온전한 관계를 갖는 것이고 하나님을 간절히 찾는 것은 참된 나를 찾는 것이고 이것이 최고의 휴머니즘입니다. 이렇게 만드시기를 원하셨던 세계를 교회를 통해서 보여주셨던 것입니다.


사랑은 죄와 상관없는 그 사람의 개별성을 존중하는 것입니다.

신자의 사랑은 세상 사람이 믿음을 갖는 원인이 됩니다. 이 사랑을 하나님은 우리에게 강요하지 않으시고 먼저 보여주시고, 우리안에 그 사랑이 있음을 알게 하십니다.


자기를 꺾고 누군가를 사랑할 때 최고의 수혜자는 바로 자기 자신이 됩니다.

이 사랑이 힘들 때마다 예수님께서 어떻게 십자가를 지셨는지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주님이 사랑하기를 기뻐하는 자들을 마음에 품으십시오.

그래서 교회는 삼위일체 하나님의 사랑의 모상인 것입니다.


누구도 이 세상의 자원으로 사랑할 수 없고, 은혜만이 그 자원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은혜를 베푸소서"라는 기도는 "사랑으로 하나되겠습니다"라는 서약인 것입니다.

Posted by 지윤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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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4.14  새벽 십자가 사경회.  아버지와 아들처럼


요한복음 17:11


나는 세상에 더 있지 아니하오나 그들은 세상에 있사옵고 나는 아버지께로 가옵나니 거룩하신 아버지여 내게 주신 아버지의 이름으로 그들을 보전하사 우리와 같이 그들도 하나가 되게 하옵소서



이 17장은 대제사장의 기도입니다. 

다른 공관복음에서는 기도의 모습이 나타나지만 요한복음에서는 기도의 내용이 나타납니다.


"그들을 보전하사 우리와 같이 그들도 하나가 되게 하옵소서"


1) 하나됨

같은 것을 믿고 아는 지식의 하나됨과,

사랑에 있어서의 하나됨입니다.


5절의 "창세 전에 내가 아버지와 함께 가졌던 영화로써 지금도 아버지와 함께 나를 영화롭게 하옵소서" 에서 말씀하시듯이 삼위일체안에서 가졌던 사랑이 우리 안에도 있기를 기도하신 것입니다.


2) 신적 보전

삼위일체의 사랑은 분쟁이 없으셨습니다.

우리도 그것을 본받아서 그리스도를 통해 새사람이 된 상태를 보전해 주시기를 구하시고, 악한 세력으로부터도 보전해주시기를 기도하셨습니다.


아버지와 아들의 아름다운 교제처럼, 우리도 불완전하지만 교회안에서 그것을 이루는 삶을 살아 영광을 돌리는 것을 바라시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사랑하신 사랑을 기억하면 우리가 용서하지 못할 사람은 없고 사랑하지 못할 사람은 없습니다.

Posted by 지윤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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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6.29  주일. 사랑으로 세워지는 가정(7)  네 가족을 돌아보라. 김남준 목사님


딤전 5:8

누구든지 자기 친족 특히 자기 가족을 돌보지 아니하면 믿음을 배반한 자요 불신자보다 더 악한 자니라



I. 본문해설.


디모데 후서는 사도바울이 디모데에게 쓴 목회서신으로 바울이 두번째 투옥되었을 때 쓴 편지입니다. 이 디모데 전서는 그 전에 빌립보교회에서 쓴 것이라고 추정됩니다.


성도들의 가족 생활에 대해서 그리스도인들이 어떻게 해야할 것인지를 상세히 설명하고 있습니다.



II. 친족과 가족.


친족은 가족보다 넓은 의미의 사람들을 포함하고,

가족은 함께 사는 가까운 고유 의미의 "가족"을 지칭한다고 생각합니다.


인간에게 영향을 끼치는 세 기관으로 국가, 교회, 가정이 있습니다..

국가는 하나님이 적극적으로 세우신게 아니라 이스라엘백성들의 바램에 대한 허락으로 소극적인 허락속에 세워진 것입니다. 국가가 인간에게 행복을 주었느냐는 것은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가정과 교회는 하나님께서 직접 세우신 기관입니다.

타락 이전에는 가정이 교회였지만 타락 이후에는 분리되었습니다. 

모든 가정에 하나님을 향한 경외심이 있지는 않았기 때문입니다.


국가는 그 나라의 사람들에게 "정의"를 가르치는 것입니다. 정의를 통해서 사랑으로 갑니다.

교회는 사랑이 무엇인지를 보여주는 기관입니다. 사랑을 통해서 정의로 갑니다.

이에 비해서 

가정은, 정의와 사랑을 골고루 가르쳐주어서 이 두 가지의 조화를 도모하여 어떻게 다른 사람들과 함께 정의와 사랑을 나누며 사는지를 어릴때부터 가르쳐주는 것입니다.

이것이 없다면 돼지우리와 무엇이 다르겠습니까?


인간의 진정한 행복은 하나님이 인간을 지으셨을때의 그 의도대로의 "참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가족은 자기의 성공을 위해서 이용하거나 자신의 생존을 위해서 도구로 사용하는 것이 아닙니다.

가족이 나에게 해준게 무엇이 있냐고 말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가족은 운명공동체입니다. 무엇을 해 주기 때문에 가족이 아니라 가족이라는 사실때문에 함께 살아가는 것입니다.


본문은 가족과의 관계를 통해서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믿는 우리의 경건한 신앙이 보이는 어떻게 이 세상에서 구체화 될 수 있는지를 보여줍니다.


"돌아보라"는 '여호와 이레'와 같은 뿌리를 가진 말입니다. 즉 미리 준비하다라는 뜻입니다.

무엇을 돌아보아야 할까요?


1. 가족들의 영혼을 돌아보아야합니다.

영혼의 곤고한 상태를 돌아보고 그들의 영혼의 아픔을 나의 아픔처럼 느끼며 돌아보는 것입니다. 

가족을 영혼으로 보기 시작하면 사랑할 마음이 생겨납니다.

가족을 보며 눈물을 흘릴 수 있는 사람은 은혜안에 있는 사람입니다. 그들은 가족에게 받은 상처를 기억하지 않습니다.

가족의 곤고한 영혼을 위해 눈물을 흘릴 수 없는 사람은 누군가가 그 사람을 위해서 대신 눈물을 흘려줘야 할 사람인 것입니다.


여러분들에게 은혜를 먼저 주신 것은 가족의 영혼의 형편을 돌아보고 그들을 위해 이바지 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입니다.

가족이 주었다는 상처때문에 무관심으로 복수하는 것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2. 가족들의 육체의 형편을 돌아보는 것입니다.

가족 관계가 깨어졌다면 대부분 이기심 때문입니다.

키케로라는 로마의 철학자는 '의무론'이라는 책을 통해서 인간으로서 이웃에 대한 의무를 다할면 당장은 손해보는 것 같지만 그것은 반드시 돌아온다고 했습니다.


물질로 가족을 도와주면서 그 도움으로 인해서 가족이 예수를 믿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도와주는 것은 아닙니다. 도와주었다는 사실까지 잊어야 하는 것입니다.

사랑은 그런식으로 베푸는 것이 아닙니다.(터키 지진때의 구호물품과 성경을 함께 보낸 후 오히려 선교에 역효과가 난 일)


진실한 사랑이 동기가 되어야지 '거래관계'로 도와서는 안됩니다.


3. 이 일을 위해서 매일 기도하십시오.

매일 가족을 위해서 눈물로 기도하는 사람들은 이익의 문제로 분란이 생길 수 없습니다.

용서하고 사랑하는 여러분이 되십시오.

주님이 우리를 사랑하고 용서하고 우리에게 배신을 당하시면서도 우리를 섬기신 것처럼 그렇게 가족을 섬길 수 있는 사람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이 모든 힘이 하늘로부터 오는 줄로 믿고 그렇게 가족을 섬기는 사람들이 되십시오.

Posted by 지윤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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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06월 22일  사랑으로 세워지는 가정 (6)  이혼을 생각하십니까?

마 19:3~6   김남준 목사님



바리새인들이 예수께 나아와 그를 시험하여 이르되 사람이 어떤 이유가 있으면 그 아내를 버리는 것이 옳으니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사람을 지으신 이가 본래 그들을 남자와 여자로 지으시고

말씀하시기를 그러므로 사람이 그 부모를 떠나서 아내에게 합하여 그 둘이 한 몸이 될지니라 하신 것을 읽지 못하였느냐

그런즉 이제 둘이 아니요 한 몸이니 그러므로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것을 사람이 나누지 못할지니라 하시니



I. 본문해설


바리새인들의 질문은 예수님께 묻고자 함이 아니라 시험하기 위함이었습니다.

"버리라"는 대답을 하신다면 사랑과 용서에 대해 말씀하신 것에 위배되는 것이었고

"안된다"라고 대답을 하신다면 모세가 허락한 것에 위배되는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은 혼인에 관한 본래의 정신을 강조하셨습니다.



II. 사람을 지으심


A. 세계와 사회의 계획

혼인의 원리에서 출발하는 인류 사회, 그리고 세계.



B. 혼인의 원리

육체와 정신과 영혼의 결합.



III. 이혼, 관계들의 파괴


A. 하나님과의 관계


이혼을 결정하기 전에는 이미 하나님과의 관계가 상당히 파괴된 상태입니다.


상대방이 인내하고 견뎌준다고해서 일평생 그렇게 살아도 된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남편, 아내에게 함부로 하는 것은 자기 자신에게 함부로 하는 것입니다. 


아무리 "사실"이어도 배우자에 관해 좋지 않은 얘기를 자꾸 하지 마십시오.

서로 존귀히 여기십시오. 이것이 진정한 의미의 사랑입니다.

이것 때문에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시는 것입니다.


영적침체는 돌이킬 수 없는 일들에 대해서 후회하는 것입니다. 

현실을 감사하십시오. 그리고 용서하고 인내하고 기다릴 때 하나님께서 배우자를 변화시켜 주실 것이라고 기대하는 것, 이것이 하나님이 원하시는 삶의 방식입니다.


B. 자녀들과의 관계


결혼은 관계속으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이것이 연애와의 다른 점입니다.


이혼 후 받는 자녀들의 충격에 대해서 생각해보셨습니까?

자신의 행복뿐아니라 관계 속에 들어오는 자녀의 행복도 존중해 주어야합니다.


C. 자신과의 관계


이혼을 결심할 때 40일 금식하고 결심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이미 모든 힘을 상실하고 결정하는 것이 이혼인 것입니다.


결혼은 "꿀덩이"가 아닙니다.

용서와 인내를 위해서 "은혜"가 필요합니다.

아프지 않은 관계는 없습니다.


가족은 나에게 뭔가를 해주어서 "가족"이 아니라,

그 자체가 "가족"입니다.


감당하기 어려울 때마다 은혜를 구하며 관계를 이어가다보면 하나님께서 살아 역사하십니다. 은혜로서 이겨야 하는 것입니다.


만남을 주신 하나님의 섭리와 뜻을 생각하며 은혜로써 이겨내야 합니다.

상대의 성품과 기질을 인정하고 부족할 지라도 사랑할 이유를 생각하며 살야하 합니다.


-- 생각해 본적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진지하게 말씀을 들으며 오히려 더 생각해 보게 되었다.

결혼은 "꿀덩이"가 아니라는 것....

아프지 않은 관계는 없다는 것....  

한참만에 알게된 "진리"

Posted by 지윤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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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6.08.  주일. 아내와 남편(5)  사랑으로 세워지는 가정 시리즈. 김남준 목사님


골로새서 3:19

남편들아 아내를 사랑하며 괴롭게 하지 말라


아내를 향한 남편의 덕목 두번째는 "괴롭게 하지 말라"입니다.

이 말은 격분하게 하다, 쓰라리게 하다, 맛이 쓰게 하다라는 의미로 사용되어지는데, 남편으로 인해 아내가 당하는 괴로움은 일반적인 고난이 아닙니다.


주님께 순종하기 위해서 당하는 그런 고난, 괴로움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남편의 성격이나 태도, 행동때문에 아내가 받는 괴로움입니다.


- 평생을 부부싸움 없이 살아온 노부부가 있었습니다. 어떻게 한번도 부부싸움을 안하고 살 수 있었는지를 묻자, 큰 일은 남편이 결정하고 작은 일들은 아내가 결정하고 그런 결정을 서로가 존중하며 따랐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작은 일들을 아내가 결정한 것에 대해서 따랐느냐고 했더니 남편은 그랬다고 했고, 큰 일들에 대해서 남편이 결정한 것을 아내가 따랐느냐고 묻자, 남편은 

"아직 한번도 큰 일을 결정해 본 적이 없습니다." 라고 했다.


- 어떤 아내에게 쥐어 살던 남편이 너무 힘이 들어서 하루는 서점에 가서 아내를 길들이는 법에 관한 책을 찾았는데 쉽게 찾을 수가 없어서 점원에게 물었더니, 그 점원의 대답,

"공상과학 소설은 이쪽이 아니라 저쪽으로 가세요."


- 어떤 남편이 목사님을 찾아와 상담을 했다. 자신이 기도할때 마음이 뜨거워져서 신학을 하고 목회를 해야겠다는 소명을 받아서 아내에게 얘기했더니 아내는 못하겠다고 하지 말라고 했다고 한다. 자신이 받은 소명을 따라야 하는지, 아내를 따라야하는지 상담을 했다. 목사님의 대답은,

"아내의 말을 들으세요, 그것이 하나님의 응답입니다. 소명을 주시려면 당신과 아내 모두에게 같은 마음으로 주실 것입니다. 그때 하세요."


아내를 힘과 권위로 억눌러서 복종시키려는 것은 성경에서 나타난 방법이 아닙니다.

성령님도 여러분에게 그렇게 오시지 않으셨습니다.


- 지갑속에 아내의 사진을 넣고 다니는 남편, 힘들때마다 그 사진을 꺼내어 보고 힘은 낸다는 남편의 말에 아내가 감동을 받았다. 아내는 남편에게 사진을 보면서 무슨 생각을 하기에 그렇게 힘을 내냐고 묻자 남편의 대답은,

"내가 이런 여자와도 사는데 무슨 힘든 일이라고 못하겠는가,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야..."


이 세상은 부부가 그저 같이 살면 끝이지만, 하나님의 자녀들에게는 부부의 소명이 있습니다. 서로 희생하며 사는 것이 주를 섬기는 과정인 것입니다.


남편이 아내를 괴롭게 하는 것은 "사랑없음"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사랑"은 자기 실존에 대해 용서를 비는 것입니다.

내가 이것밖에 안된다고, 상대에게 용서를 비는 것입니다.

Sorry for what I am.

내가 "나"이기 때문에 미안하고 죄송한 것입니다.


아내의 결점때문에 사랑 못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안에 있지 못하는 나의 결함때문에 사랑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아내의 아름다움과 좋은 점 때문에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십자가의 그리스도의 사랑때문에 사랑하십시오.

아내는 실망을 주기도 하지만 그리스도는 단 한번도 그런 적이 없는 분이십니다.


주님은 여러분, 남편을 "평화의 도구"로 부르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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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5.25  사랑으로 세워지는 가정(4).  아내와 남편(2)


골로새서 3:19

남편들아 아내를 사랑하며 괴롭게 하지 말라



I. 본문해설


다시 오실 때까지 가정을 회복시키길 원하시는 하나님.


왜 앞절은 한 주만 하고, 오늘 이 구절은 두 주간 하는지 

남편들이 불평할지 모르지만 그것은 내 마음입니다.




II. 아내에 대한 남편의 덕목


 1. 사랑함("아가페테" 아가페의 사랑으로 사랑하라)


   A. 로마사회와 아내


에로스-남녀 연인간의 사랑, 

필리아-동료간의 사랑, 

스톨게-부모,자식간의 사랑, 

"아가페"-하나님의 무조건적인 사랑


로마시대는 남존여비사상과 가부장적 사회였습니다. 

아내는 당시 남성들에게 "아가페"사랑의 대상이 되지 못했습니다.


아내가 남편에게 '복종'할 때는 

'아쿠오'(무조건적인 복종, 자녀가 부모에게 순종하라고 할때)이 아니라 

'휘포타오'(하나님이 정하신 질서에 들어가기 위해서 복종함)입니다.



   B. 사랑 : 성향과 행위


본질적으로 사랑은 영혼의 경향성입니다. 


유교에서는 4단(인의예지,이성에 속함)과 7정(희노애락수오욕,감정에 속함)을 말합니다.

이렇게 본다면 사랑은 이성만의 작용도 아니고 감정만의 작용도 아닌 포괄적인 작용인 것입니다.


아가페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베푸시는 사랑이고,

까리타스는 하나님의 그 사랑때문에 우리안에 생기는 사랑입니다. 


"남편들아 아내 사랑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그 교회를 위하여 자신을 주심 같이 하라"(엡 5:25) 는 말씀을 기억하십시오.

어떤 남편도 이 말씀 앞에서 아내를 충분히 사랑했노라고 말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리스도가 교회를 섬기기위해 보내어지심 같이, 

남편은 아내를 섬기기 위해 보내어진 것입니다.


이 여자의 모든 결점이 바로 내가 이 여자의 남편이 된 이유입니다.


내가 이 결함 많은 여자를 끝가지 사랑하는 것이 아무리 어렵고 많은 희생을 동반한다 할지라도

그리스도께서 대역의 죄를 지은 나를 하나님 앞에 용서받게하기 위해서 십자가에서 당한 고난보다는 크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이 아내로 말미암아 경건의 기회를 삼을 수 있는 것입니다.


연애할때는 사랑하려고 애쓸 필요가 없습니다. 저절로 "되는" 사랑인 것입니다.

결혼하게 되면 "해야하기 때문에 하는" 사랑입니다.

성경은 "되니까 하는 사랑이 아니라 할 수 없는데에도 사랑하라"고 하십니다.

하나님께로 오는 사랑이 없이는 사랑할 수 없습니다.

한 사람을 사랑하는데 얼마나 부족한 사람인지를 깨닫고 더 은혜를 구하게 됩니다.


아내가 준 상처를 극복하는 방법은, 아내를 위해서 선물을 준비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복수"입니다. 

원한을 남기지 않고, 다시 사랑으로 돌아오게하는 "복수"입니다.


악은 선으로 갚고, 허물을 용서로 갚겠다고 도장찍은 것이 "결혼"입니다.


한 사람의 완성은 사랑의 완성에 달린 것입니다.


아내의 결함이 완전하신 그리스도앞에 여러분이 가지고 있는 결함보다는 작지 않습니까?

여러분들을 그리스도께서 어떻게 사랑하시고 어떻게 불쌍히 여기셔서 어떤 자비하신 사랑으로 이곳까지 인도하사 하나님의 자녀라 일컬음을 받게 하셨는지를 생각해 보십시오. 그리고 모자란 것이 많아보이는 여러분들의 아내가 바로 여러분들의 기업이고 그렇게 모자라는 것을 여러분들이 채워서 여러분들의 아내를 온전한 사람으로 만들게 하시려고 여러분들을 그 아내의 남편으로 붙여주셨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다른 누구도 대신할 수 없는 자리입니다. 그러면 여러분들에게는 얼마나 많은 사랑이 필요하겠습니까? 그리고 그 사랑을 가지고생각해보면 한 인간에 지대한 영향을 미쳐 온전한 사람으로 만드는 그 소명이 얼마나 영광스러운 부르심인지를 한번생각해보시기 바랍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위해 십자게에서 못박혀 피 흘리시면서 까지 우리들을 사랑하셨는데 그런 사랑을 충만히 받은 우리에게 그런 사랑의 일부로서 아내를 사랑하고 긍휼히 여기라고 말씀하십니다. 아내의 결함이 크고 부족한 것이 많아도 그것은 여러분들의 기업입니다.

그리고 그와 더불어 영원한 유업을 함께 누릴 연약한 그릇이 바로 여러분들의 아내입니다. 그 아내가 온전한 하나님의 사람이 되는 일 없이는 여러분도 자신을 완성할 수 없습니다. 비록 여러분들의 작은 희생과 헌신, 그리고 아내를 진심으로 사랑해 그를 온전한 사람이 되게 하기위해서 견디는 많은 인내들을 지금은 아내가 잘 몰라줄 지라도 그것이 무슨 상관입니까? 

우리는 아내의 아름다움 때문에만 아내를 사랑하는 사람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베푸신 그 아가페의 사랑때문에 그 아내를 사랑하기로 다짐한 사람들이 아닙니까? 

비록 많은 순간, 여러분의 이런 진지한 노력과 헌신이 아내에 의해 무시되거나 혹은 가볍게 평가된다고 할지라도 그것이 무슨 상관이 있겠습니까? 언젠가는 아내도 이 세상에서 사라지고 부모도 이 세상에서 사라지고 우리 홀로 하나님 앞에 서게될 그때에 우리 앞에 서 계신 분은 우리의 아내가 아니라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해 자기몸을 버리신 그리스도이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사랑을 생각하며 오래 인내하며 모든 것을 참고 가끔 가슴에 손을 얹고 기도해야합니다. 

"하나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사랑으로 나를 구원해 주신 때부터 나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저 여자가 나를 남편으로 맞이하여 일생을 살면서 하나님 앞에 온전한 사람으로 성숙될 수 있다면 하나님, 저는 아무래도 괜찮습니다.그렇게 내 아내가 온전한 주님의 사람이 되는 것이 내가 온전한 주님의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 예배중에 들으면서도 불편하기 그지없고,

다시 들으면서도 불편하기 그지없는 말씀..

한참 멀은 것 같다.

Posted by 지윤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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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5.18.주일. 사랑으로 세워지는 가정(3)   아내와 남편(1)   김남준 목사님


골 3:18

아내들아 남편에게 복종하라 이는 주 안에서 마땅하니라



남편이 아내를 사랑하는 명령보다 아내가 남편에게 복종하는 것이 먼저 나온 것은 "질서"가 가족관계의 기초가 됨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1. 남편과 아내의 관계.


흙으로 만든 남자의 갈비뼈를 취해서 여자를 만드신 하나님,

흙은 구약에서 '존재의 미천함, 아무것도 아닌 존재'를 의미합니다.

즉 연약한 육체를 지닌 인간임을 알라는 의미이고, 인간의 위대함은 육체가 아니라 영혼에 있음을 알아야합니다.

남자의 보호를 받도록 갈비뼈에서 취하셨음은 원래 남녀가 한 몸이었음을 알아야합니다.

남자와 여자는 공통된 특성이 있으면서도 각각 고유한 특성을 가지고 하나님이 창조한 세계를 이루도록 의도하셨습니다.


종교명령 - 하나님과 어떤 관계를 맺을 것인가에 관한 명령, 선악을 알게하는 실과를 먹지말라.

문화명령(노동명령) - '생육하고 번성하라,땅을 정복하고 다스리라'는 명령을 주셨습니다.


여자들의 몸 안에는 생명의 터전이 있다는 것을 생각하십시오.

하와는 '생명'이라는 뜻입니다.


'정복'은 남성의 일입니다.

'다스리라'는 말은 '왕이 덕으로서 나라를 통치하다'는 뜻입니다.

여기에는 전쟁과 같은 남성성을 가진 일 뿐아니라, 백성의 깊은 고통을 세세히 살피는 여성성을 가진 일도 포함이 되는 것입니다. 


남성과 여성을 처음부터 다르게 창조되었습니다.

이기심이 없을때는 이 다름이 서로에게 만족과 즐거움을 주지만, 사랑이 부족하게 되면 서로에게 짐이 되고 갈등의 요인이 되는 것입니다. 특히 타락한 이후에는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지 못하는 이기심이 크게 자리잡게 되었습니다.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고 받아들여서 결점이 보일때, 내가 보고 그 결점을 보충하라고 짝지어 주신 것입니다.

사랑보다 더 필요한 것이 질서입니다.

이 두가지가 같이 있어야 가정에 진정한 행복이 오래 계속되는 것입니다.

이 질서가 바로 "아내들아 남편에게 복종하라"인 것입니다.



2. 복종하라.


뱀의 유혹으로 하와, 아담이 범죄한 일은 이 질서가 깨어진 모습입니다. 

질서가 깨어진 후 남자와 여자의 관계가 얼마나 비참하게 되었는지를 보시기바랍니다.

그래서 그 이후부터 지금까지 "복종하라"는 명령은 심한 거부감을 느끼게 해주는 것입니다.

이 복종은 노예적, 폭압적 완력에 의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완전하지는 않지만 하나님을 사랑하려고 애쓰는 교회의 여자 성도들에게, 그러한 남편들에게 복종하라고 하는 것입니다.


남편에게 아내를 사랑하라고 하기 전에 아내가 남편에게 복종할 것을 먼저 명령하십니다.

이것은 남편이 눈여겨 보아야할 구절이 아닙니다. 


한 남편이 젊은 나이에 죽기 전에 아내를 불러서 유언을 했습니다.

"여보, 내가 죽거든 수절하지 말고 얼른 다른 남자와 결혼해서 행복하게 사세요. 그리고 결혼은 000와 하세요.."

"아니 여보,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000은 당신의 사업을 망하게 한 그런 사람이잖아요.."

"맞아요, 당신을 그 녀석과 맺어주는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최대의 복수요.."


인간의 사랑으로서는 한 여자가 남편에게 복종하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특히 미움과 갈등이 생긴 다음에는 더욱 그렇습니다.

비록 서로간에 잘못한 부분이 있을지라도, 누가 먼저 그 질서로 돌아가느냐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아내가 먼저 돌아가야한다고 말씀하는 것입니다.


사랑없이 질서를 강요하는 것은 인성의 파괴를 가져오고

질서없는 사랑은 온전한 정신적 일치를 이루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 안에서 사랑하는 것이 필요한 것입니다.

남편의 아름다움이 끝나는 순간에서라도 남편을 사랑하게 하는 하나님의 사랑은 무궁한 것입니다.


남편에 대한 복종은 남편에 대한 사랑이나 위대함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이 세우신 가정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사랑때문에 복종하는 것입니다. 


사랑은 "모든 것을 선하게 해석하게 하는 경향성" 입니다.


나는 오늘 아내인 성도들에게 말합니다.

여러분에게 상처도 많고 시련도 많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들은 그 남편의 슬픔이나 고독을 모릅니다.

여러분은 아내로서의 고독이나 외로움을 몰라준다고 말할 것입니다.

그러나 누군가가 그 평행선을 허물고 자기를 부정할 수 있어야 합니다.

한 번 남편에게 다가가 보십시오.

따뜻하게 사랑을 표현하고 섭섭하게 한 것이 있다면 시간이 지났지만 사과한다고, 용서를 빈다고, 사랑한다고 한번 말해보십시오.

그것이 질서로 돌아가는 일이고 그 안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부어주실때, 그 질서를 따라 사랑은 흐르는 것입니다.



3. 주 안에서 마땅하니라.


"하나님께서 가정을 존재하게 하신 목적에 어울린다"라는 뜻입니다.


때로는 남편은 나에게 상처를 주었어도 하나님은 상처를 능가하는 사랑을 아내들에게 베풀었습니다.

그리고 남편이 아내들에게 지은 죄보다 더 큰 허물을 매일 매일 용서해 주심으로서 하나님의 자녀로 살게 하셨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인간의 가장 큰 의무는 하나님과의 관계를 바르게 하고 가족들과의 관계를 바르게 함으로 그 안에서 누구도 소외되지 않도록 자비와 긍휼을 베푸는 것입니다.

Posted by 지윤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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