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07.14. 새벽. 열 처녀의 비유. 오우진 목사님
마 25:1~13
그 때에 천국은 마치 등을 들고 신랑을 맞으러 나간 열 처녀와 같다 하리니
그 중의 다섯은 미련하고 다섯은 슬기 있는 자라
미련한 자들은 등을 가지되 기름을 가지지 아니하고
슬기 있는 자들은 그릇에 기름을 담아 등과 함께 가져갔더니
신랑이 더디 오므로 다 졸며 잘새
밤중에 소리가 나되 보라 신랑이로다 맞으러 나오라 하매
이에 그 처녀들이 다 일어나 등을 준비할새
미련한 자들이 슬기 있는 자들에게 이르되 우리 등불이 꺼져가니
너희 기름을 좀 나눠 달라 하거늘
슬기 있는 자들이 대답하여 이르되 우리와 너희가 쓰기에 다 부족할까 하노니
차라리 파는 자들에게 가서 너희 쓸 것을 사라 하니
그들이 사러 간 사이에 신랑이 오므로 준비하였던 자들은
함께 혼인 잔치에 들어가고 문은 닫힌지라
그 후에 남은 처녀들이 와서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에게 열어 주소서
대답하여 이르되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가 너희를 알지 못하노라 하였느니라
그런즉 깨어 있으라 너희는 그 날과 그 때를 알지 못하느니라
본문에 나타난 "기름"은 성령을 가리키는 것이라고 생각되어지기도 하였지만
문맥상으로 볼때, 이 "기름"은 "참된 행위"라고 생각해야 맞을 것입니다.
여기서 저는 중요한 점은 "기름"에 있는 것이 아니라 비유의 핵심이 다른 것임을
말하고자 합니다.
기름을 준비하지 못한 다섯 처녀들은 '무지'하지 않았습니다.
그녀들은 신랑이 늦게 온다는 사실도 전혀 모르지 않았습니다.
처녀들은 신랑을 기뻐하지 않거나 반겨하지 않은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녀들은 기다리다 지쳐 모두 졸며 자기도 했습니다.
그녀들은 혼인 잔치를 간절히 바라고 소망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올바른 지식과 기대를 가지고 있었음에도
'미련한 자'라고 일컬음 받은 이유는 무엇일까요?
깨어있지 못한 것이 무엇일까요?
수많은 사람들이 아침에 눈을 뜹니다. 육체의 눈을 뜹니다.
그렇다고 영혼의 눈까지 번쩍 뜨는 것은 아닙니다.
안으로는 영혼의 연약함, 밖으로는 우리를 잠들게 하는 세상이 있습니다.
이유가 무엇이든간에 영혼이 깨어있지 않은 상태에서 살아가는 것은 가능한 것입니다.
배워서 알고 기대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깨어있지 못한 자신의 영혼을 방치한다면
이들처럼 망하게 되는 것입니다.
영혼을 깨우지 못한 것은 단순한 질책으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열 처녀중의 다섯은 들어가고 다섯은 못들어간 것, 말하기 조심스럽지만
교회안의 반은 들어가고 반은 못들어간다는 것을 여기서는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영혼이 깨어있도록 할 수 있는 일은,
첫째, 하나님의 말씀을 되새기고 또 되새기는 것입니다.
카지노에는 시계와 창문이 없어서 시간이 흘러가는 것을 모르게 하고
잠든 영혼을 머물러 있게 하려는 것입니다.
이 세계도 마찬가지입니다.
시계와 창문이 없는 이 세계에서 말씀을 통해서 '시계'를 보는 것입니다.
둘째, 내 영혼을 깨어달라고 매일 간절히 기도해야합니다.
내 영혼이 깨어있지 않은 것을 안일하게 여겨서는 안됩니다.
우리는 한 단계 더 앞으로 나아가 하나님이 주신 약속과 위로 앞에 서는 것입니다.
그 소망을 갖는 것입니다.
- 신랑이 온다는 사실을 모른 것도 아니고
신랑을 만나고 싶지 않거나 반가와 하지 않은 것도 아닌 '미련한' 다섯 처녀.
슬기로운 다섯 처녀들도 기다리다가 함께 졸며 자기도 했지만
결국 '기름'을 준비하지 못한, 깨어있지 못한(미련한) 다섯 처녀는
혼인 잔치에 들어가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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