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10.30.가을말씀사경회 교회와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 4 육체에 채우는 고난
열린교회 시리즈/2014 가을 사경회 교회와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 2014. 11. 7. 18:342014.10.30.가을말씀사경회 교회와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 4
육체에 채우는 고난
I. 본문해설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은 그리스도의 고난 뒤의 고난, 교회에의 고난을 말한다고 했습니다.
예수님의 고난이 우리에게 전달되게 해주셨다고 했습니다.
성경은 혼자 믿는 기독교에 대해서 아는 바가 없습니다.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은 머리되신 그리스도의 몸의 일부입니다.
머리이신 그리스도는 완전하시지만 몸된 우리들은 불완전합니다.
우리의 구원에 대하여는 그리스도께서 완전하게 하셨지만,
육체를 입고 살아가는 자녀들은 완전하고 순결한 영혼의 사람들이 아닙니다.
신자들의 개인적인 성화가 총화를 이루어 교회의 거룩함이 이루어져가는 것입니다.
II. 육체에 채우는 고난
이것을 단순하게 '감옥살이, 고문'으로 해석하는 의견도 있습니다.
그러나, 영혼과 육체에 대한 사도 바울의 견해를 고려해본다면 그렇게 단순하지는 않습니다.
A. 육체에 채우는 고난
'채우다'는 바깥에서 넣어서 채우는 의미가 아니라 안에서 차오르는 것을 말합니다.
'육체(사르크스)'는 '죄와 무관하거나, 죄와 관련지어' 의미를 갖습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죄와 무관), 마음은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도다(죄에 중립), 죄에 물든 육체.
여기서는 죄에 오염된, 옛사람의 성품, 육체를 말합니다.
B. 교회 머리되신 그리스도의 고난
몸에서 일어나는 고통을 머리는 못느낄 수가 없습니다.
손발이 잘려 없어도 머리에서는 그것을 있다고 인식합니다,
(잘린 손발의 간지러움을 느낌.)
중생, 회심한 신자에게 절대 지워지지 않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을 향한 사랑입니다.
이런 신자들에게 예수님은 교회의 아픔을 전달시켜 느끼게 하십니다.
이때 성도들은 더 거룩하게 되고 회개하게 되어 교회가 더 거룩해집니다.
아무리 나쁜 신자라도 회개하는 신자는
아무리 좋은 신자라도 회개하지 않는 신자보다 낫습니다.
회개하는 신자는 하나님이 공사중인 신자이기 때문입니다.
고난의 채움은 '육신적인 성품의 죽음'을 의미합니다.
III. 그의 죽으심과 부활의 실재화
예수님의 죽으심은 완전하여 두번 다시 죽지 않으셔도 됩니다.
이제 이것이 우리 안에 이루어지는 것이 실재화입니다.
충청도의 구원파 성도들이 모여서 김남준 목사님의 설교를 듣고 내린 결론,
"이 목사는 구원받은 것 같다"
우리가 받는 고난은 예수님의 고난과 비슷하게 보여도
예수님의 구속과 같은 효과를 낼 수는 없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남겨진 고난이 아니라 '뒤에 있는 고난'인 것입니다.
이 고난이 우리 안에 가득 차면서 옛 성품이 죽는 일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괴로움, 고난이 우리를 거룩하게 하는게 아니라,
그것을 받아들이는 우리의 마음에 따라서 그것이 '한'이 되기도하고 '연단'이 되기도 합니다.
절대적인 십자가(순전히 예수님때문에 받는)와 상대적인 십자가
A. 하나님의 섭리를 믿음
무슨 일이 일어나든지(교회 안팎 어디든) 우리는 그리스도를 위해 고난을 받는 것입니다.
어떤 믿음으로 그것을 받아들이느냐가 문제인 것입니다.
(교회와 상관없이 암에 걸려도 그것을 놓고 기도하다가 새 사람이 되어
주위에 좋은 영향을 끼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선하심과 신실하심을 믿는 것입니다. 이것이 신앙입니다.
사람과 환경 너머에 있는하나님의 영원한 의지를 바라보아야합니다.
그러나 이것으로 충분하지 않습니다.
B. 십자가의 고난을 묵상함
괴로움을 당하면서 '그리스도'를 묵상해야합니다.
내가 이런 괴로움을 당하는게 느껴질 정도로 아직도 내 속에 있는 죄를 위해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셨다는 것을 묵상하는 것입니다.
믿음으로 예수 죽음의 의미를 내 속에 투사시키는 것입니다.
이 때 열렬한 기도가 나오고, 죄된 자신을 정죄하게 됩니다.
C. 성령으로 육신을 죽임
(텐트 안의 큰 뱀과의 사투 비유)
성령으로 몸의 행실을 죽이는 것은 행실 하나하나를 죽이는 것이 아니라,
그런 행실들을 가능하게 하는 근원, 뿌리를 죽이는 것을 말합니다.
D. 그리스도와 함께 부활함
이렇게 육신이 죽고, 그리스도와의 실재적인 연합이 일어나고
사랑이 그리스도에게 전달됩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눈으로 교회를 바라볼 여지가 생기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향한 사랑이 교회를 사랑으로 내려오는 것입니다.
심리적 사랑(아름다운 면을 보고 사랑함),
성향적 사랑(아름다움이 적어도 그 안에서 아름다움을 찾아내는 사랑)
교회에 대한 심리적 사랑은 타인에게 '교만'으로 비춰질 수 있습니다.
교회가 어떤 상태에 있든지 그 교회의 머리는 '그리스도'입니다.
IV. 적용과 결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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