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10.26 주일. 말씀을 보내시는 하나님. 김남준 목사님


시편 107:19~20


I. 본문해설


고통에서 건지신 하니님을 찬양하는 시편입니다. 

신자는 이 세상의 불완전함, 또는 자신의 죄 때문에 고통을 받게 됩니다.


히브리서에서는 신자를 '외국인', '나그네'라고 하였는데

돌아갈 곳, 바라볼 곳이 있다는 것입니다.


고통을 당할 때, 욥처럼 애매한 고난이라고 쉽게 말하지 말아야 합니다.

본문에서는 그들의 불순종으로 인해서 고통을 당하는 것이라고 못박아 말합니다.


우리의 관심은 행복이지만 하나님의 관심은 거룩입니다.

거룩함의 펼침이 행복이고 행복의 접음은 거룩함입니다.



II. 신자들이 고통받을 때


A. 신자들이 받는 고통

고통을 받을 때 그 사람이 무엇이고, 그의 속에 무엇이 있는지를 알게 됩니다.

객관적으로 자신을 보게 되고 하나님의 뜻이 있음을 알게 됩니다.


인생은 항해와 같아서 잔잔한 바다일 때도 있지만, 

풍랑치는 날도 있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의 고통은 하나님께 물으며 하나님 앞에서 사는 삶입니다.


"나의 순결함때문에 당하는 고난은 없었다."

나의 불완전함과 순수하지 못함 때문에 고통을 당하는 것은 확실합니다.

그런 고통에서 하나님의 은혜로 건져주셨습니다.



B. 신자들의 부르짖음

계시와 섭리를 통해서 하나님의 뜻을 보여주십니다.

계시 - 공표된 하나님의 의지

섭리 - 감춰진 하나님의 의지(요셉을 생각해 보십시오)


하나님의 섭리를 믿으십시오.

고통은 절망의 원인이 아니라 기도할 이유가 되는 것입니다.


'부르짖음'(쟈하크) - 구원을 바라는 간절할 외침.



III. 말씀으로 구원하심


A. 말씀을 보내심

우리는 고통이 빨리 끝나길 기도하지만 

하나님은 말씀하셔서 우리를 고치시길 바라십니다.


고통을 당할 때, 기도보다 먼저 할 일은 말씀을 찾는 것입니다.

고통 중에 열렬히 기도한다고 해도 그것이 하나님의 마음을 담은 열렬함이 

아닐 수 있기 때문에, 기도보다 보내시는 말씀을 맞이하고 

말씀에 비추어 깨달아야 합니다.


B. 고통에서 건지심

"위험한 지경"은 원문에 의하면 "고통들"입니다.


내 안의 망가진 부분 때문에 고통당하는 것을 하나님은 손 대실 수 밖에 없고

그것이 하나님의 선하심입니다.


나같은 사람이 교회의 일부분으로 있는 것이 교회와 다른 사람들에게 누가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모인 곳, 그곳이 바로 교회입니다.


하나님은 죄에 대해서 진노하시지만 죄 때문에 복수하는 분은 아니십니다.


신자의 성숙함은 고통 당할 때 하나님과의 관계, 이웃과의 관계 생각하는데에 있습니다.


하나님은 선하셔서 내가 멀리 떠나 있을 때에도 가까이 계셔서 붙드시고,

말씀하시고 돌아오도록 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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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과 씨름하다'(토마스 G. 롱, 장혜영 옮김, 새물결 플러스)

'신정론'에 대한 책을 읽는 중이라서 더 관심있게 듣게 된 주일 말씀.


아무리 이유를 알 수 없는 고통, 고난을 당한다고 해도 

하나님은 완전히 '선'하시다는 것.

그리고 그것을 믿고, 나의 의로움이나 '큰 잘못없음'을 내세우기보다는 

오히려 하나님의 뜻하신 것이 무엇인지, '말씀'하시는 것이 무엇이지를 

더 깊이 생각하고 하나님을 바라보라는 것.

Posted by 지윤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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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7.27. 주일. 주 계신 곳에 이르게 하소서.  김남준 목사님


시편 43:2~3

주는 나의 힘이 되신 하나님이시거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내가 어찌하여 원수의 억압으로 말미암아 슬프게 다니나이까

주의 빛과 주의 진리를 보내시어 나를 인도하시고 주의 거룩한 산과 주께서 계시는 곳에 이르게 하소서



시편 43편과 42편은 쌍둥이 시편으로 불리워집니다.

저자가 같을 것이라고 추측합니다.


고라의 자손의 마스길

'마스길' 지혜롭게 하다, 교훈, 지혜를 주는 내용


고라. '고라당'

모세가 이끌던 광야시절, 모세에게 반역했던 집단의 우두머리였고, 땅이 그들을 삼키는 심판을 받았었지만, 다윗의 건국 때에 고라의 자손들이 다윗을 돕습니다. 다윗을 그들을 특별히 대우하여 성전에서 수종드는 자들로 삼았습니다.

그래서,

이 두 시를 고라의 자손 중 한 사람이 썼다고 보는 견해와, 

다윗이 지은 시를 고라의 자손이 보관하였다고 보는 견해입니다.


이 두 시는 하나님을 향한 간절한 영혼의 목마름으로 시작됩니다.


하나님은 어떤 사람이든지 만나주시지만, 일반적으로 당신을 만나고자하는 영혼의 목마름이 있는 사람들에게 나타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1. 하나님께 버림받은 영혼의 고독.


"주는 나의 힘이 되신 하나님이시거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이것은, '당신은 나의 성채가 되신 분이신데, 어찌하여 나를 거절하셨나이까'라고 번역해야 합니다. '성채'는 큰 성은 아니어도 탄탄하여 왠만한 공격에는 끄떡없는 피난처와 같은 곳을 의미합니다. 이 성채에서 쫓겨나서 닫혀진 문 앞에서 울부짖으며 문을 두드리는 사람을 생각해보십시오.


피난처가 되시는 하나님은 깊이 인식하는 사람이 행복한 사람입니다.

시련과 환란 속에서 하나님께 피하는 것입니다. 

이 시련과 환란은 사람들을 통해서 옵니다.

위로와 은총도 사람으로부터 옵니다. 


다윗은 시련과 환란의 때에 하나님의 주권을 믿었습니다.


은혜 안에 있을 때는 고독감은 경건에 도움을 주지만,

은혜 밖에 있을 때의 고독감은 경건에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이 고독을 이겨보려고 쾌락을 추구하게 됩니다.


하나님으로부터의 거절감을 느끼는 것도 하나님이 살아계시다는 증거입니다.

그런 거절감이 없다면 하나님을 찾지도 않고 외로움을 느끼지도 못할 것입니다.

하나님을 시련이나 환란을 통해서, 거절감을 통해서 우리가 하나님을 찾도록 그렇게 하십니다.


2. 원수에 억합당하는 현실, 슬픔.


"내가 어찌하여 원수의 억압으로 말미암아 슬프게 다니나이까"


일상적으로 일어나는 일이 아니라, 특별한 상황임을 보여줍니다.(어찌하여... 어찌하여...)


시편이 우리에게 주는 유익은, 우리와 똑같은 사람이지만 구름같이 허다한 믿음의 사람들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성경의 다른 부분은 하나님과 예수님을 보여주지만 이 시편은 우리와 똑같은 성도들이 어떻게 살았는지를 보여줍니다.


나는, 한 사람의 신앙의 깊이는 시편을 읽는 목소리에 다 드러난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나쁜 일들이 일어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 나쁜 일들 때문에 하나님을 더 사랑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3. 시인의 간구.


"주께서 계시는 곳에 이르게 하소서"

'거룩한 산'이 '주께서 계시는 곳'과 동격입니다. 이 곳이 '시온'입니다.

하나님의 거룩한 통치의 왕권이 시행된 곳을 말합니다. 그 땅 자체는 대단한 땅이 아니지만 그곳에 하나님이 계시고 통치하시기 때문에 율법과 생명이 나오는 것입니다.


지친 영혼이 돌아오는 곳, 피난처, 그곳이 바로 '시온'입니다.


인생의 수많은 문제들의 해결은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것에 있습니다.

그래서 주님을 찾겠다는 간절한 마음이 우리에게 필요한 것입니다.


일주일에 한 시간씩만 주일 예배를 위해서 간절히 기도하고 나온다면 여러분의 인생이 바뀔 것입니다.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당신의 자녀들이 나아올때 받아주십니다. 그러나 마음에 간절한 목마름을 가진 사람들을 찾으십니다. 


4. 어떻게 하나님이 우리를 만나주시는가?


"주의 빛과 주의 진리를 보내시어 나를 인도하시고"

'빛'과 '진리'는 동격입니다. 즉, '빛 곧 진리를 보내셔서 나를 인도하시고'입니다.


환란과 침체 속에 있는 영적 특징은 '어두움'입니다.

객관적인 어두움은 안배워서 모르는 것입니다. 이것은 배워야 해결됩니다.

주관적인 어두움은 잘못된 것을 사랑하거나 마음이 하나님께로부터 이탈되어서 찾아온 어두움입니다. (충청도 쪽의 구원파 성도 몇이 김남준 목사님의 테잎을 듣고 회심한 이야기.

 "저 목사는 구원받은 사람이 확실하다...")


이 어두움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세 가지가 필요합니다.

첫째, 진리를 깨닫는 일입니다. 하나님의 말씀 앞으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세월이 흐른다고 저절로 개선되는 것은 없습니다. 깨닫기 위해서 말씀 앞으로 나아가야합니다.

둘째, 간절한 기도입니다. 무념무상의 마음이 아니라 하나님을 향한 진실한 사랑의 마음입니다.

셋째, 성령의 도우심입니다. 

이 세 가지가 영혼의 침체에서 우리를 일으켜세우는 것입니다.


넘어지는 곳은 사람마다 달라도 일어나는 곳은 똑같습니다. 

말씀의 지팡이를 짚고 일어나는 것입니다.


"무릇 지킬만한 무엇보다 네 마음을 지키라, 이는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

















Posted by 지윤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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