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째날  창 35:4~5   영적 부흥을 위한 조짐


I. 본문배경


영적각성 후, 비로서 객관적인 말씀의 빛으로 자신의 삶을 볼 수 있습니다. 어디서 미끄러지고 어디서 떨어졌는지를 말입니다. 


"올바른 길을 가고자 하나 그 길을 모르는 사람, 그 길을 알지만 갈 힘이 없는 사람은 열린교회로 오세요" - 초창기 열린교회 전도지 문구. 이것을 보고 눈물흘리면 온 사람이 있었다.

하나님의 은혜와 나의 의지가 결합해야 합니다.


여러분을 먼저 예수믿게 하신 것은 여러분에게 딸린 사람이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올바르게 신앙생활하지 못하면 그들도 고통을 당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쓰시려고 먼저 찾아가신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너무 믿음이 좋고, 이삭은 너무 온유하면, 요셉은 너무 순결합니다. 우리와는 너무 다른 모습의 사람입니다. 그러나 야곱은 피할 수 있을데까지 피해보고 도망갈 수 있는 만큼 도망가고, 속이고 약속을 지키지 않는 사람, 바로 우리와 너무 닮은 모습입니다.


II. 영적 부흥과 변화의 조짐


A. 이방신상들을 제거함.


하나님을 의지하며 살겠다는 결단에 따르는 것입니다. 가족들은 야곱의 '권위'때문에 따랐습니다. 


'권위'는 자기가 내세우지 않아도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나타는 분명한 근거가 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따르게 됩니다.

'권위주의'는 이러한 근거와 기반이 없이 사람을 지배할 목적으로 강요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에 대한 올바른 앎이 중요한 것입니다.

'권위'에 불복종, 불순종하는 것도 죄이며,

'권위주의'에 맹종하는 것도 또한 죄입니다.


죄의 주관화는 그 죄가 드러나고 자기가 알게되고 알고 있더라도 그 죄를 직면하기 싫어하는 것입니다. 의지적으로 외면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으로 인해 행복한 것이 없으면 하나님 아닌 다른 곳에서 행복을 찾게되기 때문에 영혼에 빨간불이 들어오게 됩니다.


B. 단장품들을 버림.(출33 에도 동일한 모습이 나타납니다)


이것은 말씀의 놀라운 적용력입니다. 야곱은 단장품을 버리라고 말하지 않았지만, 가족들과 함께 한 자들은 그것을 행하였습니다. 이 행동은 하나님만 앙망하는 신앙으로 되돌아감을 말합니다.


"하나님때문에 기쁘십니까?"

"은혜에 대한 감격이 있으십니까?"


같은 기도를 오래하는데 응답이 없다면, 그 기도에 합당한 삶을 내가 살고있는지 나를 돌아보아야 합니다. 이미 우리가 기도하기 전에 모든 것을 아시는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를 듣고 싶으신게 아니라 우리의 마음이 바뀌어 삶이 바뀌길 원하시는 것이고, 그 삶에서 우리의 기도를 응답하십니다. 바로 이것을 원하시는 것입니다.


세겜에서의 성공과 번영에는 비교도 되지 않는, 요셉에 이어져 큰 민족을 이루는 연결고리로 야곱을 부르시며 소명을 주신 것입니다. 


여러분의 요즘의 자랑과 보람은 무엇입니까?

여러분의 마음의 수많은 "단장품"은 무엇입니까?

십자가가 일상적인 것으로 여겨질 때, 신자는 부패하는 것입니다.  


C. 상수리나무 아래 묻음.


이것은 우상과 단장품들을 하나님 앞에서 "장사지낸"것, 잊어버린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 앞에 최고의 선물은 내가 사랑하는 세상을 죽여서 하나님 앞에 묻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사랑하는 세상은 세상에 있는 것이 아니라 여러분 안에 있는 것입니다.


정말 두려운 것은 실패가 아니라 실패에 익숙해져 체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을 만나게 하시려고 시련을 주시는데, 하나님의 방법으로 않고 자기의 방법으로 잔머리를 굴린다면 그 시련으로 얻을 것이 없는 것입니다.



Posted by 지윤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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