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06.15. 주일 요 6:16:29 물 위를 걸어오신 예수님 이성호 목사님
저물매 제자들이 바다에 내려가서
배를 타고 바다를 건너 가버나움으로 가는데 이미 어두웠고 예수는 아직 그들에게 오시지 아니하셨더니
큰 바람이 불어 파도가 일어나더라
제자들이 노를 저어 십여 리쯤 가다가 예수께서 바다 위로 걸어 배에 가까이 오심을 보고 두려워하거늘
이르시되 내니 두려워하지 말라 하신대
이에 기뻐서 배로 영접하니 배는 곧 그들이 가려던 땅에 이르렀더라
이튿날 바다 건너편에 서 있던 무리가 배 한 척 외에 다른 배가 거기 없는 것과 또 어제 예수께서 제자들과 함께 그 배에 오르지 아니하시고 제자들만 가는 것을 보았더니
(그러나 디베랴에서 배들이 주께서 축사하신 후 여럿이 떡 먹던 그 곳에 가까이 왔더라)
무리가 거기에 예수도 안 계시고 제자들도 없음을 보고 곧 배들을 타고 예수를 찾으러 가버나움으로 가서
바다 건너편에서 만나 랍비여 언제 여기 오셨나이까 하니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나를 찾는 것은 표적을 본 까닭이 아니요 떡을 먹고 배부른 까닭이로다
썩을 양식을 위하여 일하지 말고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하여 하라 이 양식은 인자가 너희에게 주리니 인자는 아버지 하나님께서 인치신 자니라
그들이 묻되 우리가 어떻게 하여야 하나님의 일을 하오리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하나님께서 보내신 이를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니라 하시니
요 6장은 크게 세 등분으로 나뉩니다.
지난번 오병이어 기적과 떠나신 예수님이 나타난 앞부분과,
본문 물위를 걸어오신 사건,
그리고 세번째는 오병이어의 기적이 가리키는 바를 설명하는 부분입니다.
오병이어 표적과 물위를 걸으신 사건은 전혀 상관없어 보이지만 요한은 이것을 연결하여 기록하였습니다.
오병이어 사건으로 예수님은 자신이 "떡"이심을 알리셨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표적을 보고 그 뜻을 이해하고 예수님은 찾은 것이 아니라 떡을 먹고 배불러서(26절) 예수님을 찾았습니다.
죄인들의 구원자로 오신 예수님을 사람들은 "죄인들의 구원자"로 보질 못했습니다.
예수님을 보배로 생각하십니까? 예수님께서 주실 것을 더 기대하고 있습니까?
기쁨과 감사로 이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것이 시금석입니다.
예수님이 주시는 그 무엇때문이 아니라 예수님 때문에 기쁨과 감사를 하고 계십니까?
다윗의 시편 3,4편.
4편에서는 다윗이 아들에게 쫓겨 도망가는 상황입니다.
사람들이 그것을 보고 "우리에게 선을 보일 자가 누구뇨"라고 말합니다.
"네가 아무리 신앙을 지켰어도 지금 네 형편을 보니 하나님이 선하신 것같지 않구나.." 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다윗은 이 상황에서 하나님이 주신 기쁨을 시편으로 노래한 것입니다.
세상 사람이 가진 풍성한 곡식과 새 포도주를 기뻐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이 기쁨을 간직한 사람들이 바로 "성도"들입니다.
마태복음 13장에 나타난 밭에 감추인 보화를 발견한 사람을 보십시오.
모든 재산을 팔아 그 밭을 샀습니다. 그가 희생을 치뤘을까요?
아닙니다. 그 보화만 있으면 모든 것은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이 보화를 소유한 사람의 기쁨을 여러분은 알고 계십니까?
예수 그리스도 그분만이 나의 가장 소중한 보화인 것입니다.
본문으로 돌아와서,
사람들은 예수님이 참 보화임을 볼 수 있는 눈이 없었습니다.
예수님이 주신 떡 때문에 예수님을 좋아했던 것입니다.
"주님이 나와 함께 계시면 나는 아무 문제될게 없습니다."라고 고백하십니까?
주님께서 우리 눈의 모든 눈물을 닦아 주실 그 날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그날이 올때까지 우리가 어떤 삶을 살아야할지 말씀하고 계십니다.
우리는 때때로 고난 가운데 처할 수 있습니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도살장에서 죽음을 기다리는 양처럼 말입니다.
고난의 때에 잊지 말아야 할것 두가지,
첫째, 하나님은 선하신 분이십니다.
둘째, 하나님께서는 말씀으로 고난가운데 있는 성도들을 붙들어 일으켜 세우십니다.
믿음이 있는 사람이든 없는 사람이든 누구에게든지 고난은 있습니다.
종교를 가진 사람들은 그 종교의 힘을 빌어 그 고난을 피해보려고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신 목적은 현세상에서의 고난에서 우리를 건지시려고 오신 것이 아닙니다.
살전 1:10 "장래의 노하심에서 우리를 건지시"려고 오신 것입니다.
사람들의 고난의 대부분은 돈이고, 그 다음은 질병일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들에게 가장 큰 문제는 죄와 심판의 문제인 것입니다.
예수믿으면 많은 복을 받는다고 복음을 전하는 것은 반쪽짜리 복음입니다.
참된 복음은 사람들을 하나님 앞에 세웁니다.
자신이 하나님 앞에 어떤 존재인지를 깨닫도록 도와줍니다.
이단과 기독교를 구분하는 기준이 있습니다.
이단은 복음을 통해 문제를 해결해 줄 것을 약속합니다.
그러나 기독교는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 사람을 세웁니다.
본문 16절~21절,
6장 전체는 오병이어 기적에 관해 설명하고 있고, 물 위를 걸으신 사건은 그 중간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사건은 오병이어 사건과 깊이 연관되어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물 위를 걸어오신 사건은 오병이어 사건의 실마리가 됩니다.
이 기적은 누구를 위해 행하셨을까요?
많은 사람들은 이 기적을 보지 못했고 듣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제자들은 이것을 보았습니다.
열두 제자와 열두 광주리의 남은 음식은 우연이 아닙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을 섬기려고 했지만 그들이 가진 것으로 섬길 수 없는 한계의 상황에 부딪혔고,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이 기적으로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의 힘으로 할 수 없는 섬김에서 스스로 떡이 되어주셔서 부족함이 없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50절 이는 하늘에서 내려오는 떡이니 사람으로 하여금 먹고 죽지 아니하게 하는 것이니라
큰 풍랑과 파도로 인해서 제자들은 생명의 위협을 받고 있었습니다.
이 상황에 예수님은 자신을 그들에게 주신 것입니다.
파도가 잔잔해졌다고 요한은 기록하지 않았지만(다른 복음서에는 기록된)
예수님은 "내니 두려워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은 바람과 파도를 다스릴 권세가 있으신 분이고,
창조주로 모든 것을 하실 수 있는 분이시라고 요한은 말하려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요한은 예수님이 자신을 제자들에게 오신 것, 주시려는 것을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나는 떡을 주러 온 것이 아니고 떡이 되기위해서 온 것이다.
너희에게 나를 주러 온 것이다.
27절 "썩을 양식을 위하여 일하지 말라"는 것은 노동하지말라, 일하지 말라가 아닙니다.
일한 것 이상의 댓가를 바라는 것은 도적질하는 것입니다.
에베소서에서는 자기 손으로 땀흘려 일하라고 합니다. 가난한 자를 구제하기 위해 하라고 합니다.
자기 배를 불리기 위해서 일하는 것은 썩을 양식을 위하는 일입니다.
마 6:21 "네 보물이 있는 곳에 네 마음이 있느니라"
여러분의 마음이 향해 있는 곳이 어디입니까? 이땅의 보화입니까? 예수 그리스도입니까?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해 일하라"는, 예수님께서 하신 일, 십자가에서 하신 일입니다.
예수님을 맛보아 아는 사람, 예수님의 살을 먹고 피를 마시며 사는 사람이십니까?
35절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생명의 떡이니 내게 오는 자는 결코 주리지 아니할 터이요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
한 번 뿐인 인생, 나그네요, 외국인의 삶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게 하소서.
생명의 떡인 예수 그리스도를 먹고 마시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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