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교회 시리즈/그리스도인이 소금으로 산다는 것'에 해당되는 글 4건

  1. 2014.09.27 2013 가을 사경회 다섯째 저녁(마지막 날)
  2. 2014.09.27 2013.10.24 가을사경회 셋째 저녁
  3. 2014.09.27 2013.10.22 가을사경회 둘째날 저녁
  4. 2014.09.27 2013.10.21 가을 사경회. 첫날 저녁

"소금이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후에는 아무 쓸데없어 다만 밖에 버려져서 사람에게 밟힐 뿐이니라"

지금과 같은 천일염이 아니라 당시의 "암염"은 그 안의 소금 성분이 공기나 습기와 접촉하여 녹아나오고 나면 불순물만 남게되고 그렇게 되면 짠 맛은 없어지고 소금의 역할을 할 수 없기때문에 버려질뿐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은 중생과 회심을 통해서 팔복의 사람이 되어 소금이 된 그리스도인이 그 '맛'을 잃고나면 소금의 역할을 할수 없고 다시 회복될 수 없기 때문에 버림받는다고 해석하면 안됩니다.

 

이 말씀은 "가치"에 대한 것입니다. 소금인 그리스도인이 그 맛을 잃어 흐린 맛, 변질된 맛이 될 수 있고 그렇게 되면 하나님께서 소금이라고 부르신 그 "가치"를 잃어버린 다는 뜻입니다. 

"가치"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말씀하신 것입니다. 

 

베드로가 예수님을 세번이나 부인하였지만 그것으로 그의 인생이 완전히 배반의 인생으로 끝난 것이 아니라 다시 예수님을 만나고 성령을 받은 후 예루살렘 교회의 지도가 된 것 처럼, 우리가 중생과 회심으로 팔복의 사람이 되어 소금으로 부르심을 받은 후에라고 미끄러지고 넘어지고 그 맛을 잃을 때에라도 주님은 우리를 찾으시고 다시 그 맛을 회복시켜 소금의 일을 하게 하십니다.

 

예수님의 산상 수훈을 들은 사람들은 세상으로부터 버림받은 "가치"를 잃어버린 사람들이었지만, 예수님을 만나서 다시 세상을 살아야할 이유를 발견하고 자신들도 예수님처럼 팔복의 사람으로 세상을 향해살아가는 것이 하나님 보시기에 얼마나 "가치"있는 삶인가를 깨달았습니다. 비록 그들중에 어떤 사람들은 연약하거나 혹은 죄때문에 넘어지고 미끄러져서 팔복의 사람에서 멀어지기도 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다시 자신들을 가치있게 만드신 예수님을 기억하고 돌아와서 팔복의 사람으로 회복되고 소금으로 다시 세상으로 나아가기도 했을 것입니다.

 

우리도 늘 이것을 유지하기위해 기도하고 애쓰며 예수님이 어떻게 우리를 가치있게 하셨는지도 잊지말고 소금으로 부르신 삶에 부합된 삶을 살아야 할 것입니다.

 

- 평생 처음 경험해본 사경회.

 5일간 저녁시간을 드린다고 생각하고 시작했지만, 오히려 더 깨닫고 받은게 많아서 내가 드렸다기 보다는 하나님이 특별히 주신 시간과 경험과 말씀들.

"인격적인 하나님께 인격적으로 예배 드린다"는 것이 이런 것이겠구나..

예수님 발앞에 앉아서 말씀듣기를 다른 모든 일들보다 귀하게 여겼던 마리아의 마음이 어떠했을지 조금 알게되고, 말씀은 비록 초등학생일 지라도 깊은 영혼까지 이르러 주변 사람으로 하여금 인식할 만큼의 변화를 충분히 일으키신다는 것까지 깨닫게 하신다.

 

예배에 나아가고 말씀을 대하고, 은혜를 구하는 마음이 얼마나 "나 중심" 이었는지. . .



Posted by 지윤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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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는 소금이다 라고 현재적인 시제로 말씀하신 것은 그 자리에 모인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고 고침받고 위로받아서 새로운 삶을 살게되었기 때문에 장차 소금이 되라고 하신게 아니라 '지금' 소금이라고 하신 것입니다.


그리스도는 바로 그 소금이셨고 앞에 말씀하신 팔복의 사람의 삶을 직접 살아 보이시면서 소금으로 사는 삶이 어떤 것인지를 가르쳐주셨습니다.

팔복의 성품으로 살아가는 소금의 삶은 신앙의 오랜 경륜이나 지식 경험의 문제가 아니라 "상태"의 문제입니다.

초등학교 1학년 아이가 어린이 사경회를 통해 큰 은혜를 받고 회심하게 되었습니다. 눈물 흘리며 크게 울며 회개하는 이 아이는 동생을 괴롭힌 죄를 용서해달라고 기도하면서 괴롭힘 당한 동생을 불쌍히 여기고 앞으로 사랑하겠다고 울며 기도했습니다. 비록 어린아이지만 죄를 깨닫고 심령이 가난해지고 애통해하며 죄씻음받기 원하는 마음과 하나님의 의를 구하고 갈망하고 사이좋게 지내려는 화평의 마음, 온유한 마음까지 모두 갖게 되었습니다.
이처럼 소금의 삶을 사는 팔복의 성품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만날때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물론 그 상태가 주님의 것과는 크기가 다를 수 있지만 동질의 것입니다.
이것은 훈련되어지는 것이 아니라 주님을 만나는 순간 주님께서 우리 안에 주시는 것입니다. 
주님을 만나고 이 맛을 알게되지만 이 맛을 다시 약하게 잃기도하고 다시 그 맛을 찾기도합니다.
또한 세상의 맛에 미각이 무뎌지면 주님의 소금의 맛을 좋게 느끼지못하기도 하고 세상의 맛에 길들여진 사람에게는 그 맛이 싫어서 핍박하기도합니다.

말씀을 들은 그 사람들은 주님을 만나서 소금이신 주님께서 맛있게 만드신 세상을 경험하게되었고 맛을 안 그들을 주님께서는 "너희는 소금이라"고 부르신.것입니다.



Posted by 지윤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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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세상에 있는 소금,

세상을 위한 소금입니다.

세상이 소금을 필요로 합니다.
세상은 부조화된 인간으로 구성된 사회여서 "맛"이 없기 때문에 소금 역할의 그리스도인이 필요합니다.

조화되어 아름다운 그리스도인은 
선악을 분별하는 선명한 정신,
그 깨달은 선을 행할 용기있는 가슴,
세상에서 살아갈 적당한 욕망(의욕)을 가진 사람입니다.
이러한 그리스도인이 세상에 녹아들어가서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주신 고유의 맛을 살려냅니다.
이 일을 위해 우리를 소금으로 부르셨습니다.



Posted by 지윤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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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인이 소금으로 산다는 것

마 5:13

소금은 생명 유지에 필수적인 것입니다.

산상수훈의 말씀을 듣기 위해 모인사람들은 4장에서 병고침받은 자들처럼 당시 사회에서 버림받고 소외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세상에 살아갈 맛을 느끼지못하는 자들이었지만 예수님을 통해서 고침받고 위로받음으로 세상 살아갈 맛을 회복한 자들 입니다. 
앞서 말씀하신 팔복은 예수님 자신의 이야기였고 그런 삶이 "그 소금"으로 사는 삶이었습니다. 
살 맛 안나는 세상에 그 맛을 내게하는삶, 맛을 느끼게 해주는 삶...
주님을 만나기전에는 버림받은 자들이 주님으로인해 맛을 느끼게되고 이제 주님은 그들이 맛보았던 것처럼 세상의 맛을 느끼지못하는 사람들로하여금 "맛"을 알게 하라고 하십니다.
예수님은 바로 그 소금이십니다.

진리의 빛보다 먼저 소금의 삶으로 세상 사람들이 맛을 알게하고, 그 이유와 소망을 묻는자들에게 그 빛을 비추어야 합니다.

- 오직 말씀을 듣기 위해 모인 사람들,
어린이들도 다른 장소에서 똑같이 사경회. 불을 바라는게 아니라 진리를 갈망하는 사람들. 한 시간 넘는 말씀을 듣고나서도 기도하기 위해 자리를 뜨지 않는 사람들.



Posted by 지윤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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