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10.05. 주일. 연단과 하나님의 계획(2) 길 찾게 하는 연단


시편 119:67

여호와여 주의 말씀대로 주의 종을 선대하셨나이다

내가 주의 계명들을 믿었사오니 좋은 명철과 지식을 내게 가르치소서

고난 당하기 전에는 내가 그릇 행하였더니 이제는 주의 말씀을 지키나이다


I. 본문해설


119편은 하나님 말씀의 영광의 장입니다.

두문법의 형태로 구성되었습니다.

히브리어 22자 알파벳을 각각 맨 앞으로 오게 해서 한 글자에 8절씩 지은 시입니다.

읽고 암기하기 좋도록 이렇게 하였습니다.


다윗이 지었을 것이라고 짐작되어집니다.



II. 고난 당하기 전의 삶 : 그릇 행함


히브리어 번역의 "그릇 행하였다"는 '길을 잃어버리다', '길을 잃은 상태에서 무언가를 행하다' 입니다. 즉 삶의 방향을 잃은 것을 뜻한다고 봐야 할 것입니다.


다윗도 길을 잃은 삶을 산 적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살인, 간음도 저지르고, 하나님 싫어하시는 인구조사을 하여 백성들에게 고통을 주기도 했습니다.


자신의 모습을 정직하게 직면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삶의 주체가 자신이지만(하나님과 동행하는 가운데) 주체로서의 삶을 사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거룩한 욕구만 우리의 삶을 이끄는게 아니라 정욕적인 욕구도 우리의 삶을 이끄는 힘을 주기도 합니다. 신문이나 티비, 인터넷 매체들을 통해서 우리는 영향을 받을 뿐만아니라 그것들이 이끄는대로 끌려가는 것은 주체성있는 삶이 아닌 것입니다. 마치 누군가에 의해 조종받으며 사는 삶이지만 그 목적이 무엇인지 알지못한다는 것입니다.


지각하여 뛰는 학생에게, 왜 그렇게 뛰느냐,

빨리가야 출석하고, 출석해야 학점받고 졸업하고 취업하고 결혼하고 아이낳고

나이들어서 죽게되는데, 결국 죽기위해 그렇게 빨리 뛴다는 것입니다.


매일매일의 삶에 몰두하느라 과거를 돌아보고 현재를 성찰하고 미래를 예지할 시간이 없는 것입니다. 이것이 "그릇 행하는", 즉 길을 잃은 채 살아가는 모습인 것입니다. 



III. 고난 당한 후의 삶 : 말씀을 지킴


여기에서 "말씀"은 히브리어에는 단수로 나타납니다.

여러가지 규칙과 교훈을 하나님은 주시지만 그것은 '하나'의 하나님의 말씀을 이루기 위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처럼 '하나'인 것입니다. 


도둑질이나 살인같은 하나씩의 죄를 안짓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는 뜻, 그것을 지키는 것을 말합니다.

세계와 자신을 향해서 가지신 하나님의 뜻에 마음을 모으는 것입니다.


'지키다'는 (샤마르) '성을 지키다', '말씀에 자신을 합치시키는 것', '높은 망대에서 적을 탐색하는 것'을 말합니다. 즉, 구체적인 삶 속에서 나타나는 행위를 말하는 것입니다. 


말씀을 지키는 것은 두 가지입니다.

첫째, 믿음의 규칙(무엇을 믿어야 하는가)입니다.

둘째, 생활의 교훈(어떻게 살아야하는가, 이렇게 살아라, 이렇게 되어라)입니다.


이 두 가지가 일치할 때, 말씀을 지키는 삶인 것입니다. 


그의 사람됨을 펼치면 그 사람의 삶이 되고,

그의 삶을 접으면 그의 사람됨이 되는 것입니다.



IV. 고난과 영혼의 변화


고난은 자신이 원하지 않는 질서 속에 있는 괴로운 상태를 말합니다.

누구든지 편안한 환경을 원하지만 그렇지 못할 때 고통을 느낍니다.


짐승은 고통을 받으면서 그 의미를 물을 수 없지만 

인간은 그것을 물을 수 있는 유일한 존재입니다.


행복은 '항구적'인 특성을 가져야만 행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오늘 잠시 즐겁더라도 내일부터 괴롭게 된다면 오늘의 잠시라도 진정한 행복일 수 없는 것입니다.


신앙의 유익은 고통 속에 있더라도 그 의미를 묻고 하나님 안에서 그것을 발견하고 이기며 나아가게 하는 것입니다.


고생은 상처만 남기지만

고난은 연단을 줍니다.


진리의 빛을 통해서 나를 객관적을 보며 삶의 사태를 받아들이고 믿음으로 반응하게 됩니다. 


우리의 죄로 인한 인과응보의 고통도 있고, 

죄와는 상관없는 고통도 있을 것이지만 이 모든 것에 대해서 묻고

하나님과의 관계성에서 의미를 알고 받아들게 되는 것입니다.


형통하고 모든 것이 잘 나가는 것만이 하나님의 축복은 아닙니다.

모든 것이 형통하는 듯 보이지만 길 잃은 상태로 사는 것이 행복일까요,

아니면 하나님이 한 대 때리시더라도 정신차려 제 길로 돌아오게 하는 것이 좋은 것일까요?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자는 징계하신다고(히) 하십니다.

그렇지 못한 자는 사생자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은 지성적으로 교통하길 원하시지만 그 지성이 눈 멀때, 환경적으로 말씀하셔서 그로 하여금 '내가 하나님을 멀리 떠나 그릇 행했습니다'라고 고백하게 하십니다. 


여러분이 어떠한 삶의 처지에 있던지 두 가지 사실을 굳게 붙드십시오.

하나님은 선하신 분이시고, 

하나님은 말씀으로 우리를 이끄신다는 것을 굳게 붙드십시오.

Posted by 지윤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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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9.28. 주일  연단과 하나님의 계획(1)  나의 믿음 순금같이 되어


욥기 23:10

그러나 내가 가는 길을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순금 같이 되어 나오리라


I. 본문해설


왜 하나님은 우리에게 고난을 허락하실까요?

본문은 엘리바스의 회개를 촉구하는 말에 대한 욥의 대답이 나타납니다.

욥은 자신의 변호를 위해서 하나님을 찾지만 하나님을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한가지 확실한 것을 알고 있었는데, 

그것은 "하나님이 알고 계시다"라는 것입니다.



II. 연단하시는 하나님


A. 나의 인생길이 있음


원문에는 '나의 길'이 아니라 '나와 함께하는 한 (인생)길'입니다.

이 길은 사람마다 있는 개별적인 인생의 길을 말합니다. 

우리의 인생에서 '질문'을 하는 것은 아주 중요합니다.

"국가란 무엇인가? 국가는 잘 하고 있는가?"

"사회는 무엇인가? 사회는 잘 하고 있는가?"

나와 관계맺은 것들에 대한 질문은 곧 '나'의 행복에 대한 질문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질문에 대한 답과 지식들을 어디서 얻으십니까?

세상의 언론이나 인터넷에서 그런 지식을 얻어 의지하지 마십시오.

내 인생은 다른 사람의 그것과 대치되거나 대신 살아질 수 없는 오직 하나뿐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독특하신 창조의 목적이 있고, 그 가치가 있기에 '나'는 존엄한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삶의 우연적인 껍질에 얽매이지 않고 그의 존엄과 가치를 인정해야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나를 태어나게 하신 것에 대한 가슴떨림이 있습니까?

이 떨림이 있을 때 내가 어떻게 살아야하는지를 물어보게 됩니다.


B. 나를 아시는 하나님("내가 가는 길을 그가 아시나니")


'야다' 시제(과거,현재,미래)는 없고 시상(완료, 진행)만 있는데, 이것은 '완료'의 형태입니다.

즉 하나님의 지식에서 '내'가 배제된 적이 없다는 것입니다. 

또한 단순히 아시는 것이 아니라 진심으로 내가 행복하기를 바라시는 앎, 부모처럼 돕고 사랑하시기 위한 앎을 말합니다. 


이렇게 하나님이 나를 아시는 것은 큰 위로가 됩니다. 


C. 단련받을 때가 있다.


"단련"은 "제련"의 의미입니다. 

금에서 불순물을 분리해내는 반복적인 과정인 것입니다. 

고통스러운 연단을 반복하고, 이때 마음이 녹으면서 하나님의 것과 나의 것이 분리되고 

인식하게 되고 회개하고 자기부인을 하게 됩니다.


한 덩어리인 마음에서 불순물이 분리되고 순전한 마음이 되게 하십니다. 


D. 나를 순금같게 하심


순금(지하브)은 '정제된 금'을 말합니다. 

이것은 '태도'만이 아니라 '본성' 자체에 도입되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의 행복이 소유에 있는 것이 아니라 "존재"에 있음을 알게 하십니다.


연단이 없으면 그저 그렇게 살 인생인 우리들이

순금과 같은 존재가 되길 원하시는 하나님을 생각하십시오.

Posted by 지윤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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